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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인 Mar 21. 2021

5화. 진짜 나를 마주해야 할 때

상담 사연을 글로 적으며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과 감정들을 정리했다.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아무도 절 이해해 줄 수 없을 것 같고 세상과도 동떨어진 느낌이에요.

배우 활동이 어려워지니 점점 스스로의 능력을 믿을 수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오늘을 사는 것은 차라리 살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저를 탓하고, 어느 날은 시각장애가 이 모든 아픔을 만들었다며 장애를 탓합니다.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렇게 자책과 원망을 반복하며 그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나의 마음을 하나하나 글로 적으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었다.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진짜 문제는 스스로를 시각장애인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매한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장애 때문에 이건 못해.'라며 장애를 이유로 겁을 낼 때도 있었고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니 난 시각장애인이 아니야.'라며 장애를 부정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장애판정은 치료나 회복이 어려워 손상이 영구적인 상태일 때 받을 수 있다. 나는 그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눈의 상태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리 없다고 믿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나는 철저히 비현실적인 희망에 기댔다.


나는 비장애인 배우로 살고 싶었지 시각장애인 작가로 살고 싶지 않았다. 전자를 정답이라 정해놓고 그 답에서 결코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후자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형벌처럼 주어진 것이었다. 나는 막연히 장애를 부정적인 것, 혹은 불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어떤 희망적인 모습도 그릴 수 없었다.


장애가 창피했고 장애가 없다면 배우를 했을텐데 그러지 못해 서글펐다. 글 쓰는 일이 따분하고 볼품없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정말 창피하고 볼품없는 것은 나의 그런 '생각'이었다. 애매한 태도, 애매한 정체성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을 그만두고 바로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상담 이후에도 그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라는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았고 다른 일을 꿈꿔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꿈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아팠다. 하지만 내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상담 이후,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찾아가 스크린 리더(모니터의 글자를 소리로 읽어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컴퓨터 사용법도 배웠다. 이전 같으면 보컬이나 무용 레슨을 받는다거나 연기 스터디를 했겠지만 상담 이후에는 글을 쓰거나 나와 시각장애에 대해 생각하며 공원을 몇 시간씩 걸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일상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결국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고 배우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장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긴 호흡의 글을 써보며 겨울내내 시나리오 속 인물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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