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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Dec 05. 2023

요리요? 잘하는 편이에요.

라고 앞으로는 자신 있게 얘기할래요.


퇴근해서 곧 도착한다는 남편 전화에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가 남편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아들이 내 옆으로 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요리 잘해?"


"요리? 잘하는 편이지."


자신 있게 말하는 나의 모습에 아들은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 하고는 소파로 돌아가 앉는다.


손은 분주하게 요리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방금 내가 한 말을 떠올린다. '요리 잘하는 편이지.'이 말을 내 입으로 하다니,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우습다.

최근까지도 누가 요리 잘한다고 칭찬하면, 난 항상 "그냥 요리 좋아해요. 헤헤."라고 대답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요리전문가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분들에 비하면 난 뭐 아무것도 아니니 그리고 스스로도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요리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게 가장 맞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요리 잘해?"라는 아들의 물음에 "요리 잘하는 편이지."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우리 시어머니다.


예전에 어머님집에 갔을 때, 무슨 얘기를 하다가 어머님이 나를 보며 이렇게 얘기했었다.


"너 요리 잘하는 편이지."


그 순간 바로 웃기는 했으나, 속으로는 뭐지? 이 애매한 표현은? 했었다. 잘하면 잘하고 못하면 못하는 거지, 잘하는 편이라... 칭찬 같긴 한데, 뭔가 영 개운하지 못한 느낌에 혼자 괜히 그 말뜻을 곱씹어보기도 했었다.


'잘하는 편'이라는 말이 듣기에 따라 그리고 상대방의 어투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직설적 화법인 어머님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머님이 내게 한 '요리 잘하는 편'이라는 이 표현은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잘 안다. 어머님이 내게 한 그 표현 속에는 나를 알고 지낸 10년의 세월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부터 요리를 좋아하고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보니, 신혼 초 시댁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우리가 시댁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간 냉장고가 있었는데, 우리 냉장고에는 부산에서 친정부모님이 보내주신 음식들로 늘 가득 차있었다.


친정부모님도 따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신 건 아니었지만, 주변 분들께 늘 베푸시고 또 주변분들의 신뢰를 얻은 덕분인지, 항상 여기저기서 많이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그것을 두 분은 안 드시고, 모으고 모아 큰언니네, 작은언니네, 그리고 우리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셨다. 당시 시댁에서 살고 있어 안쓰럽게 생각하셨는지 나를 더 특별히 챙겨주셨다. 엄마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큰 아이스박스로 포장된 택배를 시댁으로 보내주셨다.


큰 택배가 도착하면 왠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는 했었다. 어머님도 절약을 하시는 분이라 엄마아빠가 보내주신 택배 속 음식들이 우리 살림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택배 속 음식들은 어머님이 그동안 안 드셔보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있어서 내가 그것들로 요리를 해서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다.


당시 어머님은 20여 년을 일만 하신 상황이었기 때문에 늘 드시는 것만, 그리고 자식들이 좋아하는 고기위주로만 요리를 하셨다고 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왔는데, 우리 엄마아빠가 보내주신 음식들로 내가 매일 새로운 요리를 해서 드리니 참 좋아하셨다. 초보 요리사임에도 내가 한 요리들이 맛있다며 항상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어머님의 칭찬으로 난 요리에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엄마아빠가 보내주신 택배 속 음식들로 요리하는 건 나에게도 항상 새로운 도전이었다. 검은 봉지 안에는 뭐가 들어있나 하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안에는 일일이 소분해서 깨끗한 투명비닐에 넣어 꽁꽁 얼린 머위나물이며, 머위대며, 두릅이며, 박나물  온 세상 나물종류들은 다 있었고, 고사리, 부지깽이, 취나물 등 말린 것들도 종류별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배 선장님인 엄마 친구 남편이 직접 잡은 이름 모를 생선들까지, 없는 거 빼고는 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다가 다 지도 못할 만큼, 엄마아빠는 몇 년을 그것도 매주 한 번씩 택배로 먹을 것들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그러면 난 그것들을 맛있는 요리로 변신시켰다. 아니 반드시 맛있게 만들어야 했다. 엄마아빠가 힘들게 정성껏 보내주신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시댁식구들도 나처럼 친정부모님께 똑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느꼈으면 했다.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보내주셔서 친정부모님께 항상 감사드린다는 어머님의 말을 들으면 친정부모님을 대신해서 나의 어깨도 덩달아 으쓱해졌는데 그 기분이 이상하게도 참 좋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나물요리는 나의 주특기가 되었고, 웬만한 집밥, 한식, 밑반찬은 혼자서 간단하게 후딱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모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종류의 음식재료들을 택배로 보내주신 친정부모님과 나의 요리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신 시어머니 덕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다 할 요리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리 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요리 잘한다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니 이제는 앞으로 어디 가서도 요리 잘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요리 잘하는 편이라고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얘기해 보렵니다.


"요리요? 잘하는 편이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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