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부 봄 8화 박연철

박연철

by 권재원


“시방 자냐?”

명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연철은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찰나를 명호가 뛰어들어 엉망으로 만들었다. 연철은 이렇게 애매하게 잠들다 말다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예민한 체질이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 마다 연철은 명호의 그런 무신경함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 서운하기도 하다. 그런데 저 김명호 녀석은 넉살이 너무 좋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연철과 같이 예민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도무지 공감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자기가 등만 붙이면 3분만에 잠든다고 남들도 눕기만 하면 언제든지 잠잘수 있는 줄 안다.

“깊이 잠들려는 참이다. 건드리지 마라.”

“그래도 내 얘기 좀 들어 봐라.”

“잔다니까. 자는 놈한테 무슨 얘기?”

“나 동아리 들었다.”

명호의 목소리에 뭔가 뻐김 비슷한 톤이 느껴진다.

연철은 체념한다. 아무래도 잠자긴 다 틀렸다. 그냥 이야기하자는 거 다 들어주는 수 밖에. 고등학교때 부터 저 김명호란 놈은 그랬으니.

연철은 몸을 일으키고 앉고 본격적으로 맞장구 쳐 줄 준비를 갖춘다.

“동아리? 무슨 동아리?”

“동양사상 연구회, 줄여서 동사회. 내가 명색이 역사과 학생인데 옛날 사상 공부를 좀 해야 쓰지 않겠냐?”

“풉.”

연철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잡아 누르지만 그 중 몇 자락을 흘리고 만다.

“어찌 웃냐?”

명호가 발끈한다.

“네가 너무 순진해서.”

“나 순진한 거 나도 안다. 그런데 그게 웃을 일이냐?”

“너 거기가 뭐 하는 동아리인지 알고 든거야?”

“아니 뻔한 것 아니냐? 동양사상 연구회인데? 사서삼경 읽고, 제자백가 읽고, 사기 같은 것도 읽고 그러는 데 아니겠냐? 아니면 불교 같은 거 연구할라나?”

“아이고, 맙소사.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한거냐?”

“아니면 동양 사상에 뭐가 또 있는데? 설마 쪽발이 철학 같은 거라도 한다는 거냐?”

“거기 이념 서적 공부하고 데모 많이 하는 동아리다. 동양 사상은 무슨? 하긴 모택동, 김일성도 동양 사람이니 동양사상으로 쳐 주겠다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 기왕 들어갔으니 데모나 열심히 해라.”

“이 자슥이 무슨 놈의 말을 요래 싸가지없이 하냐?”

“잘 하라고 격려하는데 왜 골을 내?”

“관두자. 관 둬.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그려. 그려. 네 말대로 잠이나 자자.”

“그래. 제발 부탁이니 잠 좀 자자.”

명호도 불을 끄고 정식으로 이부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깬 연철의 예민한 두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수면 상태로 들어가지 않는다. 계속 잠들기 위한 이 무의미한 노력을 해야 할까 차라리 일어나서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명호가 발끝으로 툭툭 건드린다.

“연철아. 너 아직 안 자지?”

“덕분에 못 자고 있는 중이다.”

“너는 데모해 봤냐?”

“데모? 무슨 데모? 교문 돌파 투쟁? 가두 투쟁?”

“뭣이든.”

“교투는 해 봤다.”

“화염병이랑 짱돌도 던졌냐?”

“아니.”

“내일 학교에서 큰 시위가 있다지?”

“그렇다고들 하더라.”

“그럼 우리 같이 가 볼까?”

“관둬라.”

“왜?”

“가고 싶으면 너희 과 선배들하고 같이 가.”

“그럼 넌?”

“난 우리 과 사람들하고 같이 가지. 뭐.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 어차피 페다고지 광장에서 사범대학생들 같이 모여서 갈거니 거기서 봐.”

“그럼 나도 그럴까? 그란디 연철아. 너 학회는 할 거냐?”

“한다. 넌 안 하냐?”

“아직은 안 하지만 조만간 하나 하긴 할 것 같다.”

“그럼 그거나 열심히 해. 괜히 돌이니 화염병이니 객기나 부리지 말고.”

“연철아. 학회라는 게 한 마디로 순 빨갱이 사상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그걸 이제 알았어?”

“그런 것 하다가 나 진짜 빨갱이 골수 운동권 되어 버리면 어쩌냐?”

연철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에이. 잠 자긴 다 틀렸다.”

결국 연철은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난다. 그 바람에 드리내리워진 형광등 스위치가 모빌처럼 흔들거리며 춤을 춘다. 연철이 춤추는 형광등 스위치를 잡아 누른다. 몇 번의 충격적인 번쩍임이 눈을 몸서리치게 만드는가 싶더니만 순식간에 방 안이 환해진다.

“자식아. 불은 또 뭐하러 켜냐?”

갑자기 내리 쏟아지는 차가운 형광등 빛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찌그린 명호가 투덜거리지만 연철은 들은 척도 안하고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꺼내 소리가 날 정도로 방바닥에 세게 내려놓았다.

“울랄라? 어쩐 일이냐? 이제는 술까지?”

“자. 일단은 한 잔 받아. 맨 정신으로는 말 못하겠고, 너도 맨 정신으로는 못들을 말이니까.”

연철이 어리둥절해하는 명호에게 종이컵에 소주 한 잔을 가득 따라서 들이밀었다.

“나야 주는 술은 절대 사양 안 하는 놈이니 받기는 받겠다만 잠 좀 자자고 투덜대던 자식이 별안간 일어나서 소주까지 까고, 이것이 무슨 짓이냐? 문자 그대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 아니냐?”

연철이 투덜거리는 명호를 되도록 눈빛을 딱딱하게 만들어 보려 애써가며 보며 말한다.

“사실 내일 시간 봐서 말 하려고 했는데 어차피 잠 자기도 틀리고 했으니까. 지금 하자.”

“중요한 말? 아따 은근히 겁나고 긴장된다 야.”

“나, 결심했어.”

“뭔데 그것이?”

“나 학생 운동 할 거다.”

너무 단정적인 연철의 말에 명호가 충격 받았는지 눈동자가 덜덜 떨린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그러니까 밤낮없이 데모하고 돌 던지고 수배 당하고, 경찰들 피해 숨어 다니고, 그러겠단 말이냐?”

“뭐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셈이지.”

명호가 손을 스핏파이어 프로펠러처럼 휘휘 내 젓는다.

“아이고. 그런 생각이라고는 아예 하지를 마라. 그것이 완전히 신세 망치는 지름길 아니냐? 그러다 결국 감옥소 들어가고 애써 들어온 대학 짤리고. 네 인생 완전히 조져 버리는 것 아니냐? 안 그러냐?”

“그래.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 맘 다 이해한다.”

“그런데 왜?”

“난 어정쩡한 게 싫어. 학교에서 공부하다 틈틈이 데모나가 구호 외치고, 그러다 대학교 졸업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회사 취직해서 화이트 칼라로 편안하게 살아가고,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평범한 소시민으로 늙어가고. 그런 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아.”

연철은 일단 생각 나는 대로 술술 말하긴 했지만, 이게 본인 생각인지 골수 운동권인 형한테 세뇌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연철은 처음부터 생각한 바가 있었다. 만약 소시민으로 살아갈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윤리교육과 따위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수로 연대 경영이나 이런 데 갔을 것이다. 아니면 민주주의고 뭐고 관심 끊어 버리고 과 모임도 싹 다 씹고 고시촌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연철이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고 있자 명호도 내젓던 손을 가라 앉힌다. 그리고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어온다.

“그럼 앞으로 어쩔 작정이냐?”

“내가 윤리교육과 지망한 이유는 철학 공부 때문이야. 철학은 세계에 대해 사유이고, 세계는 내 의식밖에 따로 떨어져 있는 객체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곧 세계의 부분이며 내가 하는 말 하나 하나가 행동 하나 하나가 세계를 만든다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모순투성이라 확 갈아 엎어야 한다면? 나 역시 세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나 자신도 확 갈아 엎어야 한다고. 그래서 유교에서도 나날이 새로워진다고 한 거 아니야? 난 완전히 달라지고 싶어. 시대의 소명을 다하고 싶어. 그게 진정한 철학도의 길이니까. 난 그 길을 당당하게 걸어 볼 생각이야.”

명호가 놀랬는지 입을 쩍 벌리고 연철을 바라본다.

“어이, 박연철. 네가 이렇게 유식한 놈이었냐?”

연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그걸 처음 알았냐?”

명호가 연철의 어깨를 천천히 두드린다.

“그래. 뭔 소린지 당췌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지만, 나는 네가 뭐든 완벽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놈이란 걸 아니까 네가 그런 결심 함부로 안 했다 믿는다. 그래도 이번만은 네가 나한테 맨날 하던 충고를 거꾸로 하고 싶다. 너무 급한 것 아니냐? 대학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 지났다.”

연철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급하다니? 오히려 너무 늦었어. 합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한 선배가 고문으로 죽었다는 소식부터 들었어. 입학식 하는 날부터 최루탄 가스 뒤집어쓰고 화학적으로 강요되는 눈물을 흘렸어. 대통령은 상관을 납치 고문한 반역자에, 시민을 학살한 살인마야.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고 이런 것들을 고치기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고 그 뭔가 하는 일이 다만 자기 할 일 다 하고, 챙길 거 다 챙겨 가면서 틈틈이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 깨닫는데 무슨 긴 생각이 필요해?”

“그래. 그것은 네 말이 맞다.”

“선배들 따라 교문싸움 나가 봤어. 멀리서 냄새만 맡아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되던 최루탄 가스를 정통으로 맞아가며, 그 너절한 화학 물질들을 온 몸에 허옇게 뒤집어써가며, 그 놈의 지랄탄과 백골단의 몽둥이에 쫓겨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코를 깨 가며 말이야. 그 순간 나의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어.”

연철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명호가 빈 잔에 제 손으로 소주를 따라서 단숨에 들이켜더니 잔을 탁 내려놓더니 숨을 한 번 푹 쉬고 말한다.

“나는 말이다. 네가 한 결정은 무조건 믿는다. 솔직히 나는 평소에는 수업 열심히 듣고, 캠퍼스 낭만도 즐기고, 미팅도 하고, 당구도 치고, 그러다가 가끔 데모도 나가 사나이 의협심 한번 떨쳐 보고 그렇게 살다 졸업하면 취직하고 결혼해서 부모님한테 은혜도 갚고, 오손도손 토끼 같은 새끼도 키우고, 번듯한 내 집 하나 서울 바닥에 마련해 두고, 그렇게 살자, 이 생각 하고 있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좀 부끄럽고 쪽팔린다.”

“무슨 쪽팔림까지.”

“하지만 말이여. 연철아. 부모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없는 살림에 소 팔아, 논 팔아 우리 학비 대주는 부모님들 말이다. 아, 너희 집이야 그렇게 없는 집은 아니겠지만서도, 그래도 부모님 생각 안 할 수 없지 않냐? 그 분들이 우리한테 바라는 게 캄캄한 감옥소 가는 것은 아닐 것 아니냐? 그렇지 않냐?”

연철이 깜짝 놀란 얼굴을 짓고 명호를 본다. 평소 단순하다고 살짝 무시하고 있던 명호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얼떨결에 대답한다.

“그러니까 반드시 투쟁에서 승리하고 멋진 세상을 선물해 드려야지.”

연철은 대답하면서도 자기 자신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설득이 안되는데 누굴 설득하겠는가? 말은 했지만 연철은 명호가 이 말을 받아들일 거라 전혀 기대가 안된다. 당연한 결과로 명호가 반발한다.

“하지만 내 멍청한 눈으로 보기에도 너가 말하는 멋진 세상은 너무도 멀리 있고, 감옥소는 너무도 가까이 있다. 그것이 연철이 네 영리한 눈에는 어찌 안 보이냐 이 말이 하고 싶다. 게다가 자식 가진 부모님들 눈에는 먼 희망보다는 가까운 위험이 항시 먼저 보이는 법이다.”

연철은 이 말에 그만 맥이 쑥 빠지는 것을 느낀다. 고등학교때부터 그랬지만 자기 입으로는 늘 단순 무식한 촌놈을 자처하는 명호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놀랄 정도로 예리한 면이 있다. 다만 생김새와 말투가 투박할 뿐이다.

부모님 생각.

이 단순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갈등의 근원. 소 팔고, 땅 팔고. 농촌 출신 학생들에 대한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힘들여 일한 돈으로 대학 다닌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연철네 집은 못 배워 땅만 파는 가난한 우리 부모, 이런 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 것은 맞다. 연철네 집은 진안 고원에서 작은 목장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장에서는 소와 양을 키우고 농장에서는 인삼을 재배한다. 인삼은 여러해 재배하는 작물이라 해마다 필요한 생활비는 소를 팔고, 목돈 들어가는 큰 일은 인삼 팔아 마련한다. 그런데 연철의 아버지는 형에게도 연철에게도 목장이고 농장이고 물려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내 힘 닿는데까지 하다가 죽기 전에 팔아 버리련다.”

연철의 아버지는 목장과 농장의 운명을 이렇게 정해둔지 오래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들이 농사일 하는 대신 양복 입고 넥타이 맨 번듯한 화이트 칼라가 되기를 바라지 경찰의 수배에 쫓겨 다니는 지하 혁명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연철은 민족민주학생연맹, 일명 민민학련 활동하던 형을 떠올린다. 명색이 서울대학이라고 보내 놨더니 무슨 빨갱이 조직, 그것도 전국 조직 간부나 되어 결국 감옥에 끌려간 형. 그럭저럭 석방은 되었지만 아버지와는 거의 의절한 것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형이다. 그러고도 아직까지 인천인지 울산인지 가서 여전히 지하 운동 하고 있다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형이다.

그런데 만약 동생인 연철까지 운동권이 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흔한 말로 뒷목 잡고 쓰러지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다. 아니면 쇠똥 푸는 삽을 휘두르며 너 죽고 나 죽자 이러고 나올지도 모른다. 아버지 평소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뒷목 보다는 삽으로 때리는 쪽의 가능성이 크다.

연철이 대답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자 명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얼굴 색도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대추 빛에 가까워진다. 마음 탓인지 술기운 탓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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