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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한 학기가 지난 2011년 겨을, 인터넷을 뒤적이다 신문 기사에서 예진이를 만났다. 뜻밖에도 그 기사는 연예란에 실려 있었다.
‘걸그룹 유노이아 데뷔. S외고 재학생 멤버 화제. 외고 졸업생이 아닌 재학생의 아이돌 데뷔는 매우 이례적’
사진에는 교복 차림의 예쁜 소녀 다섯 명이 활짝 웃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예진이가 있었다. 얼른 기사를 클릭해 읽어보니 “지니(본명 김예진, S외국어 고등학교 일본어과 1학년)”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믿기지 않아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틀림없는 예진이었다.
그래도 긴가민가하며 며칠을 보내던 중, 집으로 묵직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권오석 선생님께. 예진 딸 드림.’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고, 안에는 유노이아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데뷔 쇼케이스 사진, 데뷔 앨범 CD, 영상 메시지가 담긴 DVD, 키링, 팬사인회 초대장까지 들어 있었다.
“와, 지니다!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나 지니랑 같이 앉아서 얘기도 했다!”
예니가 환성을 질렀다.
“이제 데뷔했는데 무슨 자랑거리야?”
“엉? 얼마나 인기 많은데요? 애들 벌써 다 알아. 자, 이거만 아빠 거.”
예니가 편지만 남겨두고 CD며 사진이며 전부 쓸어 담았다.
2013년에는 컴백이라며 모든 멤버의 사인이 들어 있는 미니앨범 ‘블루밍 데이즈’와 각종 굿즈—사인 화보집, 응원봉, 기념 티셔츠. 팬싸인회 티켓 등—도 보내왔다. 물론 그것들도 예니가 몽땅 챙겨갔다. 저 ‘블루밍 데이즈’ 초도 한정 앨범은 요즘 프리미엄이 붙어 한 장에 20만원씩 한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한국 아이돌 그룹에 대해 솔직히 문화적 거부감이 있었다. 예진이가 아이돌? 이건 정말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거의 지구23의 예진이에게나 가능할 일 같았다. 그 아이와 너무 멀리 떨어진, 아니 정 반대에 위치한 세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아끼던 제자가 ‘기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결국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기왕 시작한 거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후부터는 예진이—아니, 지니 관련 기사만 나오면 꼼꼼히 챙겨 보고 영상도 챙겨 봤다.
유노이아라는 그룹에 대해 알아가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룹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막 벗어제끼고 웃음을 파는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더구나 저 현학적인 이름이라니.
나는 단번에 유노이아가 고대 그리스어에서 ‘좋은’을 뜻하는 접두어 Eu, 마음을 뜻하는 Noia를 합성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니까 ‘좋은 마음’, 조금 의역한다면 ‘마음 착한 소녀들’이라는 의미다.
의상은 교복이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교복이 10대에 데뷔하는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입는 상징이었으니. 소위 ‘청순 코드’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청순한 아이돌이라는 뜻에서 청순돌이라는 말이 있었다. 예진이는 청순돌 지니로 분류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청순이라는 말이 싫었다. 일본식 로리콘 문화가 느껴져서다. 이른바 청순돌 교복이 특히 그랬다. 속바지가 살짝 보이고, 허리살이 드러나는 교복 흉내 의상들. 그런 걸 어느 학교가 학생에게 입히겠는가?
나는 그 청순이라는 말의 함의, 아직 남자 경험이 없는 소녀가 자기도 모르게 성적인 매력을 풍기고, 그래서 고분고분하게 성적 대상이 되어줄 것 같은 판타지가 싫었다. 이른바 청순한 아이돌들이 입고 노래하며 춤추는 교복이야말로 그것을 유포하는 고약한 상징으로 보였다.
그런데 유노이아의 교복은 달랐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데, 그야말로 ‘교복’이었다. 특정 학교의 교복은 아니지만, 현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입혀도 전혀 문제 없을 교복이었다. 내 느낌에는 S외국어 고등학교 교복 느낌이 났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감색 체크무늬 자켓에 하얀 블라우스, 타이 또는 리본. 스커트도 다소 짧긴 했지만, 학생들이 실제로 줄여 입는 수준을 넘지는 않았다.
유노이아는 멤버들도 다른 아이돌 그룹과 느낌이 달랐다. 일단 다섯 명 모두 ‘어떻게 이런 애들을 다 모았지’ 싶을 만큼 예뻤다. 예진이 얼굴이 평범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하긴 예진이니까 평범해 보였지, 학교에서 예쁘다 소리 좀 들었을 아이들 어지간히 집어 넣어도 애들 말 대로 다 ‘오징어 각’이었다. 무엇보다 너무 단정했다. 청순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소녀들 사이에서 예진이가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자신이 이 팀의 중심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2013년에는 유노이아가 차트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아이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모두 유노이아를 알았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했다. 유노이아가 차트를 석권한 뒤로는 여학생들이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화장도 덜 한다고들 했다. 유노이아가 아이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어주었다는 말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이돌 그룹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정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뮤직 비디오를 보면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학생 차림을 하고 있을 뿐 학생으로 안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읽혔던 다른 아이돌과 달리 유노이아는 정말 학생, 그것도 본받고 싶은 학생으로 보였다. 어디선가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예쁘고 공부 잘하는 학생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돌이었다.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기막힌 기획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엘리트돌’, ‘건전돌’, ‘모범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있었다.
그룹 이름이 고대 그리스어라는 점, 노래 가사에 은근한 현학성이 묻어난다는 점, 곡들 대부분이 세이와 하린이라는 그룹 멤버들의 자작곡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관된 기획 아래 묶인 콘셉트로 보였다.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돌(물론 예쁨은 기본이다)’이라는 콘셉트.
그 콘셉트의 중심에 ‘진짜 외고생’ 지니가 있었다. 도대체 외고에서 출결, 성적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지만 어떻게든 해낼 거라 믿었다.
예진이가 내가 기대했던것과 좀 다른 방향이긴 했지만 확실히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노래와 춤으로 성공했구나 하며 받아들이기로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확실히 성공하긴 했다. 기껏 삐친 표정 지은 짧은 영상에 수백만 명이 반응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샤오룽바오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가, 마음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 댓글에는 틀림없이 예진이를 -그들은 지니라 불렀지만- 음흉한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아끼던 제자가 그런 욕망에 소비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좀 심하다 싶은 댓글들을 골라 일일이 훈계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쁜 댓글들이 늘어나는 속도는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고, 게다가 내 댓글에는 비웃음 섞인 대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마치 악성 바이러스가 내 흔적을 따라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상처만 안고, 지니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작한 ‘키보드 배틀’에서 조용히 패퇴하고 말았다.
며칠 뒤, 그 영상의 댓글 기능이 차단되었다. 더 이상의 악플이 달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나도 ‘제자 지키기 백기사’ 노릇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 구글 계정에서는 유튜브를 열기만 하면 유노이아 관련 영상이 우르르 올라왔다. 알고리즘은 정말 무서웠다.
당연히 ‘지니 샤오룽바오’ 영상도 목록에 있었고, 예진이가 예능에 출연해 자기보다 세 배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 사이에서
때로는 똑 부러지게 말하고, 때로는 애교를 부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들이 추천 영상으로 줄줄이 떴다.
예진이를 중학교 3년 동안 거의 매일 보았지만, 그때 들은 말 다 합친 것보다, 이 예능 프로그램 몇 꼭지에서 그 아이가 한 말이 몇 배는 더 많았다. 말투도 낯설었다. 태도도 낯설었다. 그야말로 애교가 넘쳐났다. 예진이가 애교? 이게 진짜 내가 알던 예진이가 맞나? 나는 영상을 되돌려 보며 확인했고, 그 반복 재생은 또다시 알고리즘을 강화시켰다. 어느새 나는 구글신께 ‘지니 덕후’로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