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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소설

더 가고 싶다.

by 사라리

책 표지부터 작가의 말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소설을 엮었다.


보통의 소설은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겪으며 변화하는 여정을 그려낸다. 냉혈한 건달 두목 구 씨가 미정을 만나 사랑을 배운다든가, 구박받는 천덕꾸러기로 자라다 마법을 익혀 악당을 물리친 해리 포터의 이야기라든가.


이 소설에는 특별한 사건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등장인물의 변화 또한 확실하지 않다.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이 떨어지는, 그 속에 사는 작은 생명체가 아니라면 일어났는지도 모를 사건. 그런 사건들을 끊임없이 겪으며 그들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보다는, 오히려 타고난 천성을 마주 보고 받아들인다.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겹겹이 쌓아온 허물들을 조금씩 벗어내거나, 언젠가는 벗어내겠다는 작은 용기를 얻는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해 온 스스로의 본질을 마주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변화일 수도 있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척하지만, 사실 과거에 매여 산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준 일,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 -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산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기억을 가슴속에 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을 특히 응원하면서도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 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었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소설에는 동등하지만은 않은 관계, 그리고 그들의 권력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가득 차있다. 회사와 직원, 건물주와 세입자, 선생과 학생, 인턴 직원과 정규직원처럼 그 차이가 왜 있고 누가 갑의 위치에 있는지 분명한 관계. 엄마와 딸, 자매사이, 부부 사이처럼 누구보다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를 은근히 무시하고 이용하는 관계. 그들은 서로가 어떤 행동과 말로 상처받을지 알고, 그 약점을 악용하여 이미 곪아 터진 마음에 소금을 뿌린다.


소설에서도 실제 사회에서도 ’을‘의 입장인 사람들은 계속 당하면서도, ‘갑’을 향해 속시원히 그만하라고 저항하지 못한다. 그런 ‘을‘을 보며 우리는 왜 당하고만 사냐, 가만히 있지 말아라, 배를 놓아라 감을 놓아라 한다. 나라면 그렇게 안 살 텐데, 나의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정의 내리고 평가한다. 책 뒤에 수록된 양경언 평론가의 해설은 작가가 피해를 당하면서도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여성들을 다루면서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소설은 구조적 취약성 속에서 다른 삶보다 외부의 충격에 더 크게 상처받기 쉬운 ‘불안정한 ‘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책임“을 ”철저하게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내던지는 상황을 문제시한다. 남들이 보기엔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결정일지언정 그들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그들의 사연을 “개인 사정” 이라며 외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행위와 글을 읽는 행위에는 신성한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용기를 얻었다. 무엇이 맞고 틀린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한, 우리가 짊어지고 가는 결핍과 부족함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그럼으로써 타인과 나의 관계가 좁아질 수 있는,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한 줄기 빛을 내어줄 수 있는 글.


책을 추천해 주고 빌려준 수진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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