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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Dec 15. 2020

보헤미안랩소디와 글쓰기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열풍이었다. 너무 열풍인 것 같아서 나는 왠지 보고 싶지가 않았다. 열풍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삐딱한 기질도 있었고,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가 있어 따로 시간을 내어 영화 보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독서모임에서 한 멤버가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이 아닌가. n회차 관람은 진리이며, 싱어롱 상영관에서 떼창을 하는 감격과 재미를 전달해주었다. 진심이 묻어나는 열정을 보자 상영 종료되기 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2019년 1월 6일 울산 CGV에서 영화를 봤다. 혼자서. 가족은 모두 서울 처가에 방문 중이었다.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독서모임의 멤버가 받았던 감동과 재미는 나에게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 중에 나의 심장을 쿵쾅 뛰게 만든 장면이 하나 있었고, 그것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퀸의 인기가 점점 높아질 무렵, 한 콘서트장에서 수많은 팬들이 퀸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중을 지켜보며 프레디 머큐리가 지어 보인 묘한 웃음의 표정. 2시간이 넘는 영화 장면에서 그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와 같이 묘한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큐리의 표정으로부터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직업적 동질감. 


원래 그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부르는 음악의 소비자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는 당당히 음악의 생산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지금껏 다른 사람의 책과 연구 논문들을 읽어오며 지식의 소비자로 살아왔다. 박사과정을 끝내며 교직생활로 오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자 드디어 지식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히려 교과서를 충실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는 전달자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지식,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머큐리의 표정이 나의 소망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팬들을 바라보는 그의 감동이 나의 감동이 되어 돌아왔다.   


그해 여름, 2019년 8월부터 미국의 일리노이 대학에 연구교수로 1년 동안 머물기로 되어있었다. 마침 잘됐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며 집중적으로 책을 한 권 쓰자. 그때 누군가 조언을 해 주었다. 혼자 책 쓰지 말고 출판사와 미리 만나봐야 해! 혼자 신나게 글을 써서 출판사에 완성된 글을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미리 출판사와 교감이 있어야 나중에 편하다는 것. 그 이야기가 꽤 그럴싸해 보여서 무작정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경영 관련 책을 쓰려하는데,
출판사 컨택/기획 등과 관련되어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신 분 계신가요?
(어떤 도움이든...ㅠ)


다행히 지인들 중 출판사와 관계가 있는 분들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15년 이상 만나지 못했던 별로 친한적이 없었던, 최근 책을 출간한 후배 작가. 일 년에 두세 번 만나고 있는 외국 경영서 번역을 감수한 컨설턴트, 2-3년에 한 번 정도 만나게 되는, 출판사 대표를 알고 있는 옛 대학 선배. 이렇게 세명이 세 곳의 출판사 쪽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용감했다. 특별한 아이디어도 없고, 미리 써 놓은 글도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와 목차를 만들고 참고문헌들을 수두룩하게 적었다. 한 출판사에서는 내가 들고 간 목차를 보고 당황한 듯했다. 지금까지 글이라고는 논문이 대부분이다. 내가 들고 간 종이에는 연구논문 같은 제목에 참고문헌만 가득이었다. 


'이런 드래프트는 처음 봐요!' 


그쪽도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글들이 출판사로 배달되고, 거절된다. 편집자들과 시간을 내어 만나는 것도 어렵다. 지인의 소개로 시간을 내준 편집팀장에게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해주어 고마웠다. 그래도 한시 간 이상 커피숍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들과 만나면서, 내가 원했던 책과 사람들이 읽고 싶은 책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음을 알았다. 나에겐 신선한 내용이 편집자에게는 진부했다. 또, 나에겐 진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편집자에게는 신선한 것들도 있었다. 다른 책들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굳이 서점을 찾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검색이 가능하니 편했다. 책은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한 부류는, 힘들지?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야!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으니 좀 쉬어. 공감과 위로를 팔고 있다. 다른 부류의 책들은, 너도 장점이 있어! 너 자신을 알고 강점을 찾아야 해! 핵심인재가 되기 위한 비법들이 여기 있으니 읽어보라고. 꿈과 희망을 팔고 있다.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 공감과 위로를 팔기에는 나의 직장생활이 너무 짧았다. 큰 시련 없이 직장생활을 즐겼다. 꿈과 희망을 팔기에는 자신이 없다. 한 번은 친구에게 학교에서 리더십을 가르친다고 했더니 웃는다. 너도 약장수처럼 강의하냐? 체질에 맞지 않는다.


다니엘 핑크의 책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그는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팔고 있다고 했다. 영업사원은 자신의 물건을 고객에게 팔고, 가수는 자신의 음악을 판다. 책을 쓰기 위해 읽었던 '강원국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은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판다. 역사 교육학자 설민석은 자신의 역사 지식을 판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들은 미래의 꿈을 아이들에게 판다. 기획자는 자신의 상사에게 기획능력을 판다. 나는 무엇을 팔아야 할까?


그렇게 무작정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글 쓰는 방법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었다. 모두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었다. 그렇게 글쓰기 책을 읽던 중에, 유시민 씨의 <표현의 기술>에 있는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됩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나는 글을 쓰고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그런데 정작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누군지 말하려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글을 멈추었다. 아니,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철학을 알려고만하지, 철학을 하지는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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