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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잠드는 바다(5) 딸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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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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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에 난감한 상황이 일어났다.

나는 유튜브를 이용하여 교육 자료를 자주 보여주는데, 유튜브를 열기만 하면 유노이아 관련 영상들이 상단에 줄줄 떴다.

그럼 그걸로 수업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애들이 그야말로 난리를 쳤다.

“쌤, 이거 또 봐요!”

“쌤, 이거 틀어주세요! 블루밍 데이즈요!”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유노이아의 히트곡 ‘블루밍 데이즈’는 온갖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휩쓸었고, 어딜 가나 들렸다. 클래식만 듣던 나조차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지금도 봄만 되면 무슨 계절행사처럼 곳곳에서 들린다.

학생들은 내 홈 화면에 유노이아 영상이 가득한 걸 보고 상상 이상으로 즐거워했다. 같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어른과 학생 사이에 동질감이 생긴 것이다.

“쌤, 귀여워요.”

“쌤, 진밍아웃 하셨네요!”

“진밍아웃이라니?”

어리둥절한 나에게 댄스 동아리 반장 민서가 정색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쌤 세대 남자 어른들 중 의외로 지니 팬 많아요. 저희 아빠도. 그런데 아저씨들이 여돌 좋아한다고 말하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아닌 척하다가 들키면 ‘진밍아웃 당했다’고 해요. 윤밍아웃이 원조고요.”

“그건 또 뭐야?”

“윤하 팬 들키면 윤밍아웃, 지니 팬 들키면 진밍아웃!”

내가 흥미를 보이자, 민서는 기회는 지금이다 싶었는지, 바로 유노이아 입덕 강연회를 시작했다.

“유노이아는 대세돌이에요. 멤버 구성이 진짜 환상이에요. 팬덤이 안 겹쳐 확장성 장난 아니에요.”

민서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 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카리스마 리더 다엘, 감성 보컬 하린, 사차원 래퍼 세이, 여신 비주얼 소이, 그리고 청순한 지니! 입덕 코스는 대부분 지니랑 소이예요. 그러다 보면 개성 강한 하린, 세이로 빠져들게 되죠. 리더 다엘은 덕질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럼?”

“리더니까 섬겨야죠.”

“리더?”

“팀원들과 스탭 사이를 조율하고, 스케쥴도 관리하고, 팀웍을 책임지는 자리를 말해요.”

“아, 그렇구나.”

나는 순간 “그럼 리더가 아니라 캡틴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리더는 좀 다른 뜻인데?” 라고 말하려는 직업병을 억지로 누르고 대신 “그럼 다른 멤버들도 다 역할이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신난 민서가 마치 랩하듯 말을 쏟아냈다. 덕분에 나는 아이돌 그룹에도 마치 운동팀처럼 댄스, 보컬, 랩, 비주얼이라는 포지션이 있다는 것, 각 포지션 마다 아주 정교하게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비주얼이 하나의 역할이라는 것이 이들을 클래식과 종류가 다른 종류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 받아들이려던 -예진이가 속해 있으니 그렇게 인정하고 싶었다-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비주얼, 즉 외모가 하나의 역할이라니?

하지만 일단 그건 접어두고 내가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보았다.

“지니 역할은 뭐야?”

“메인댄서. 그리고 센터.”

“다 똑 같이 추는 거 아니야? 칼 군무라 그러잖아?”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고요, 또 역할에 따라 안무 난이도가 다른 부분이 있어요. 가령 보컬들이 고음내야 하는데 동작 막 크고 그럼 안되잖아요? 메인 보컬하고 메인 댄서는 안무 동작이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많이 달라요. 지니는 메인 댄서인데다 센터라서 정말 빡세요.”

“센터는 또 뭐야?”

“아, 진짜 쌤. 아는게 뭐에요?”

그리고 민서의 엄청난 덕력에 시달려야 했다. 굉장히 많은 말을 들어야 했는데 그 많은 말들을 딱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지니가 에이스다.

P중학교 2학년 8반, 3학년 2반 에이스였던 김예진이 걸그룹 유노이아의 에이스가 되었다.

“아 참, 쌤, 지니 언니가 우리 학교 선배라던데 진짜예요?”

“맞아.”

내가 대답하자, 민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선망과 동경이 가득 담긴 그 표정.

춤을 좋아하는 민서가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헛바람’이 들어버리지나 않을까 싶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예뻤어요?”

“그럼. 와 예쁘다, 이 수준이 아니었어.”

“공부 엄청 잘했죠? 그러니까 외고 간 거잖아요?”

“물론이지. 93점 받아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운 적도 있지만.”

그러자 민서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망치면 93, 레알, 이게 말이 됨?”

결국 민서 뿐 아니라 옆에 있던 아이들까지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날 그 시간, 수업은 고대 문명의 역사가 아니라 ‘지니의 역사’ 수업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아이돌이 그저 ‘우리 학교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표정을 저렇게 밝게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도 문득 깨달았다. 예진이가 미처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이 세상에 꽤 큰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블루밍 데이즈’

수많은 아이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기 감정을 표현했고, 함께 웃고, 리듬을 공유했다.

아이들이 블루밍 데이즈의 후렴구를 뗴창했다.

“지금이 바로 Blooming Days 우리의 시작.”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나는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과연 몇 명이나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그러나, 뮤직비디오가 끝난 뒤 자동 재생된 영상 하나가 막 피어 오르던 내 마음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화면에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개그맨들이 교복을 입고 유치한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조롱하고 있었다.

예진이가 교복을 입고 그 사이에 있었다. 유노이아 무대 의상이 아닌, 진짜 S외고 교복이었다. 이름표엔 ‘지니’라고 적혀 있었고, 학교 마크는 핀 마이크가 전체는 보이지 않지만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게 절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덩치 큰 40대 남성이 팔짱을 낀 채 고등학생 흉내를 내며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너랑 안 놀아. 우린 급 떨어져서 예능 같은 건 안 나온다면서? 품격돌, 엘리트돌, 모범돌이 여긴 왜 왔어?”

조금 호리호리한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니까! 우리랑 섞이면 고급진 이미지 망가져.”

그 옆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약 올리러 온 거야, 인정하러 온 거야?"

예진이가 입술을 내밀고 약간 삐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지금 인사예요?”

순간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이 나오더니 방금 예진이의 그 표정이 반복 재생되더니 자막이 떳다.

‘나왔다, 샤오룽바오!’

그러자 남자들이 환성을 지르며 한꺼번에 뒤로 넘어가는 동작을 했다.

“으아아아아.”

덩치 큰 남자가 심장 부위에 손을 얹고 과장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소리쳤다.

“살려줘, 내 심장!”

심지어 옆에 있던 남자가 응급소생술 흉내까지 냈다. 그러자 다시 자막이 떴다.

‘지니, 샤오롱바오 신공 한 방으로 심장 단체 학살.’

이게 뭐라고 난 이 유치한 영상을 계속 보고 있었다. 더구나 수업시간에. 그런데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좋아라 했다.

영상이 계속되었다.

덩치 큰 남자가 스스로 수습하더니 말했다.

“근데 지니야. 투어 다녀온 얘기 하나 해봐. 해외 공연이잖아? 우리 같은 촌놈들 상상도 못 하는 데 갔다 왔잖아. 뭐 재미 있는 일 없었어?”

예진이가 손을 모으고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30대 남자들 이지만 설정이 같은 학생이라 그런지 태연히 반말을 했다. 이것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 투어 때 호텔 로비에서. 직원분이 나한테 오더니 ‘すみません、ジニさんですよね?うちの子どもたちがジニさんの大ファンなんです。よかったら、サインいただいてもいいですか?’라는 거야. 그래서 ...”

그리고 일본어가 쏟아져 나왔다. 일본인이 직접 했을 법한 완벽한 발음이었다. 그러자 뭔가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 그리고 어리둥절한 남자들의 얼굴, 그리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 남자들의 반응을 보는 예진이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덩치 큰 남자가 귀를 후비며 묻자 20대 남자가 슬쩍 나섰다.

“그거 일본어야. ‘혹시 지니 씨 맞으세요?’ 이런 뜻이야.”

“야, 그거보다 훨씬 길었잖아? 사기 치지마.”

예진이가 살짝 웃더니 이어 말했다.

“미국 투어 때는, 금속탐지기로 바디 스캔 하던 분이 ‘Wait… oh my god, Are you Jini? From Eunoia? I’m listening Blooming Days just now!’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역시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으로 홍수같이 영어가 쏟아져 나왔다. 예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아는 나로서는 전혀 신기할 것도 없는 유창한 영어였지만 아이돌 지니로 아는 사람들 눈에는 저게 정말 신기한 모양이었다.

남자들이 또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야! 나 영어 지금 한 단어도 못 들었어!”

“지금... 뭐라 그런 거야?”

그러자 또 웃었다. 내가 예진이를 중학교 3년 가르치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독특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너무 매혹적이라 저렇게 웃으며 뭔가 부탁하면 안들어줄수 없을 것 같은 웃음이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하는 샤오룽바오, 뭐든 들어주고 싶은 웃음.

“그냥 사전 찾아봐.”

자막이 나왔다.

‘사전 없으면 같이 못 노는 글로벌돌 지니’

그리고 다시 남자들이 떠들석하게 이야기하고 예진이가 얌전한 모습으로 그러나 수능 언어영역 킬러 문항에서나 나올법한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받고 이러면서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졌다.

슬쩍 교실을 돌아보니 아이들이 너무 즐겁게 보고 있었다. 순간 카메라가 예진이를 클로즈업했다.

“너무 예쁘다.”

몇몇 여학생들 입에서 반사적으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나는, 나조차 그 아이의 매혹에 빠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투, 표정, 발성, 눈동자의 흐름,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매혹을 위해 완벽하게 훈련되고 조율된 퍼포먼스였다. 내가 예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알고 있으니 알아챌 수 있었지 처음 보는 사람은 절대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겠지.

화면에 보이는 저 매혹의 기호로 가득 찬 모습은 원래 예진이에게 없었던 것들이다. 모두 배우고 익혔다는 뜻이다. 그제야 나는 아이돌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깨달았다. 적어도 깨달았다고 믿었다.

그들은 뮤지션도, 댄서도 아니었다. 그 본질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빠져나오기 어려운 감정의 기술자였다.

그날 이후, 나는 예진이를 더 이상 ‘예진’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너무도 예뻤던 예진이는 이제 너무도 매혹적인 지니가 되어 있었다.

내가 12년 만에 찾아온 예진이를 무의식적으로 ‘지니’라고 불렀던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단 한순간도 그 아이를 마음 속에서 예진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예진이는 중학교 졸업 후 사라졌고, 마치 해리성 양극 장애 같이 지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날 이후의 모든 시간은 ‘지니’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 아이가 무대에 있을 때, 예능에 나올 때, 화면 속에서 웃고 있을 때, 내가 자주 가는 아디다스 매장 벽에 걸려 있을 때, 나는 그 모습을 ‘예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그건 모두 지니였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12년 만에 다시 찾아온 그 아이가 ‘지니’가 아니라 ‘예진’이었음을.

“딸 할래요.”

중학교 시절, 그 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허허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그 말 한 마디를 12년 동안이나 혼자 기억해왔고, 그 기억의 조각을 찾아 나에게 왔다. 그러나 나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음으로써 그 아이를 내치고 말았다.

나는 그 아이가 나를 아버지처럼 믿던 시절을 까맣게 잊었고, 그 아이는 그 시절을 혼자 품고 살아왔다.

“예진아.”

조용히 이름을 불러보았다.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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