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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Dec 18. 2023

시키려는 자 vs 안 하려는 자

남편과 아들의 대화


남편이 아들에게 묻는다.


"이제 곧 겨울방학인데, 방학 동안 뭐 하나 배우는 게 좋지 않겠어? 뭐 배우고 싶은  없어?"


"없어."


단호한 아들의 대답에도 꿈쩍하지 않고 남편은 또 한 번 묻는다.


"태권도도 좋고, 지금부터 배워도 늦지 않았으니 태권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빠도 태권도 어렸을 때 배웠잖아? 나중에 군대 갔을 때도 도움이 되더라고."


"친구들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 다 검은띠란 말이야. 내가 지금 태권도 시작하면 애들이 분명히 놀릴 거라고. 친구들이 놀리는 거 싫어."


아들의 말에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남편은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대쪽 같은 아들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꼭 태권도 아니어도 돼. 태권도 말고 다른 거 배우고 싶은 거 없어? 뭐든 배우면 좋잖아. 방학을 그냥 보내는 건 좀 아까울 것 같은데?"


"그럼 야구 배울래!"


"야구는 추운 겨울 지나고 봄에 배우고."


"그럼 배드민턴 배울래!"


"배드민턴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때 배우잖아."


"탁구는?"


"탁구는 아니고. 중국이기기 쉽지 않아."


어이가 없어 나도 한마디 끼어든다.


"아니~ 무슨 선수시킬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있나?"


"이왕 배우는 거 나중에 혹시라도 도움 되는 게 좋다는 거지."


남편 말이 우스워 난 한마디 더 덧붙인다.


"그럼 본인은 지금 골프 치는 거, 프로 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거야?"


내 말에 남편도 슬슬 짜증이 나나보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아들은 해맑게 또 얘기한다.


"아빠, 그럼 인라인은?"


"에이~~~ 그건 아니고."


양치하다가 순간 헛웃음이 나와, 나도 모르게 뿜을 뻔했다.

뭐 배우고 싶은지 얘기하라고 해놓고, 말하는 족족 다 안 된다고 하니 말이다.


"답정남~ 그냥 정해줘~ 괜히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지 말고, 본인이 했으면 좋겠는 걸 얘기해~"


"에이~ 여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애도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니야."


그렇게 남편과 아들의 대화는 어느새 나와 남편의 말싸움으로 있었다.


"아니 태권도 꼭 배워야 해?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애가 배우기 싫다는 데, 굳이 꼭 해야 돼? 하고 싶을 때 그때 하면 되잖아."


"애가 안 하고 싶다고 무조건 안 시키는 게 좋은 게 아니야. 하기 싫어도 학원 다닐만하면 다니는 거지."


"스텝 바이 스텝. 차근차근 하나씩 천천히 하면 돼."


남편과 나의 목소리가 커지니 아들은 겁이 났는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남편을 보며 얘기한다.


"아빠, 나 지금 잘하고 있잖아.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뭘 더 배우라는 거야. 자꾸 이것저것 배우라고 하니까 지금 하는 것도 다 하기 싫어질 것 같아."




우문현답이다.

남편 말에도 공감이 되지만, 아들 말에는 속에서 '와!'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남편이 좋은 의도로 아들을 위해서 얘기했다는 걸 잘 알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 한다고 해서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배우라고(시키려고) 하는지, 참...


그렇다고 내 생각도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어렵고 복잡하다.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하나만 생각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어떤 기질인지, 그리고 무엇에 관심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아들은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아,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오래 걸리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게 명확해지면, 곧바로 추진하고 도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아들의 기질과 성향과 성격을 잘 알기에, 난 부모로서 엄마로서 아들을 믿고 기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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