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먹던 토마토의 맛은 달콤함이다.
쓱쓱 썬 토마토에 설탕을 솔솔 뿌려 먹고 마지막에 달콤한 토마토 국물을 마시면 달달한 어떤 과일도 부럽지가 않았다.
토마토가 채소인지 몰랐던 어린 시절, 감바스 따위는 몰랐던 그때, 토마토는 우리 집 최고의 디저트였다.
언젠가부터 설탕은 건강의 적이라며 엄마는 더 이상 설탕을 뿌려주시지 않았는데 가끔 엄마 몰래 설탕에 찍어먹기도 했다는 걸 엄마는 모르신다.
갈아서 주스로도 종종 주셨는데 엄마가 토마토 주스를 건네는 날엔 엄마가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는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며 토마토가 아닌 사랑을 들이켰었다.
나도 가끔 엄마처럼 토마토 주스를 가족들에게 내밀며 내 사랑을 확인시켜 준다. 주부만큼 사랑이 필수인 직종이 있을까?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수고로움들이 참 많다.
나는 요즘 부지런히 한살림 문턱을 넘는다.
완숙 토마토는 정오가 넘으면 없을 때가 많다. 부지런히 사랑을 장착한 주부들의 손에 들려 사라지기 때문에 걸음을 서둘러야 만날 수 있다.
한살림 토마토는 오월이 돼서야 맛볼 수 있는데 그전에는 집에서 가까운 초록마을에서 사다 나른다. 하지만 가격은 역시 한살림이 좋다. 본격적으로 토마토가 많이 출하되는 유월부터는 장바구니에서 절대 빠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크면서 유기농 매장만을 꼭 고집하지는 않는데 토마토만은 절대 마트에서 사는 법이 없다.
몇 번인가 마트에서 구입한 적이 있는데 매번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온에 두어도 무르지 않는 신기한 토마토.
오래전에 갈수록 맛이 없어지는 과일과 채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이유는 품종개량 때문이라고 했다. 보다 예쁜 모양을 위해, 손쉬운 유통을 위해 겉모양만 신경 쓴 채소와 과일은 그 맛이 예전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르지 않는 토마토는 유통을 위한 조치였을까?
맛 또한 무언가를 첨가해 인위적인 단맛을 내는 것에는 거부감이 든다.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건강한 맛이 난다.
한살림은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그날그날 모두 사라진다. 제대로 익은 후에 따기 때문에 당도가 높고 껍질 또한 얇아서 어릴 때 먹던 토마토 맛이 난다.
토마토 앞에는 ‘완숙’이라는 두 글자가 필수다. 파란 토마토에는 ‘토마틴’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다. 올 초에 있었던 토마토 구토 뉴스도 이 토마틴이 원인이었다. 제철에 잘 익은 농산물은 건강하다.
구입한 토마토는 햇빛이 안 드는 서늘한 상온에 보관하는 것이 좋은데 토마토를 냉장 온도에 두면 항산화 물질인 리코펜이 40%나 감소한다고 한다.
토마토 꼭지를 제거하면 수분 증발을 막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 보관에 더욱 용이하다.
우리 집은 완숙 토마토를 구입해 3일 안에 소비하기 때문에 실온에 보관하는데 완숙이 아닌 토마토는 상온에서 후숙 하는 기간까지 포함해 더 오래 보관 가능이 가능하다. 하지만 완숙 토마토를 장기보관해야 한다면 냉장보관해야 한다. 또 토마토는 숙성을 가속화시키는 에틸렌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과, 오렌지, 배, 바나나 등과는 분리해 따로 두어야 한다.
우리 집은 창문을 열어둔 서늘한 세탁실에 꼭지를 제거한 토마토를 꼭지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둔 다음 면포로 덮어서 빛을 차단해 보관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토마토를 깨끗이 물로 씻어 토마토 달걀 볶음을 자주 하는데 타바스코를 뿌려먹으면 비린맛이 사라져 더욱 맛있다. 빵과 함께 먹으면 부족함이 없는 든든한 한끼가 된다. 토마토는 익혀 먹을 때 더 많은 양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이때 올리브유를 사용하면 흡수를 도울 수 있다.
나의 토마토는 옛날 엄마의 토마토 보다 훨씬 다양하게 활용된다. 파스타, 감바스, 샌드위치, 샐러드, 카프리제 등등으로 조급함 없이 금세 소진된다.
외식도 좋아하고 테이크아웃도 종종 하지만 손수 만든 건강한 음식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그 건강한 맛을 오래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곁에 없는 날에도 그 맛을 추억하고 스스로에게 선사하길 바란다.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건 스스로를 아끼는 첫 번째 방법이다. 그걸 가르쳐 주는 게 엄마의 소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