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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Oct 01. 2021

The muffins cafe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생기던 날, 뉴욕 시가 모든 레스토랑 및 비즈니스 셧다운을 시작한 날, 백신을 맞기 시작하며 한 줄기 희망이 보이던 날, 그 모든 날을 함께 견디며 변함없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던 곳이 있다.


커피숍.



서울에도 커피숍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반경 100 m 이내에 커피숍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먼발치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번쩍번쩍한 간판에 널찍한 공간, 편안한 소파, 빠른 인터넷과 콘센트를 모두 갖추고, 오래 머무는 손님들을 위해 커피 리필을 해주는 곳도 많이 봤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밥 값 보다 커피값이 더 많이 나올 때도 있었다.


뉴욕의 커피숍 상황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커피숍도 많기는 한데, 한국에선 당연했던 어메니티가 이곳에선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몇 개 없는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는 커피 받고 빨리 나가라는 인상을 팍팍 준다. 스타벅스를 제외하고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곳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커피숍은 그저 어디로 이동하는 길에 잠시 들리던 곳이었다.



잠시 들리던 곳에서 목적지로..

2020 년 3월 락다운이 시작된 이래로 90%​ 에 육박하는 뉴요커들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집에서 일을 하면 좋은 점은,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쁜 점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가 살아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온다는 것. 그리고 일의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도 어려워, 정해진 근무 시간 이외에도 일을 하게 되고, 근무 시간에는 집중을 잃기도 쉽다는 것.


오랫동안 재택근무를 해온 남자 친구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갔다 오면 스위치를 끄고 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보통은 센트럴 파크에 다녀오는데, 어느 날 아침엔 우체국에 갈 일이 있어 콜럼버스 에비뉴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71번가와 70번가 사이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이 모인 곳은 The muffins cafe. 눈에 띄는 간판이 없어, 그 길을 수십 번 지나다녔는데도 그곳에 카페가 있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 나도 슬그머니 줄을 섰다. 2 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을 가득 채운 따뜻한 조명, 초록 칠판에 을 빼곡히 채운 삐뚤삐뚤한 손 글씨, 진열장을 매운 크라상, 베이글, 머핀에 인형 뽑기 속에 가득 찬 선물이 떠오른다. 안에는 앉을 공간이 전혀 없지만 밖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 몇 개가 놓여있다.



한국에선 여름엔 아아 아니면 아라, 겨울엔 뜨아를 마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라테, 뜨거운 아메리카노) 아메리칸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 같지만, 의외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메뉴에 아메리카노 자체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왜일까? 그 유래를 알고 나면 이해가 쉽다.


아메리카노 커피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전투 중이던 미군들이, 이탈리아의 독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기 힘들어 거기에 뜨거운 물을 타 먹은 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면 드립 커피와 비슷한 맛이 난다. 드립 커피가 있는 곳에선 굳이 수고스럽게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물을 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에서’ 커피 주세요’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립 커피를 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으면 그냥 ‘아이스커피 주세요’ 하면 된다.


그렇게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금발 머리의 키가 큰 여자 한 분이 들어온다. ‘Caitlin!’ 가게 안의 점원들이 모두 그녀를 알아보고 반긴다. 연예인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의아해하는 와중 그녀가 단서를 준다.


‘응,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 이사 가는 길에 잠시 들렸어. 이 카페 정말로 그리울 거야. 이사 가도 꼭 자주 놀러 올게’


그녀도 아마도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나 보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나나 초콜릿 머핀 하나를 주문했다.


‘그게 다야? 먹고 싶은 거 다 주문해, this is on us, 거기 있는 물도 좀 챙기고. 운전할 때 필요할 거야.’


손에  가득 커피와 빵을 들고 차로 돌아가는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우리에게 커피숍에 가는 행위는 종교적인 의식에 가까운 지 모른다.


오늘이 새로운 위기의 시작인지 지금까지 겪은 고통의 종착지인지 알 방법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갈 곳이 있다.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빵과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넬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면 현실감각이 돌아온다. 오늘 하루는 괜찮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조상님들은 매일 아침 냉수를 받아놓고 정성껏 절을 올렸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신발을 꺼내 신고서 집을 나선다. 커피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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