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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인 Mar 15. 2021

2화. 시각장애인이 되다(1)



타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기까지는 대략 7년 정도가 걸렸다.


가진 게 없는 배우지망생에게 투잡, 쓰리잡 아르바이트는 기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에 싫증이 났고 언제라도 나 아닌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데 한계를 느꼈다. 조금이라도 내가 잘 발휘되고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학부 때 전공(신문방송학)과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경험을 살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스피치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 아나운서 교실을 운영하게 됐는데 학교에서 일을 하려면 '공무원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당시에도 빛 조절이 어려워 주간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긴 했지만 실내에서는 텍스트를 볼 수 있었기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력판 앞에 서서 글자를 보는데 최소 통과기준인 0.3이 나오지 않았다. 한쪽 눈을 가리면 금방 초점이 사라져 시력판을 읽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간호사에게 눈부심이 있어 빛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니 시력판의 불을 꺼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에서 측정해야 한다며 안된다고 했다.


안경을 맞추러 안경점에 갔다. 이미 전에 다른 대학병원에서 약시란 진단을 받았고 교정시력(안경을 쓰면 교정되는 시력)이 안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다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병원에서는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측정해보고 의사 소견서를 받으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2013년, 눈부심이 심해지고 색의 구분이 어려워지며 눈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에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시신경이 약한 약시라고 했다. 정확한 병명, 원인, 치료법 모두 알 수 없으며 안경으로도 교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눈은 조금씩 더 안 좋아졌고 2015년 수소문해 찾아간 다른 대학병원에서 '추체이영양증(미세한 것을 보고 색을 구분하는 원추세포가 약해지는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시력이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유지될 수도 있지만 역시 치료법은 없다고 했다. 치료법이 없다는 말에 허탈하고 속상했지만 '앞으로 더 잘 관리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생활 속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시력이 많이 악화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일을 하는것도 내가 노력만 하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시각장애인이 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공무원 신체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암담했다. 스피치 교사를 해보겠다고 자격증을 따고 교육을 받고 면접을 통과하느라 쏟았던 모든 시간과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그토록 원하는 배우일도 못하게 될 게 분명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날 대학병원에 갔다. 일반 병원의 시력판과 달리 대학병원에서는 벽에 빔을 쏴서 시력을 측정했는데 그 방법이 내겐 좀 더 가독성이 높았다. 딱 0.3이라는 시력이 나왔고 의사 선생님도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소견서를 써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와 계약을 마치고 아나운서 교사 일을 시작했다. 수업하는 곳도 따로 마련돼 있어 퇴근 전에 원래대로만 해 놓는다면 내 공간처럼 세팅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컴퓨터와 마우스를 잘 보이게 설정하고 수업 리허설을 하며 눈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대비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강의를 다니며 힘들 때도 많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이 컸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강의를 이어가던 겨울의 어느 날, 연이어 내린 폭설로 거리는 온통 하얬다. 수업을 마치고 터미널로 가는데 주맹증(야맹증의 반대로 밝을 때 잘 보이지 않음)에 하얀 눈에 반사된 빛이 더해져 눈부심이 심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초등학생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응?"


"지금 횡단보도 넘어서 있는데요?"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눈이 인도의 경계를 덮고 횡단보도 너머까지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 경계를 보지 못했던 나는 눈이 덮인 횡단보도까지를 인도라고 생각해 도로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차가 다니지 않아 다행이었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시각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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