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인 Mar 07. 2021

프롤로그. 눈앞이 캄캄할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폭염과 습한 날씨가 이어지던 2017년 여름, 그날도 어김없이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없는 안방의 창에서는 작열하는 태양의 빛이 그대로 들어왔고 몸에서도 열이 났다. 무거운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트북을 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을 써야만 했다.


'나를 죽여주세요, 하느님'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그 시기 나는 장애인인 나를 장애인이라 부르지 못했다. 서서히 저하되던 시력이 0.2까지 떨어졌고 2016년 6월, 시각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것을 알리지는 않았다. 스스로 '내가 장애인이라고?' 하는 마음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쇄된 활자를 보는 것이 어려워지고, 빛 번짐과 눈부심이 심해져 주간의 야외 활동이 어려웠지만 "눈이 좀 나빠서요.", "빛조절이 좀 안돼서요.", "약시와 색약이 좀 있어요." 하는 식으로 장애를 숨겼다.


사람들 또한 "난독증이 있구나.", "눈 수술을 해서 선글라스를 쓰는구나.", "안경이나 렌즈를 깜빡했나 보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선글라스 착용에 대해서는 하필 배우지망생이었기 때문에 간혹 '연예인병'이라는 곱지 않은 수식어가 붙는 걸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름보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연달아 찍고 난 후인 그해 여름, 나는 세 번째 작품을 말아먹고 내 인생까지 말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의 촬영기에 나오는 작품들은 편의상 단편 1, 단편 2, 단편 3이라 부르겠다.


단편 1은 대학생들이 성차별 예방 공모전 출품을 위해 만든 작품으로 여기에서 나는 신입사원 역을 맡았다.

시나리오상 야외씬이 하나도 없어 큰 부담은 없었다. 총 2회차에 걸쳐 촬영이 진행됐는데 첫 번째 촬영지가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다행히 스태프 한 분이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와 안내해주어 그곳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촬영도 수월하게 마쳤다. 두 번째 촬영은 대학교에서 이루어졌는데 모두 실내촬영이었지만 건물 간 이동이 많아 걱정이 됐다. 의상과 소품이 담긴 캐리어를 지지대 삼아 계단을 내려가는 등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이동했다. 촬영팀도 장비가 많아 천천히 이동했기 때문에 속도가 얼추 맞았고 그날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단편 2는 한겨레 영화아카데미 작품으로 나는 이혼 경험이 있는 회사원 역을 맡았다. 아파트 단지, 택시 안, 사무실, 카페 안에서 촬영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시나리오상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갑자기 장소가 바뀌기도 하고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위해 앞뒤로 새로운 장면이 즉석에서 추가되기도 한다. 그날은 아파트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장면과 아파트 계단을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는 장면이 현장에서 추가되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실내에서 야외로 이동하는 것, 그리고 낮에 계단을 내려가는 것. 이 두 가지는 일상생활에서 내가 가장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스태프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쉬지 않고 계단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일단 해보자.' 하고 슛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계단이 시작되는 경계를 보지 못하고 고꾸라질 듯 휘청했다. 스태프들이 일제히 "어~~"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순발력을 발휘해 계단에서 대자로 나자빠지는 비극은 면했지만 내 자신감은 이미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촬영용으로 섭외된 택시를 타고 그대로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감독님께 계단 대신 슬로프로 내려가도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연결장면이라 그럭저럭 잘 넘어갔고 이후 촬영도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단편 3은 단편 2와 같이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여기에서 나는 시인 지망생 역을 맡았다. 촬영을 연달아 하느라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고 단편 3의 경우 야외 이동과 촬영이 많아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출연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별 욕심 없이 참여했지만 감독과 상대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작품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소품도 직접 만들며 점점 더 욕심이 생겼다. 잘하고 싶었다.


촬영 당일은 한여름이라 매우 더웠지만 구름이 많이 끼어 비교적 눈이 편했다. 촬영장소에 미리 답사도 다녀왔기 때문에 장소도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원래 일정보다 진행이 더디게 되어 결국 하루 만에 다 찍지 못하고 추가 촬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촬영 날, 한 스태프랑 이야기를 나누다 1회차의 내 연기가 구리다는(돌려 말했지만) 평을 듣고 마음이 쓰였다. 전날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한숨도 제대로 못 잔 탓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고 더운 날씨에 화장도 다 벗겨져 민낯보다 더 구린 얼굴이 되었다. 위축된 마음 탓인지 감독의 디렉션도 이전과 달리 날카롭게만 느껴졌다. 배역의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의 감정에만 매몰되어 연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박스에서 시집 몇 권을 골라내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책등에 써 있는 제목들이 잘 보이지 않아 미리 꺼내야 할 책의 위치를 정해놓고 시집들을 골랐다. 시집을 뺐다 넣었다 하는 촬영이 반복될수록 긴장감이 증폭됐다.

극 중 내가 맡은 배역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시집을 각별히 골라내야 했지만 촬영현장에서의 나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긴장되고 걱정이 가득한 채로 시집을 골라냈다. 결과물은 늘 솔직하다. 원래부터도 타고난 연기파가 아니었기에 부족한 연기력에 긴장한 쫄보력이 더해져 다시 한번 연기가 구린 아마추어 배우지망생이 되었다.


나에게 실망했다.

나에게 절망했다.


진짜 죽고 싶었다.


이전에 일이 고되고 힘들 때 쓰던 '죽고 싶다. 죽을 것 같다.'라는 말은 엄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피해 주거나 상처 주지 않고 아무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작품 하나를 망쳐서 든 생각은 아니었다. 그간 시력 저하와 그로 인해 생긴 생활 곳곳의 불편함, 중도 장애라는 낯선 현실이 날 지치게 했다. 변한 나를 마주 보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 있었고 참고 눌러왔던 감정들이 그제서야 터져나온 것이었다.


그날 적은 문장은 몇 개월이 지나 지워졌지만 살만해져서가 아니었다. 열등감에 찌든 자기연민의 마음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적었던 문장 중에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나는 병신이고 싶지 않아요.

잘 살고 싶습니다.

정말 제대로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이날의 문장에는 내가 장애를, 장애인을 얼마나 편협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시선은 장애인을 천벌을 받은 자라고 여겼던 중세시대적 관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죽을 만큼 잘 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 들키거나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혼자 담고 있기에도 버거웠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