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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인 Apr 11. 2021

에필로그. 그래도 써야지, 뭐라도 써야지

'왜 쓰지를 못하니'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아 중얼거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기며 깊은 통찰을 옮겨적는 우아한 모습을 상상했건만 실제 내 모습은 모니터 앞에 앉아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커피를 홀짝거리는 게으른 폐인의 모습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써야지, 뭐라도 써야지.'

자세를 고쳐앉고 어제 Y와의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누나, 나 진짜 울고 싶었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Y의 목소리에 속상함이 느껴졌다. 며칠 전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며 기쁜 소식을 전해오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회사 메신저, 메일, 시스템 다 스크린 리더 접근이 잘 안 돼. 오늘은 회원가입 하나 하는 데 죽겠더라니까. 누구한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진짜 답답했어.“

 시각장애가 있는 친한 동생 Y는 회사에서 겪은 어려움을 전해왔다. 스크린 리더를 활용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웹 접근성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Y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회사에 웹 접근성 개선을 요구하고 보조공학기기인 확대 모니터가 도착하길 기다려 보자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당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Y는 자신의 상황을 공감하고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글이 누군가의 어려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된다면 세상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짜 문제를 찾는 것,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나만의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다. 사실 장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우울해하고 힘들어했던 과거에 대해 쓰는 일은 부끄러웠다.

주변에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 사람들에 비해 내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나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마음에 대한 글이 장애를 불행과 불쌍한 것으로 보는 기존의 인식을 재생산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깨닫고 바꿔나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와닿는, 그리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며칠 전, 내가 쓴 글 중에 '신체적 장애보다 힘든 것은 스스로 느끼는 마음의 장애다.’라는 문장을 '신체적 장애보다 힘든 것은 스스로 느끼는 마음의 아픔이다.'라고 고쳐 썼다. 마음의 장애라는 표현에는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문장과 생각들은 바뀌어 갈 것이다. 그 모습이 때론 미흡하거나 성숙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성찰하며 나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나의 이야기가 장애를 '극복'하거나 '이겨내는'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진짜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현실의 모습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고 얼른 상황이 바뀌거나 누군가 나를 이 시궁창에서 꺼내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청난 행운이 찾아오거나 귀인이 나타나 운명을 바꿔주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살면서 때때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의도치 않은 일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현실을 당장은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막막하고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나의 글이 이제 당신을 위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과거의 나처럼 삶을 연명하듯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당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글을 오래도록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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