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전 열한시 Oct 28. 2022

세상에 둘

첫째가 논술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막 잠을 깬 둘째가 형이 출발하기 직전에 나와서 아무 말 없이 형을 꼭 끌어안았다.

살다가 보면 잊혀지지 않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 장면이 내 기억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잘 보라는 말도 응원의 말도 없었지만 꼭 안아주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세 살 터울로 태어나 투닥거리기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나는 우아한 엄마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 보다 좋았던 순간들이 둘에겐 훨씬 많았다. 바닷가에서 모래를 파고 둘만의 성을 수없이 만들었고 함께 욕조에 들어가는 유일한 존재였고, 언제나 가장 빨리 화해하는 사이였다.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사이

추억도, 내게서 받은 사랑도, 상처도 비슷할 두 아이는 평생을 끈으로 이어져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설사 살아가며 그 끈이 느슨해진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당기는 순간 가장 기댈만한 언덕이 되어줄 거라 나는 믿는다. 그 믿음은 엄마인 내게 무엇보다 든든한 일이다.


초등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자기를 괴롭히던 한 아이를 혼내줬던 형은 어린 시절 둘째에게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전화에 첫째를 겉으로는 많이 혼냈지만 내 마음은 사실 첫째를 혼내지 않았었다. 형제는 늘 형제일 때 가장 용감했다.

둘째는 형이 비행기를 만들면 비행기를 따라 접었고 형이 책을 읽으면 책을 펼쳤다. 형은 뭐든지 잘한다고 말하던 둘째는 그때만큼 형을 추앙하지는 않지만 그때보다 더 깊어진 마음을 나는 그 포옹 하나로 느낄 수 있었다.

종종 부딪힌다 해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첫째는 둘째에게 학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문제집을 주문해 준다. 고 3의 시간을 기꺼이 쪼개어 준다. 자신이 힘들었던 것을 동생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역시 그랬다. 하나뿐인 동생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마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주  만난다고 해도  마음   동생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 가장 가까운 벗은 동생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살아가는 내내 가장  힘이 된다.

언젠가 인생이 많이 쓸쓸해질 때, 좀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날처럼 말없이 서로를 꼭 안아주길

늦은 밤 작은 침대에 둘이 누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많은 날들을 따뜻하게 간직하길

먼 훗날, 엄마 없는 어느 겨울날,

둘이서 내 이야기하며 첫눈처럼 웃어준다면 좋겠다.

매일을 사는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죄책감 버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