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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Oct 06. 2023

그래도 감사합니다.

지갑 잃어버린 날

"××마트입니다."


"여보세요? 저기 바쁘신 데 죄송한데요,  분실된 지갑이 있나요?"


"네~ 빨간색 지갑 맞나요?"


"네!! 맞아요!! 빨간색 장지갑!!

지금 바로 갈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늘 그렇듯,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난 곧장 아파트 헬스장으로 향했고, 유산소 운동이랑 근력운동을 번갈아 하며 2시간 정도 알차게 운동했다.


헬스장 운동은 끝났지만, 나에게는 장을 보는 것도 다 일상운동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리고 이왕 땀 흘린 김에 장 보러 가려고 집에 가서 가방하나만 어깨에 둘러메고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내가 사는 동네는 크고 작은 마트며, 과일가게, 채소가게들이 대체로 일직선 상에 있어서, 난 평소 장을 볼 때 내려가면서 쭉 훑고(마트 앞 세일 전단지며, 노상에서 판매하는 과일이며, 채소상회에서 파는 채소들을 눈으로 먼저 재빨리 스캔한다는 뜻) 올라오면서 사는 편이다.


요 근래 과일이며 채소며 죄다 맛도 덜한 데다가 비싸지기까지 해서 장 보러 나가도 살만한 게 없어 헛걸음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따라 동네 마트 전단지에서도 세일하는 품목들이 많이 보이고 노상에서 판매하는 과일들도 신선해 보여서 내 마음도 한껏 들떴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하나로마트까지는 걸어가야 해서 꾹 참고 걸어 내려갔다.


하나로 마트에선 딱히 살게 없었지만, 비지를 공짜로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백팩 안에 비지 두 봉지를 기분 좋게 챙겨서 나왔다.


다음으로 들른 채소상회에서는 바나나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검은 반점이 있는 완전히 익은 바나나는 나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도 안 좋아해서 최대한 덜 익은 걸로 골라 넉넉하게 두 송이 사서 나왔다.


채소상회에서  멀지 않은 노상 과일가게에서는 하우스 귤을 또 싸게 팔고 있어서 귤을 사랑하는 딸을 위해 두 바구니씩이나 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들을 저렴하게 많이 사다 보니, 어느새 나의 백팩이랑 양손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비록 백팩에도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고 양손에도 과일들로 무거웠지만, 행복해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 룰루랄라 즐거웠다.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마트 밖에 붙여놓은 전단지 속 오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신선해 보이는데 세일까지 하는 오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구경이나 해보려고 마트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실제로는 그렇게 막 신선하지는 않았다. 가격이 저렴해서 아마 짐들이 없었음 샀을 테지만,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아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무거운 짐들을 내려두곤 마음 편히 푹 쉬었다.

점심도 먹고~ 샤워도 하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도 보고~

그렇게 마음 놓고 편하게 쉬고 있는데, 힐끗 시계를 보니 아이들 하교시간이 가까워져 었다.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려고, 평소 나의 분신과도 같은 크로스 가방을 메고, 장 보러 갈 때 메었던 백팩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데,


안보였다. 지갑이.


아무리 뒤져보고 털어봐도 나의 빨간 장지갑은 가방에 없었다. 혹시나 과일이 있었던 까만 봉지에 있지는 않을까 하고 봉지도 탈탈 털어보고 뒤져봤지만 내 지갑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지갑통째로 '밖에서' 잃어버린 건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뒤져보면 대체로 집안 어디에서 발견되고는 했었다.)


지갑이 집안에 없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하나로마트에서 잃어버렸나? 아니면 노상 과일가게에 두고 왔나? 그것도 아니면 아까 마지막으로 들렀던 마트에 두고 왔나? 어떡하지? 어디 놔둔 기억은 없는데...

지갑 안에 주민등록증이며, 신용카드며 다 있는데...

카드 정지부터 해야 되나? 아니면 주민등록증 분실신고부터 해야 되나?'


혼자 그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머리는 복잡하고, 뭐부터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이들 하교시간 알람은 눈치 없이 울리고, 나는 정신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


에잇! 일단 나가서 마지막으로 들른 마트부터 가보자 생각하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별의별 생각으로 복잡했다.


'지갑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누가 나쁜 마음먹고 내 신분증이랑 카드를 악용하면 어떡하지?

지갑만 찾을  수 있다면... 지갑 안에 카드랑 신분증만 그대로 있기만 다면 정말 좋을 텐데...

지폐는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지갑 안에 카드랑 신분증만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면서 마트로 뛰어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트에 전화를 걸었다.


"××마트입니다."


"여보세요? 저기 바쁘신 데 죄송한데요, 혹시 분실된 지갑이 있나요?"


"네~ 빨간색 지갑 맞나요?"


"네!! 맞아요!! 빨간색 장지갑!!

 지금 바로 갈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순간 속으로 '야호' 하고 외쳤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달음에 뛰어 헐레벌떡 마트 안으로 들어가니 누가 봐도 지갑을 찾으러 온 사람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직원은 나를 보자마자 지갑 찾아오신 분 맞냐고 했다.

나는 그렇다고 냉큼 대답했다.

직원은 오이 있는 코너에 지갑이 올려져 있는 걸 다른 고객이 발견했다고 했다.


'이 놈의 오이'


그때 그냥 지나쳤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괜히 들어가는 바람에 애먼 지갑만 잃어버리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갑을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직원분한테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트를 나왔다.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기에, 걸어가면서 지갑 찾은 기쁨을 만끽하기로 했다. 날아갈 듯 기분도 좋고 흥분이 되니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이 룰루랄라 너무 즐거웠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도 사람인지라 한편으론 지갑 안이 너무 궁금해졌다. 마트 직원분한테서 지갑을 막 건네받았을 때는 양심상 곧바로 지갑 안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트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확인하는 것도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마트에서도 조금 멀어졌고 이제는~ 확인해 봐도 되겠다 싶어 두근두근 조심스레 지갑을 열어보는데...

신분증도 신용카드, 체크카드도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휴~ 정말 다행이다.'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어라? 5만 원 지폐 한 장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지갑에는 빳빳한 5만 원 지폐 두 장이 분명 확실히 있었다.


얼마 전 대구에서 만난 엄마가 추석 때 못 내려 올 아이들에게 미리 준 추석 용돈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지갑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5만 원 지폐 한 장은 지갑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지갑을 찾은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지만,

그래서 내 지갑을 찾아 준 분께 사례금이라도 드리는 게 마땅하지만,

그리고 지갑을 찾기 전엔 지갑 안에 카드랑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갑 안 5만 원 지폐 한 장이 없는 걸 확인하니 한편으로는 좀 씁쓸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

지갑을 찾고 나니 오늘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턱 크게 쏘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의 빨간 장지갑을 찾아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속으로 말했다.


아이들 데리러 가는 길 파랗고 하얀 하늘은 왜 이렇게 예쁜지,

나의 발걸음은 왜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운지,

오늘 나의 오후는 새로운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갑은 반드시 가방 속에!


이제는 정말로~ 다시는~

지갑은 손에 들고 있지 않겠다고.


여러 번 넣고 꺼내는 게 아무리 번거롭고 귀찮아도 지갑은 무조건 가방에 넣겠다고.


당연한 사실이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렇게 오늘 또 한 번 경험을 통해 배웠다.


(비록 지갑 속 5만 원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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