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987년 1부 봄 7화

주민경

by 권재원

“어디 갔는지도 모르신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민경이 전화기를 내려 놓는다.

이걸로 다섯 번째. 전화할 때 마다 상용이는 집에 없다. 교회도 안 나온다. 얼굴은 커녕 목소리도 못 들어 본지 벌써 한 달이다.

민경의 마음 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돌아다닌다. 무슨 일이 있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나한테 크게 화 난 거라도 있는 걸까?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짜증난다. 왜 민경이 뭔가 잘못했을지 모른다는 따위의 생각을 해야 하나? 그런 자기검열 따위는 버리자. 그렇다면 혹시 다른 여자애 만나나? 어림없다. 민경이 아니면 그런 순둥한 샌님 쳐다볼 여자애 없다.

학력고사를 얼마 남기지 않은 작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 기억의 창고에서 되살아난다. 중추신경이 아프다.

장소는 선릉역에서 선정릉을 끼고 봉은사 쪽으로 가는 골목길. 웬지 이문세 발라드의 감성이 느껴지는 골목길 가로등 빛 그림자 아래에서의 기억. 상용의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 민경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과 여고생 신분으로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첫 키스.

“그만. 상용아, 그만.”

그때 민경이 얼떨결에 뱉았던 말이다. 너무 빨리 나가는 진도가 두려웠다. 그런데 상용이 생각보다 훨씬 심하게 의기소침해졌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픈 민경은 상용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대학 입시만 끝나면 그땐 정말로 정말로 예쁘게 사랑하자.”

대학 입시만 끝나면. 이 마법의 주문으로 봉인하고 미뤄 두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마법의 주문 앞에서는 골목길 가로등 그늘이고 뭐고, 첫 키스의 짜릿한 감촉이고 뭐고 단숨에 무력화 되었다. 민경은 얼떨결에 던진 말이었지만, 그 한 마디가 그들의 처지를 각인 시켜 주는 핵폭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민경의 풋사과 같은 연애는 그 선정릉 옆 골목 가로등 그늘 아래에서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대학 입학 시험이라는 말이 이전과 다른 의미를 얻었다. 대입은 이제 고역, 불안, 공포가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담은 말이 되었다. 대입만 끝나면 얼마든지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낼 수도 있고, 손을 어루만질 수도 있고, 부끄럽고 수줍게 포옹할 수도 달콤하고 황홀하게 키스할 수도 있다. 민경은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지루한 문제풀이 연습마저 달콤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대입은 진작 끝났다. 민경은 1지망을 썼던 영어영문학과는 떨어졌지만 2지망을 쓴 독어교육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민경의 사랑과 희망은 오지 않았다. 상용과 약속이 계속 어긋났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지만 합격자 발표 나고 한 달 지나도록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을 보면 상용이 일부러 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화가 난다. 농락당한 기분이다. 그 약속, 그 맹세는 상용도 같이 했다. 손가락도 걸었다. 엄지로 도장도 찍었다. 그런데 이게 뭔 꼴이람?

대학가 술자리에서 종종 나오던 엽전 열 닷냥인가 뭔가 하는 노래의 후렴구가 귀벌레처럼 들리면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짜라 쿵짜”

그래. 이거다. 쳐들어 가자. 지금이 무슨 18세기야? 지금은 1980년대다. 다소곳이 기다리는 요조숙녀의 시대가 아니다. 민경의 성격도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다.

박상용이 안 나와? 그럼 주민경이 쳐들어간다. 머리 끄댕이를 잡아서 끌고 온다. 한 달이면 그 고등학생 까까머리도 움켜잡을 수 있을 만큼 자랐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다.

민경은 결심을 세운다. 옷을 챙겨 입으며 거울을 보니 표정이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 같다.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밖으로 나선다.

아직은 완전한 봄이 되지 못한 3말4초의 차가운 바람이 미처 여미지 못한 옷깃 사이를 비집고 사정없이 돌파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미 치솟는 성깔로 끓어오르기 시작한 민경의 가슴을 이 정도 바람으로 식힐수는 없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화를 돋군다.

상용네 집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성난 걸음을 한 탓인지 민경은 10분 만에 상용네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했다.

전투적인 모습으로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이다. 정체 모를 쑥스러움이 손톱에 전기 스파크를 일으킨다. 민경은 초인종을 누르려는 손가락을 급히 멈추었다.

‘여자애가 막 이렇게 남자애 집에 찾아와도 괜찮을까? 혹시 너무 헤퍼 보이지는 않을까?’

하필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우습다. 문 앞까지 와서 이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민경은 이런 생각에 굴복하고 말았다. 아직은 아직 21세기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자존심까지 불쑥 불쑥 치밀어 오른다.

“내가 왜?”

이런 말이 자꾸 튀어 나온다. 이건 웬지 꼴이 좀 아닌 것 같다.

다시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아파트 밖으로 나오고 보니 이 꼴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전의를 불태우며 모 아니면 도라는 각오로 왔는데, 이렇게 초인종 한번 못 누르고 돌아섰다. 정말 꼴이 우습다. 하지만 이미 나온 계단을 다시 올라가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할 일 없이 아파트 단지를 오락가락 하다 보니 몸에 밴 버릇 때문인지 발 걸음이 고3 때 공부했던 독서실을 향한다. 이거야 말로 완전한 조건 반사, 아니 습관 형성이다. 독서실이 있는 도성국민학교 사거리까지는 꽤 먼 거리지만, 늘 버스를 타고 다녔던 그 길을 귀신에라도 홀린 듯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터벅터벅 걷는다.

오른쪽에 진선여고와 그 건너편에 있는 개나리 아파트가 보인다. 문득 입학식 때 처음 만난 권오석이라는 과 동기가 저기 사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거리에 있는 독서실에 들어서자 무료하게 있던 총무가 이목구비를 한꺼번에 벌리며 일어선다.

“아니, 민경이 아니냐? 야. 참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요즘 좀 어때요?”

“어떻긴. 간만에 한산해서 편하지. 원장님은 수입이 줄어서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푸훗. 그럼 저 안에는 텅 비었겠네요? 아직 학기 초인데 누가 오겠어요?”

“거의 비었지. 참 그런데, 민경이 너 이거 봤니?”

“뭔데요?”

“광고지야. 우리 독서실에서 공부한 학생들 중 서울대에 15명이나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거야. 물론 네 이름도 있어.”

“어머. 챙피하게 왜 이런걸.”

쑥스럽다. 그저 베시시 웃을 수 밖에.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하다. 비록 제일 꼬랑지 학과이나마 서울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난 12년간 엄청난 통제와 제제 속에 살아야했던 삶이 180도로 바뀐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합격자 발표가 난 그 순간부터 어른들은 민경에게 더 바라는 것이 없다는듯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드넓은 자유의 바다를 열어주었다. 그러다 문득 통제 받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아무리 고통스럽던 기억도 일단 추억이 되면 아름다운 것일까?

“저기, 저 안에 한번 들어가 봐도 돼요?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데….”

“그러려무나.”

민경은 독서실 문을 바시시 밀고 컴컴한 방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본다. 대부분의 자리는 텅 비어 있고, 남학생 하나만 스탠드 불을 밝힌 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누굴까? 성질이 아주 급한 학생인 모양이다. 3월 달부터 독서실을 다니다니. 민경이 그 학생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소리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지나가는데, 어라? 등판이 낯이 익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 정말이네?

순간 놀람과 반가움이 갑자기 복받치며 민경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사, 상용아!”

“어? 민경아! 여, 여긴 웬일이야?”

오히려 상용이 더 놀란 것처럼 보인다. 무엇인가를 후다닥 감추는 것이 마치 포르노 보다 엄마한테 들킨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책 표지에 ‘수학의 정석’이라는 글자가 형광등 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그 동안 소식도 없이 나 피하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거야? 갑자기 웬 입시 공부?”

민경은 너무 어이가 없어 화를 내는 대신 웃어버린다. 상용은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본격적으로 화가나기 시작한 민경이 상용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든다. 하지만 넓은 등판을 가진 상용의 상체는 꿈쩍도 안한다.

“미안해.”

“미안? 미안으로 끝날 일이 아니잖아?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대입만 끝나면 대입만 끝나면 이러고 미뤄두었던 우리 약속은 다 뭐야?”

“나가서 얘기하자.”

상용의 맥없는 목소리가 마치 주문처럼 흘러나온다.

“좋아. 나가.”

민경은 상용을 따라 독서실을 나온다. 명색은 봄이지만 사실상겨울은 3월이라 도심의 국지풍이 매섭게 불고 있다.

“왜 나 피했어?”

“피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일부러 피한 거 맞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그럼 뭐야? 알아듣게 좀 말 해봐. 그 참고서들은 뭐고?”

“나도, 나도 말이야.”

상용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네가 뭐?”

“민경아. 나도 네가 좋아. 하루라도 안보면 미칠 것 같아. 그래서 그 동안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에 지겨운 줄도 모르고 공부 했어. 그런데 이제 다 틀렸어.”

“너 시험 망쳤구나. 시험 다음날부터 아무 소식 없더니 그랬구나? 그렇다고 그게 날 피하고 숨을 일이야?”

그러자 상용이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 올해 대학가는 것 포기했어. 재수할 거야. 난 아직 대입이 끝나지 않았어. 고등학교 4학년이야. 아니면 3학년 3학기던가.”

상용의 말을 듣고도 민경은 전혀 납득이 안 간다. 계속 다그칠 수밖에 없다.

“좋아. 재수한다 쳐. 그 말을 왜 못해? 재수가 그렇게 챙피한거야? 얼마나 많이들 재수 하는데? 너한테 난 뭐니? 넌 나를, 재수해서 얻을 학력 고사 점수 몇 점을 위해 포기한거야? 그래서 다음 학력 고사 때까지 나한테 코 베기도 안 보이려 한 거야? 만약 3수 4수 하게 되면, 몇 년 동안 나 안 볼 생각이었어? ”

“아니. 틀렸어.”

갑자기 상용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뀐다.

“틀려? 뭐가?”

“재수 3수 4수와 상관없어. 난 너를 몇 년이 아니라 영원히 안 볼 생각이니까. 우리 사이는 끝났어. 미안해. 그 얘기 너한테 직접 하기 너무 힘들어서 그냥 잊혀 지려 했어. 얼굴 안 보면 자연히 잊혀 질 테니까. 철없던 사춘기시절의 풋사랑 따위는 말이야. 그 동안 즐거웠어. 미안해. 그럼 잘 있어.”

상용이 머리를 감싸 안고 돌아선다.

순간 민경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이게 뭐야? 이렇게 끝나는거야?

“상용아!”

일단 돌아서는 상용의 옷깃을 잡았다. 그러나 상용은 그 손을 간단히 뿌리치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민경이 뒤에서 소리친다.

“열심히 공부하면 되잖아? 넌 머리가 좋으니까 올해는 실수라 치고 내년에 더 잘 할 수 있잖아? 나도 1년 휴학해서 학년 맞출게. 그러면 되잖아?”

민경은 이런 소리까지 하고 있는 자신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쏟아낸 말이다.

“아! 민경아!”

그런데 상용이 갑자기 주먹으로 어느 집 담장을 있는 힘껏 휘갈긴다. 쿵 소리가 나면서 주먹가죽이 벗겨지고 상처 입은 진피 사이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린다.

“아악!”

피를 본 민경의 입에서 초음파 보다 조금 낮은 비명이 터져나온다. 상용의 목소리가 마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낮고 답답하게 들린다.

“교회에서 처음 봤을 때 부터 네가 좋았어. 너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너무 기뻤어. 그런데, 네가 정신여고 1, 2등 다툰다고 누군가 귀띔해 주더라.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했어. 나도 꿀리고 싶지 않아서 휘문 고등학교 전교 3등이라고 뻥쳤어. 그래 뻥이었어. 난 서울대는 커녕 인 서울 대학도 자신 없어. 그게 내 본 모습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서울대를 가면 어떻고 전문대를 가면 어떻고, 아예 아무 대학도 못 가면 어때? 서로 좋아하는데?”

“맞아. 상관없어. 적어도 지금은. 하지만, 하지만, 결국 그게 상관있게 될거야. 결국….”

“아냐. 절대 아냐.”

민경은 아니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야 다음에 붙일 어떤 이유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상용은 다시 등을 돌리고 저벅저벅 멀어져 간다.

말도 안 된다. 어이가 없다. 민경은 소설에서도 만화에서도 영화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이런 바보 같은 이유의 이별장면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경은 상용이의 등판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눈물만 꾸물꾸물 밀려나온다. 결국 민경은 눈물을 닦지도 못한채 돌아선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얼룩덜룩한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차라리 공기를 헤치며 허우적 거리는 것에 가깝다. 공기의 무게와 질감이 느껴질 정도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흥청거리는 강남의 밤거리를 준비한다. 선정릉 옆 골목길의 가로등도 잠시 깜박거리더니 불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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