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부 봄 6화

권오석 2

by 권재원

2

시간이 아주 넉넉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석은 서둘러 사범대 간이식당 겸 매점, 일명 깡통이라 불리는 가건물 매장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나도 좀 넣을게.”

수현이 자기 배낭을 열어 오석의 짐을 일부 덜어 집어 넣었다.

“가자.”

오석은 본격적으로 가이드를 시작한다. 버들골 잔디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순환 도로를 건너 나오는 작은 저수지를 지나자 좁은 산 길이 나온다.

몸집이 작고 얼굴이 하얘서 조금은 약해 보이는 수현이라 과연 괜찮을지 걱정했던 오석이 민망할 정도로 수현은 의외로 체력이 좋아 보인다. 씩씩하게 잘 간다. 혹은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이 학교 들어온 아이들은 대체로 그렇다. 아파도 힘들어도 도무지 드러내지 않는다.

저수지를 지나면 제법 경치가 좋은 협곡과 작은 폭포들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경치 구경도 되고 길도 평평해서 갈만하다. 하지만 계곡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는 사면에서부터는 조금 거친 급경사길이 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현이 숨을 헐떡이며 힘든 기색을 드러낸다.

“쉬어 갈까?”

오석이 살짝 떠 본다.

“괜찮아.”

수현이 거절한다.

“혹시 힘들거나 피곤해?”

이렇게 물어봐도 고개를 가로 젓는다.

결국 저수지에서부터 낙성대 능선과 만나는 지점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르게 되었다. 여기서 낙성대쪽으로 틀면 전망이 좋은 마당바위로 가고 거기서 낙성대 역 쪽으로 하산할 수 있다.

그런데 수현이 뜻밖의 말을 꺼낸다.

“여기서 정상 멀어?”

오석은 얼른 시계를 본다. 시간은 넉넉하다.

“아니, 아주 멀지는 않은데, 길이 좀 험해. 위험할 수도 있고.”

“떨어져 죽을 정도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 나 올라갈래.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계획과 달리 오석은 수현을 데리고 정상인 연주대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정상 근처에는 밧줄과 쇠사슬을 잡고 매달리다시피 가야하는 아찔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수현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면서도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고 스스로 그 험한 길을 다 올랐다.

“야아!”

수현이 눈 아래 펼쳐진 파노라마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오석도 북쪽의 학교 캠퍼스와 삼성산, 동쪽의 과천과 청계산을 향해 두어번 소리를 더 지른 뒤 가방에서 간식을 꺼낸다.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들이 블레이저 차림에 크로스백을 맨 오석을 신기한 눈빛으로 흘낏 흘낏 보며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수현은 운동화라도 신었지 오석은 랜드로버를 신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내려가는 길은 낙성대 능선으로 안내했다. 가족 등산, 주말 등산 등으로 익숙한 코스지만 늘 올라오기만 했던 코스로 내려가려 하니 생각보다 훨씬 험하고 아찔했다. 마침내 수현이 여러차례 손을 뻗어 도움을 청했다.

오석은 국민학교 졸업한 이래 여학생 손 처음 잡아본다는 생각에 몹시 긴장했지만 수현은 오석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오석이 손을 내밀면 손이 아니라 손목을 마치 로프처럼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도 오석에게는 굉장히 자극적이라 수현의 손이 손목을 잡을 때 마다 온 몸에 전기가 통과하는 것 같았다. 자그마한 체구에 어울리는 작고 귀여운 손, 무엇보다 무척 따뜻한 손이다.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갈 때도 수현은 씩씩했고, 결국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시간 반 만에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다는 낙성대 앞으로 하산할 수 있었다.

“배고프지 않니?”

수현이 낙성대에서 전철역 가는 길에 늘어선 음식점들을 가리킨다. 물어보나 마나 한 말이다. 정상에서 먹은 간식은 이미 운동 에너지가 되어 증발해 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늘어선 음식점들의 면면이 가관이다. 감자탕, 닭도리탕, 순대국, 막걸리 등등의 메뉴가 적혀있다. 오석은 영 내키지 않는다. 수현 역시 그런 집들이 내키지 않는 눈치다.

마침내 오석이 ‘다락방’이라는 이름의 경양식집을 찾았다. 이름은 다락방인데 막상 가 보니 지하실이다. 그럼 지하 다락방이라고? 이건 동그란 세모나 같은 말이다.

그래도 실내는 그런 종류의 경양식집 치고는 어둡지 않아 세미나 같은 것을 해도 가능할 정도고, 보기에도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들이 적절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 괜찮아 보여.”

수현 역시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딱 이런 경양식집에 어울리는 메뉴다. 돈까스, 비후까스, 생선까스, 그리고 이것들이 조금씩 섞여 나오는 정식, 김치볶음밥, 하이라이스. 음료는 콜라, 사이다, 커피 중 하나 선택. 정식을 주문하면 음료 무료.

오석은 김치볶음밥을, 수현은 비후까스를 주문했다. 음식 나오기 기다리며 마주보고 앉아있으니 어색하고 부끄럽다. 고개를 바로 들면 수현의 선이 분명한 눈썹, 선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조명을 받아 더욱 윤기가 도는 하얀 얼굴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보인다. 작은 체구가 주던 어린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고, 훨씬 어른스러운 여성이 진지한 눈빛으로 오석을 보고 있다.

“아까 꿈이야기 했지?”

수현이 먼저 말문을 연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발음이 선명하다. 뉴스 앵커 하면 잘 할 것 같다.

“너도 들었어?”

“그럼. 옆에서 그렇게 싸우는데 그게 안 들려?”

수현이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소파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겨 마주보는 거리를 좁힌다. 오석은 수현의 얼굴이 더 가까워지자 남원 광한루에서 봤던 성춘향 초상을 떠올린다.

“아, 뭐. 별 대단한 얘기한 것도 아닌데.”

“어떨 때 보면 넌 정말 꿈꾸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언제?”

“지하철 안에서 나하고 민경이가 얘기하고 있을 때, 너 혼자 뭔가 멍하니 생각할 때가 많잖아? 뭔 생각하는 거야? 그럴 땐?”

“아니, 뭐 별 생각 안해. 그냥 여자애들끼리 수다 떠는데 끼기도 그렇고 그래서 그냥 멍 때리고 있었던거야.”

“그럼, 졸업하고 뭐 할지 아무 생각 안해?”

“글쎄. 모르겠어. 교사는 생각 없고. 어차피 우리 과는 발령도 거의 안나잖아? 회사 취직하는 건 그건 제일 마지막에 고려해 보고. 아무래도 독일 유학 가지 않을까? 그러려고 온 거니까.”

“교수되려고?”

“그것도 아직은 모르겠어. 일단 가서 철학, 시, 그리고 드라마를 공부해보고 싶어. 독일 연극 참 좋아하거든.”

“좋겠다.”

“뭐가?”

“그런 꿈이 있어서.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장은 어떻게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까 그 생각밖에 안 해.”

“졸업하는 게 그렇게 걱정이야? 그냥 4년 다니면 되는데?”

“그런 걱정이 아니고. 선배들이 전부 어떻게 하면 우리를 꼬셔서 운동권으로 만들까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학교 전체가 그러는 것 같아. 어느 모임이나 다 운동 가요 부르고 구호 외치고, 써클이란 써클은 죄다 결국은 데모하러 가는 써클 아니면 예수쟁이 써클 밖에 없고. 학과에 학회란 학회는 전부 운동권 학습 단위고.”

“하지만 그 운동권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때 무슨 불량 학생들 써클 같은 건 아니잖아? 광주 서방파 같은 조폭도 아니고? 어쨌든 그 사람들 다 좋은 뜻 가지고 하는 거잖아?”

“이상하네? 오석이 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왜 모임만 있으면 핑계 대고 빠져다녀? 과 전체 엠티에도 안 오고? 누가 봐도 마치 에그 지지 이러는 것 같거든.”

수현이 단숨에 뼈 때리는 말을 던진다.

“그건….”

졌다. 오석은 대답할 말이 없다.

“거 봐. 너도 꼬임에 넘어갈까 봐 무서운 거야. 그렇지?”

“그럼 거꾸로 물어볼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너는 과모임에 왜 참석해? 학회도 하고?”

오석도 뼈 때리는 말을 던져본다. 하지만 수현이 가볍게 대꾸한다.

“도망을 못 쳐서. 혼자선 그럴 깡도 안 생기고.”

“도망을 못 쳐? 왜?”

“민경이도 하영이도 다 그런 자리에 적극적이잖아? 걔들 가는데 나 혼자 안 갈 수 없어. 여학생들 세계는 그래. 하지만 그런 자리 갈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노력중이야. 틀린 말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낭만적인 이유로 내 인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잖아? 감옥에라도 잡혀가고 그래봐. 그럼 그 인생이 뭐가 되니?”

“그럼 너도 무서운 거네?”

“인정할게. 나도 무서워.”

그들은 저절로 나오는 한숨에 놀란다. 수현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우리 다 무섭네?”

오석이 한숨을 쉰다.

“그러게. 네말 듣고 보니 이런 식으로 어떻게 4년을 버틸지 걱정이다…. 난 데모하는 건 무서운 데, 외로운 것이 안 무서운 것도 아니고. 올바른 일을 해야 하는데 외면했다는 생각도 싫고.”

“착하고 불쌍한 오석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되.”

“왜?”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을 서로 알았으니까. 우리 친구해.”

수현이 손을 내민다. 오석은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악수하듯 흔든다.

“우리 원래 친구 아니었어?”

“아니, 과 친구, 학교 친구, 그런거 말고. 정말 친구. 친구는 하나가 있으나 열이 있으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우리가 친구 하면 외로움 따위 걱정 안 해도 될거야.”

“그럼 민경이는?”

“민경이는 이렇게 말하긴 좀 그런데, 벌써 물 좀 든 것 같던데? 데모도 여러번 한 모양이야. 하영이는, 뭐, 한 절반쯤 운동권 같고.”

“정말?”

“응. 우리 둘뿐이야. 그러니까 같이 도서관을 과사무실 삼아 학교 다니자.”

“그럴까? 난 8열람실이 좋아.”

“나도 그래. 그런데 거긴 아홉시 전에 자리 다 잡히니까 네가 먼저 와서 자리 잡아 놔. 너희 집이 더 가까우니까.”

“맞아. 너희 집 불광동이지?”

“응. 암만 빨리 와도 한시간 반 걸려.”

“좋아. 내가 아침 일찍 와서 자리 잡을게.”

오석의 머리 속에 중앙도서관 8 열람실에서 수현과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있는 이미지가 잔뜩 떠오른다.

“저기, 이제 손 좀 놔 줄래? 밥 먹게?”

수현의 침착한 목소리가 오석의 공상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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