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다 다시 만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엄마, 아빠도 형아도 다 만나?
응 만나지.
그럼 거기서 돗자리도 깔고 밥도 먹고 그러자.
아주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둘째 아이의 첫 질문이었다.
아이는 하늘나라가 어디 유원지쯤 되는 듯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할 일들을 신이 나서 떠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쩐지 두려움과 슬픔이 묻어나게 들렸다.
아이의 그 말은 십 년이 넘게 지나서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나는 그때 그 말이 눈물 나도록 슬펐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는 용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이를 낳고 한없이 겁쟁이가 되었다.
무서운 놀이기구도 즐기고 내리막 길에서 스케이드보드도 타던 나였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다치는 게 제일 무서운 소심쟁이가 되었다.
아이가 스키를 타는 동안에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이가 없는 시간의 평화는 늘 내색하지 않는 불안함을 동반한다. 내가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엄마가 느꼈던 그 마음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괜한 걱정은 사랑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부터는 늙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주름이 느는 것과 흰머리의 개수는 이제 별로 중요치 않다. 자연스럽게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젊음을 지불하고 얻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가 않다.
젊음은 욕심나지 않지만 대신 아이와 처음으로 나눈 소풍 같은 죽음의 이야기는 이전보다 자주 떠오른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컸고 아이들 크는 것을 보는 잠깐 사이에 부모님은 흰머리의 노인이 되었다.
이제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세상의 모든 이별이다.
얼마 전에 들은 갑작스러운 엄마 친구분의 부고 소식과 요양원에 계시던 큰아버지의 귀천(歸天)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큰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아직도 모르신다. 차마 전하지 못한 이별의 무게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코로나로 찾아뵙지 못했던 후회가 슬픔보다 컸다.
아빠를 처음으로 잃을 뻔했던 작년 봄을 겪고 나서 아빠와 헤어질 때마다 나는 아빠를 꼭 안아본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처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빠의 온기를 안도하며 느낀다.
언제가 내가 겪어야 할 이별과 아이가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이별들, 나 없는 너의 세상에서 네가 감당해야 할 고단한 슬픔들을 나는 결코 어쩌지 못하겠지.
그저 함께하는 시간의 유한함을 잊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는 것만이 슬픔에 후회를 더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늘나라에 유원지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