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부 봄 11화

김명호

by 권재원

서인우가 손바닥을 세 번 두드리며 경쾌하게 박수를 치더니 명호를 가리켰다.

“자, 김명호. 다음은 네 차례다. 지금까지 발제하고 토론한 내용을 한번 정리해 봐라.”

“예.”

명호가 힘찬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열심히 정리해 온 내용을 읽었다.

“87학번 역사학회 제 2차 세미나를 정리 해 보겠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군정 하에서 과거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재산들은 적산불하라는 형식으로 유상 분배되었는데, 왜놈들에게 땅을 빼앗겼던 농민들은 돈이 없어 그 땅과 재산을 받지 못하고 엉뚱하게 돈을 가지고 있던 친일 지주들이 그것들을 헐값에 사게 되었습니다. 아따. 이것이 정말 열 받는 부분이네요? 어쨌든 그 재산을 바탕으로 친일파 지주들은 아주 재빠르게 친미 자본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때 자신들의 친일 과거를 덮어버리기 위하여 반공이데올로기, 그러니까 쪽발이 보다 공산당이 더 나쁘다라는 그런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그렇게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서 친미 반공정부가 수립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오 쌈빡한데? 넌, 생긴 거는 완전히 산적인데 은근히 스마트 한 면이 있다?”

“아따 형님도. 생긴 거 가지고 자꾸 그럼 제가 너무 섭하죠.”

“알았다. 너 잘생겼고, 잘 생긴만큼 역사 보는 눈도 있다.”

“그거야 제가 평소 역사책을 즐겨보는 덕분 아니겠습니까?”

“어머?”

정난영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만들었다. 명호가 신입생 환영회때 주사를 부려 마음의 짐이 되었던 바로 그 긴 머리 여학생이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 굳는다고, 명호가 삼배구고두라도 할 기세로 싹싹 빌었고, 그 사과가 받아들여져, 지금은 같은 학회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친하게 지내는 것의 부작용도 있다. 이렇게 무시하는 말을 막 한다는 것.

“너가 평소에 보던 게 역사책이었어? 하긴 대하역사소설이라고 되어 있긴 하더라.”

인우가 슬그머니 말을 얹었다.

“대하 역사소설? 그거 무협지의 다른 이름 아니야?”

명호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따, 정난영, 너는 왜 이렇게 사람 민망하게 만드냐? 네,네 맞습니다. 대하역사소설 많이 읽고, 내가 아는 역사 지식은 거진 다 그렇게 얻었습니다. 이제 시원 하냐?”

인우가 껄껄 웃었다.

“쪽팔릴 것 없어. 어차피 무협지라는 게 중국 민중들의 생각과 이상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만들어 진 것이니까, 오히려 민중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지. 자. 어쨌든 오늘 학회 세미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

“와아!”

다들 작고 짧게 박수를 친 뒤 주섬주섬 책과 공책을 접고 가방을 챙겼다.

명호는 곁눈질로 손미현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 보았다. 역사교육과에는 학회가 네 개나 있었지만 명호가 근현대사 학회에 들어온 이유가 바로 손미현이기 때문이다. 서인우 선배한테는 미안한 얘기가 되겠지만.

하지만 미현은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늘 조용했다. 자기 발제 할 때만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하고, 발제 끝나면 계속 듣기만 했다. 그러다 세미나만 끝나면 문풍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미풍처럼 슬그머니 사라져버려 뒤풀이나 술자리에서 이야기 나눌 기회도 주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미현은 슬슬 사라질 태세를 보였다. 혹시나 했던 명호가 실망하고 있는데 인우의 손뼉 소리가 들렸다.

“오늘 총학생회 발대식 하는 날인 거 알지?”

“예.”

“그럼 가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진철이 형 오면 다 모여서 같이 가자. 명호 너 갈 거지?”

“예.”

“난영이는?”

“내가 빠지면 발대식이 되나요?”

“그럼 미현이는?”

명호는 침을 삼키며 미현이 대답을 기다렸다. 제발 “예.”라고 말해라. 많이 말하는 것도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냥 “예.”라고만 해라.

그러나 미현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미안해요. 아르바이트 가는 날이라.”

“그래? 알았어.”

명호는 낙담이 천만인데 인우 형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다. 난영이 오히려 한 수 더 떴다.

“민생고 해결이 최우선이야. 미현아, 잘 가. 다음 세미나 발제 준비 잘 하고.”

그렇게 미현이 문풍지 사이 바람처럼 사라지기가 무섭게 과회장 이진철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에 붉은 깃발을 들고 있다. 깃발에는 ‘반제 반파쇼 투쟁의 선봉 역사교육과’라는 글자가 궁서체로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세미나 다 끝났냐?”

“방금요.”

“그럼 가자.”

이미 동기들, 선배들 다 모였나 보다. 진철의 뒤로 20여명의 역사교육과 학생들이 보였다.

명호는 깃발을 든 진철의 뒤를 따라 뭐하는데 쓰는 건물인지 모를 하얀색 IMC를 지나 비탈길을 걸어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향했다.

입학하고 첫 학기 중간고사도 안 치른 주제에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명호는 한 사람의 역사학도로서 저 아크로폴리스 광장이라는 명칭이 계속 맘에 걸렸다. 완전히 잘못된 이름이기 때문이다.

명호는 선배들이 걸핏하면 “아크로에서 보자.” 이런 식으로 말해서 거기가 어딘가 했다. 어찌 들으면 아프로 같기도 하고 그랬다.

나중에야 중앙도서관과 대학 본부 사이에 있는 넓은 계단식 광장을 아크로폴리스 광장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민주주의의 요람인 고대 아테네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싹을 바로 여기서 일으키겠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호가 알기에는 아크로폴리스는 광장이 아니다. 신전과 같은 도시의 주요 시설이 들어서 있는 높은 언덕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높다는 뜻의 아크로와 도시라는 뜻의 폴리스가 합쳐졌다고 배웠다.

아크로폴리스에는 신전도 있고, 극장도 있고, 요새도 있고, 그리고 중요한 관공서도 있다. 굳이 따지면 서울대학교 캠퍼스 자체가 아크로폴리스인 것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범대학, 가정대학, 그리고 공과 대학처럼 캠퍼스에서 높은 지역이 아크로폴리스인 것이다. 굳이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광장에서 이름을 따오고 싶었다면 아크로폴리스가 아니라 아고라라 불렀어야 했다.

하지만 명호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런 것 따져서 뭐 하겠나? 남들 다 그렇게 부르니 그냥 아크로폴리스, 아니 아크로라고 하자. 이게 언어의 역사성이던가 사회성이던가?

이름의 정당성이야 어찌 되었건 아크로 광장에 도착하자 이미 집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계단에 빽빽하게 들어 앉아 있고, 계단이 끝난 지점, 진정한 의미의 광장 부분에서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저 사람이 새로 당선된 총학생회장인 모양이다.

검은 두루마기 연사가 마이크를 약 45도 각도 위로 비틀어 잡고 외치고 있었다. 고개를 위로 꺽어 뭔가 동경하는듯한 자세를 취하고 몸통을 좌우로 조금씩 돌리면서 광장 전체에 시선을 주려 애쓰고 있었다. 검은 연사가 외치는 소리가 중앙도서관 벽을 때리고 대학본부 벽을 때리고 학생회관을 때리면서 광장 사방에서 메아리를 만들며 퍼져 나갔다.

“학우 여러분! 반격의 시간이 왔습니다. 이제는 그대로 갚아줄 때입니다. 박종철 학우의 원수, 무참히 학살된 광주 2000 시민들의 원수, 전두환 정권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기어코 기어코 민주 정부를 되찾읍시다. 자! 다 같이 관악산이 떠나가라 외쳐 봅시다. 광주학살 고문정권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4.13 호헌 철폐하고 민주 헌법 쟁취하자!”

수천 명이 일제히 같은 목소리로 주먹 쥔 손을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리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 소리가 광장 앞, 뒤를 가로막고 선 도서관과 대학 본부 건물을 마구 두드리며 메아리를 만들더니 마침내 벗어나 하늘로 솟구쳤다.

명호도 목이 터져라 구호를 따라 외쳤다. 와 느낌이 좋다. 주먹을 뻗어 올린 수천명의 다른 학생들과 자신이 연결된 것 같다. 그렇게 연결된 수천개의 힘이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가 된 뒤 다시 명호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그들의 힘이 자신의 힘이 된 것 같고, 함께 뻗어 올린 주먹과 함께 스스로 거인이 되어 역사의 강물을 굽어보는 것 같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다. 위대함, 웅장함, 그 무엇으로도 표현 못할 그런 벅참. 자신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그런 뿌듯함. 떨림.

명호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다.

몇 달 전만 해도 한낱 까까머리 고등 학생이었다. 그러네 이렇게 거인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늘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명호는 뭔가에 취한듯한 기분으로 눈을 반쯤 감고 계속 구호를 외쳤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던졌다.

그렇게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는데 뭔가 어색한 장면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명호의 팔뚝질도 거기 따라 멈칫거렸다.

과회장 이진철 선배다. 진철은 구호를 함께 외치지 않았다. 진철은 그냥 우두커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웬일이지 싶어 인우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둘러보니 다를 바 없었다. 인우는 그나마 주먹질은 같이 따라하고 있었지만 팔만 형식적으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할 뿐 구호를 따라 외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총학생회장이 하는 말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이렇게 집회 장소에 우리 과 애들 데리고 나와 준 것도 큰 양보인데 우리가 너희들 말을 들으며 따라 외치기까지 해야 하냐? 바랠 걸 바래라.” 이러며 조소하는 것 같았다.

잔뜩 고양되어 있던 명호의 기분이 쑥 가라앉았다. 하강의 높이만큼 부정적인 정서가 반작용으로 치밀어 올랐다. 그 반작용은 분노였다. 저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후배들 보는 앞에서 저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어이.”

명호가 옆에 있는 난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찔렀다. 한참 부지런히 구호를 외치며 몰아지경에 빠져있던 난영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째려 봤다.

“왜?”

“저기. 진철이 형이랑 인우 형 좀 봐라.”

“뭐?”

“구호를 안 따라 한다.”

“아하, 그거?”

난영의 반응이 뜻밖에도 무심하다. 마치 “뭐 그런 걸 다 물어보고 그래? 뻔 한 걸 가지고?”이러는 것 같다. 혹시 질문이 모호해서 그랬나 싶어 명호는 질문을 좀 상세하게 고쳐 다시 던졌다.

“넌 저거 보고 이상하지 않냐? 어째서 저 형들은 구호도 안 따라하고, 연설에도 하나도 관심이 없냐 이 말이다. 이미 뻔히 다 아는 내용이라 굳이 들을 필요 없으니 얼른 싸움이나 나가쟈,뭐 그런 거냐?”

그러자 난영이 명호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저 선배들은 정파가 달라.”

“뭐? 파? 거시기 조직 폭력배도 아니고 무슨 파냐? 아니면 무슨 나라 망치는 사색당쟁이라도 한다는 거냐?”

“그걸 나 한테 물어보면 어떻게해? 하여간 듣기에는 NL이라는 정파 CA 라는 정파, 그리고 무슨 CPC 라는 그룹도 있고. 그런데 지금 총학생회장은 NL이고 진철이 형이랑 인우 형은 CA고.”

“아니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명호는 엔엘 거시기고 뭐고 영어 약자가 자꾸 들락거리자 화딱지가 솟구쳤다.

“이게 도대체 뭔 놈의 짓거리냐? 몽땅 힘을 합쳐 싸워도 전두환을 잡을까 말까 하는 판에, 무슨 패를 나누고 서로 소 닭보듯 한다 이말 아니냐?”

“그렇게 간단한 문젠 아니지만,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뭐.”

난영이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명호에게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명호는 진철 보란 듯이 일부러 더 크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하늘을 뚫어버릴 듯히 주먹질을 했다.

그러는 동안 총학생회장의 발언이 끝났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광장 앞에 허수아비들을 세웠다. 허수아비는 각각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박준병’, ’양키’ 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었다.

“아, 광주 오적이야.”

난영이 또 아는 척을 했다. 명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뭔 소린지 알수 있었다. 1979년 12월 12일 권력을 탈취하고,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피로 물들인 권력자들이다. 그런데 양키는 저기 왜? 광주에 미군이 쳐들어 온 건 아닌데 왜?

명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학생들이 부지런히 허수아비들 위에 기름을 들이 부었고, 총학생회장이 라이터를 들고 저벅저벅 다가갔다.

“학살의 원흉, 광주 5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와아아아!”

총학생회장이 외치자 함성의 메아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기름 젖은 허수아비들이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 속에 휩싸였다. 화염 속에서 허수아비들이 시커먼 연기를 하늘을 향해 토해 냈다. 그 꾸물거리는 시커먼 연기는 마치 그 허수아비 주인들의 병들어 있는 영혼이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성질 급한 학생들이 그들의 영혼이 몸부림치는 것도 기다려 주지 못하겠다는 듯이 각목을 들고 튀어나와 미처 덜 탄 허수아비들을 사정없이 두드려 팼다. 허수아비들이 불이 붙은 체로 산산조각 나고 흉측한 잔해가 되어 광장 바닥에 시커멓게 널부러졌다.

이때를 맞춰 총학생회장이 마이크를 치켜들고 외쳤다.

“진군, 진군, 진군가!”

학생들이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자 일어나세 총칼을 들고 착취와 억압을 뚫고

오월의 핏빛 그 함성 쓰러진 넋을 세우며

이 산천에 진달래 피는 오월 그대 젊음 바치고

총소리 검은 하늘 새땅을 흔들 때

자 일어나세 민주의 투사 민족의 해방을 위해

삼천리 울리는 함성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투쟁 투쟁.

노래 소리와 함께 앞 줄에서부터 학생들이 벌떡 벌떡 일어나더니 어깨와 어깨를 걸고 스크럼을 만들었다. 명호도 벌떡 일어나 난영과 어깨를 걸쳤다. 여학생과 이렇게 가깝게 밀착한 것은 국민학교 졸업한 이래 처음이다. 살짝 호흡이 빨라졌다. 이 자리에 난영이 아니라 미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설핏 떠올랐다.

그 사이 노래가 바뀌었다.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냐 출전하여라 영원한 민주화 행진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앞에서부터 어깨를 걸친 학생들이 교문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다. 학교가 워낙 크고 학생도 워낙 많다 보니 광장에서 교문까지 행진하는 것도 한참 걸렸다. 행렬의 선두가 광장을 다 빠져나갈 때 쯤 되어서야 행렬의 후미가 첫 걸음을 디딜 수 있었고, 선두가 후생관 앞을 지나갈 때쯤 되어서야 후미가 광장 바닥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노래가 또 바뀌었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 집 하늘 위에 굴뚝 연기가

투사가 되어 조국의 내일 이 몸과 이 혼으로 싸워 나가리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딸). 자랑스런 민주의 투사

영광의 장정 뿌려진 피땀, 어머님의 눈물이련가

파도가 되어 피끓는 함성, 민주 아 내 사랑아 싸워 나가리

순간 명호의 얼굴에 뭔가 뜨뜻한 액체가 흘러 내렸다. 맙소사. 눈물이다. 눈물이 왈칵 올라오더니 뺨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다.

명호의 눈물 트리거는 조국도 민주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향 집 하늘, 굴뚝 연기, 그리고 어머니였다.

어머니. 객지 나와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무조건 울먹이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 어머니.

명호의 머리에서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마치 기체 분자처럼 마구 돌아다니며 두개골을 두드렸다. 그 때문인지 스크럼을 짜고 있던 팔의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이미 스크럼을 짜서 서로 서로 얽혀있는 한, 어쩔 도리 없다. 이대로 행진하는 수 밖에.

명호는 자신이 어머니의 자랑스런 아들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의 투사는? 이 둘이 연결이 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민주의 투사인 당신의 아들을 자랑으로 삼을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것 같다. 아니, 절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둘이 같이 가기 어려울 것 같다.

명호는 고향집을 생각했다. 고향집 하늘 아래에는 농사 짓는 아버지, 대학 못 가고 회사 다니며 집안 살림 도와주는 누나, 그리고 밑으로 주렁주렁 기다리고 있는 두 동생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고향집이다.

그들은 서울대학에 간 명호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명호가 민주의 투사가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어머니는 자랑스러워 하는 대신 절망하고 말 것이다. 조국이야 어찌 되었건, 민주주의야 어찌되었건, 명호가 감옥을 가던가 심하면 목숨을 잃던가 하면 그 명분이야 뭐가 되었건 어머니는 그저 절망하고 말 것이다.

역사를 뒤적여 봐도 명호는 자신이 민주의 투사가 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민주주의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집안의 젊은이들이 싸워서 이루고 지킨 것이었다. 투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재였던 것이다. ‘레 미제라블’의 마리우스와 그 친구들처럼 말이다. 명호가 과연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처지일까? 또 가족은?

연철네가 생각난다. 아들 둘을 다 서울대학에 보낸 연철 어머니. 하지만 큰 아들은 운동권 지하조직의 중심 인물이 되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살아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작은 아들 연철 역시 운동권이 되어가고 있다. 연철 어머니는 지금 마음이 어떨까? 두 아들이 민주의 투사가 되었으니 두 배로 자랑스러울까? 명호의 머리 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스크럼을 짜고 어깨와 어깨를 걸친 행렬에 끼여든 이상 그런 생각 해 봐야 소용 없다. 행렬은 계속 앞으로 움직이고, 그 가운데 어깨 걸고 있는 명호는 본인의 생각과 관계없이 계속 전진했다. 명호가 어깨를 걸고 있는 난영도 앙칼지게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며 전진했다.

그런 난영의 모습이 낯설었다.

“민주주의 하면 우리 집도 잘 살게 되나요?”

신입생 환영회때 이렇게 앙칼지게 선배에게 대들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그때 그 물음은 해소된 것일까? 아니면 그때 그 말은 취중에 한 말이라 다 잊은 것일까? 모르겠다.

명호의 생각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자니 양심에 찔리고 마냥 따라 가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과 “자랑스런 민주의 투사”가 마음 속에서 화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에 노래가 몇 차례 바뀌었다. 구호도 수 없이 바뀌었다. 마침내 저 육중한 샤 문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전투경찰들이 이미 교문을 철통같이 틀어막고 있었다. 행진의 앞부분은 이미 전경과 충돌을 시작했다. 팡팡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희부연 안개도 쿨렁쿨렁 춤을 추었다.

명호는 뉴스나 신문에서나 봤던 무장한 진짜 전경들과 맞딱뜨리자 술자리에서 허세나 부릴 때 하고는 영 다른 느낌을 받았다. 한 마디로 겁이 났다. 겁이 나는 만큼 고향집 하늘 아래로 굴뚝 연기가 회오리를 쳤다. 부모님 얼굴이 요지경처럼 머리 속을 뱅글뱅글 돌았다.

“절대로 정부하고 맞서 싸울 생각을 말어라. 내 동생놈 저꼴 된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진다.”

입학식날 어머니가 신신당부했던 말이다. 버스비 아깝다고 서울대 입구역에서 10리길을 그것도 고갯길을 구둣발로 걸어서 넘어왔던 어머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명호는 도저히 노래도 구호도 따라 외칠 수 없게 되었다. 목소리가 점점 움츠러들며 모기 소리에 수렴했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명호의 머리속은 온통 이 물음으로 가득찼다.

민주주의. 이걸 말로만 떠들수는 없다. 명호는 민주주의가 정답인 시험 문제를 그렇게 넙죽 넙죽 잘맞춰 가며 대학에 들어왔다. 그것이 옳다고 답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정답이라고 표시하고 점수를 땄다면 그것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얌체같이 사는 것이다. 명호는 그런 얌체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 공부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또 데모도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해 두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적당히 마음을 추스려 보지만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따끔거리는 느낌이 남았다.

파팡!

드디어 최루탄이 날아왔다. 여기 저기서 하얀 연기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대열을 덮쳤다.

대열 선두에서 전투조 학생들이 화염병을 빙빙 돌리다 전경들을 향해 집어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명호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염병의 불꽃이 마치 장미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선배들이 화염병을 꽃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래서일까?

마침내 명호가 뉴스에서나 봤던 장면들이 실제 상황이 되어 눈 앞에서 펼쳐졌다. 그런데 뉴스에서 봤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뉴스에는 늘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들은 주로 방패를 들고 화염병과 돌을 막거나 맞거나 했다.

하지만 명호가 마주한 현실은 이따금씩 날아가는 화염병과 시종일관 쏘아대는 최루탄이었다.

더구나 화염병은 그 살벌한 이름과 요란한 시각효과와 달리 전경들의 단단한 방패진에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반면 최루탄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터지기만 하면 반경 5미터 안팎의 연기를 만들고, 반경 안의 학생들은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더구나 바람도 하필이면 학생들 대열을 향해 불어왔다. 이괄의 난 때 바람의 방향이 승패를 결정지었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 난 것이다. 바람을 타고 최루탄 가루가 바람과 비슷한 속도로 대열을 덥쳤다. 그 기세를 몰아 전경들은 끊임없이 최루탄을 쏘아대며 2파, 3파 공격을 하며 들이닥쳤다.

명호는 코 끝이 간질간질하다는 느낌이 오는가 싶더니만 삽시간에 눈이 화끈거리며 거의 뜨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코로는 계속 재채기가 터져 나오고 눈으로는 계속 매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숨도 쉬기 어렵고 눈도 뜨기 어렵다.

“환장 하겄네.”

이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때 인우가 눈을 껌뻑 껌뻑 하며 다가왔다.

“맵냐?”

“환장하게 맵네요.형. 이거 어찌 해요?”

“뭘 어떻게 해? 참고 버티는 거지. 그러니 싸움이지 달리 싸움이냐? 눈 감거나 손으로 비비면 절대 안 되고 그냥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려버려. 그러다 보면 좀 적응이 되. 아주 조금.”

“매워 죽갔는데 어찌 눈을 뜨고 버텨요?”

“한쪽 눈씩 교대로 부릅떠 가며 버텨 봐. 좀 나아져.”

난영이 휴지를 건네주며 말한다. 이미 본인도 휴지로 눈물을 조금씩 닦으며 눈을 교대로 뜨고 있는지 한 쪽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명호는 이제 구호고 뭐고, 고향의 부모님 생각이고 뭐고 다 집어 치웠다. 당장 매운 눈을 어떻게 할 것가 하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했다. 오른쪽 왼쪽 눈을 번갈아 뜨며 한참을 최루탄에 적응하려고 발악 중인데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최루탄 안개 속에서도 당당하게 버티던 학생들이 일제히 후생관 쪽을 향해 전력 질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왜들 이러지? 명호가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인우가 팔뚝을 잡아 끌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뛰어. 전속력으로.”

-뚜타타타타타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관총 소리를 연상시키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명호가 깜짝 놀라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보기 위해 고개를 마구 휘둘렀다. 설마 기관총은 아니겠지? 여기가 80년 광주도 아니고.

하지만 기관총이든 아니든 그 소리만으로도 명호는 충분히 간담이 서늘해졌다. 뒤에서 휘이 하며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전속력으로 달리는 명호 머리 위로 시커먼 덩어리들이 휘익 휘익 날아가더니 앞길에 툭툭 떨어졌다.

시커먼 막대기 같아 보였다. 시커먼 막대기들이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연 연기를 뭉게뭉게 뿜어댔다. 하얀색과 회색 그리고 약간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하여간 굉장히 기분 나쁜 색깔의 연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강력한 최루 가스였다.

앞에는 최루가스, 뒤에는 전경. 이걸 어쩐다? 하지만 어쩐다 저쩐다 생각할 틈도 없이 사방 200미터는 될 것 같은 넓은 공간이 순식간에 최루가스로 가득 차 버렸다.

명호의 눈 앞에서 세상이 사라졌다. 누가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약간 청색 빛 감도는 페인트를 잔뜩 칠해 버린 것 같다. 사람이며, 건물이며, 나무며 할 것 없이 그 청회색 연기 안에서 모두 희미한 실루엣이 되어버렸다.

우욱.

명호는 몸통이 비틀리며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구역질을 느꼈다. 숨도 쉬기 어렵다. 몸도 못 가누기 어렵다. 최루탄이 아니라 마치 1차 세계대전때 사용했다는 신경 가스라도 쏜 게 아닐까 싶었다. 명호는 사전으로만 보았던 패닉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알아버렸다.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뭐하고 있어. 나와, 빨리.”

인우 목소리가 들렸다.

명호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지옥에서 부처님 만났다는 속담이 딱 떠올랐다. 하지만 인우 역시 필멸자에 불과할 뿐, 부처님은 아니었다. 인우가 명호를 잡고 최루 가스의 탄막 밖으로 탈출을 감행하지만 걸음이 휘청휘청하고 호흡이 가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몇걸음 휘청휘청 걷다 보니 위치가 바뀌어 명호가 인우를 부축하며 간신히 연기로 가득한 구역을 벗어나 후생관 근처 인도에 엎어질 수 있었다. 인도가 까끌까끌하다. 학생들이 두드려 깨서 투석전 하는 것을 방지 한다며 보도 블럭 대신 콘크리트를 발라버렸기 때문이다.

“아따! 완전히 지랄이네요!”

명호는 좀 살았다 싶으니 입에서 욕부터 쏟아져 나왔다.

인우가 숨을 헐떡이면서도 선배다운 의연함을 유지하려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별로 재미있는 표정은 아니다.

“하하하! 너 말 한번 잘 했다. 저게 바로 지랄탄이라는 거야.”

“지랄탄이라고요? 어느 놈이 붙였는지 별명 한 번 근사하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괜찮아?”

“견딜만 하네요. 아니 뭐 저따위 싸가지없는 놈들이 다 있대요?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저 놈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인데. 나쁜 놈은 저 놈들을 뒤에서 배후조종 하는 놈들이지. 하지만 그게 다 저 놈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냐? 어떻게 해서든지 진실이 외쳐지는 것을 막아 보려고 이렇게 되지도 않는 발악을 하는 거 아니겠냐?”

명호는 말하는 인우의 모습을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 모습은 대사를 외우는 배우 같아 보이기도 했고, 도덕시간 발표수업 하는 중학생 같기도 했다.

연기가 어느 정도 묽어지며 시야가 열렸다. 그러자 학교 안에까지 침투해온 사복 체포조, 일명 백골단과 학생들이 치열하게 투석전과 육박전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스카프로 두르고 학교 구석 구석에 숨어 돌을 던지고 도망치는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나폴레옹 군대, 혹은 프랑코에 맞서 싸우는 스페인 게릴라 같았다.

그러는 동안 관악산에서 골바람이 불어 내려왔다. 그 바람을 타고 지랄탄 연기가 희석 되면서 시야가 활짝 열린다. 그러자 두텁게 마스크를 쓴 학생이 튀어나오더니 노래를 불렀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물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한 명, 두 명, 열 명, 스무 명.

이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마치 눈덩이가 뭉쳐지는 것 같다. 명호도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덩이에 합류했다.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고 뭐고 간에 지랄탄에 한바탕 고생을 하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노래가 세 번쯤 반복되자 다시 수백 명의 행렬이 만들어졌고, 학생들이 한 쪽 눈 씩 번갈아 찡그리고 뜨기를 반복하며 눈물을 흘려 보낸며 행진을 시작했다. 명호도 그들을 따라 행진했다. 노래가 구호로 바뀌었다.

“민주헌법 쟁취하고 군부독재 타도하자.”

“고문정권 살인정권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구호소리에 놀란듯 최루탄 연기도 관악산 유원지 쪽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순간 명호 몸통 깊숙한 곳에서 뭔가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그냥 구호나 외치고 최루탄에 눈물 흩뿌리는 정도로는 이 울컥대는 것들을 다 쏟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가서 돌 던질래요.”

명호가 기어코 그 마음을 말로 뱉아 냈다. 하지만 인우가 고개를 흔든다.

“꼭 돌 던지는 것 만 싸움은 아니야.”

하지만 명호는 울컥대는 무엇을 도저히 몸 안에 담아 둘 수 없었다. 내야만 한다. 그냥 두면 이게 몸통을 터뜨리며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마침내 명호가 한 소리 내질렀다.

“사내 대장부가 되어 가지고서 동료들이 저렇게 눈앞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 뒤에서 찌그리고 있어요?”

그러자 인우 얼굴이 납득 반, 체념 반으로 바뀌었다.

“정, 그럴 생각이면 나랑 같이 가자. 우선.”

인우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커다란 손수건을 하나 꺼내 손에 쥐어 주었다.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겠다. 명호는 손수건을 대각선으로 접어 코와 입을 가린 뒤 목 뒤로 잡아 묶었다.

“이러니까 꼭 게릴라 같네요.”

“그럼 게릴라지. 우리 유격전 하는거야. 살아남으면 한마당에서 뒷풀이다.”

“예.”

명호는 손에 돌을 들고 환성을 지르며 교문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달려가는 명호 앞에서는 거무틔튀한 돌들이 밝게 빛나는 화염병들과 마치 바둑판의 검은 돌 흰 돌처럼 어둑어둑 해져 가는 관악산의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전경들도 질새라 최루탄을 쏘고 던지고 뿌렸다. 전경들이 던진 수류탄 모양의 최루탄들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명호는 이게 직관적으로 알아챘다. 선배들이 사과탄이라고 부르던 투척용 최루탄이다.

사과탄이 학생들 다리 사이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펑펑 터지며 사정없이 매운 연기를 흩뿌렸다. 사과탄은 터질때 마다 최루 가스뿐 아니라 파편들 까지 날리며 학생들 종아리며 허벅지를 때렸다.

명호도 하나 맞았다. 압정에 찔린 것처럼 장딴지가 아팠다. 화가 치밀어 오른 명호는 대열 안을 돌아다니며 굴러다니는 사과탄이 보일 때 마다 그 놈이 터지기 전에 있는 힘껏 걷어차서 대열 밖으로 날렸다.

이때 사이렌 소리가 또 들렸다. 지랄탄 2파 공격이다. 명호는 이미 지랄탄이 얼마나 지랄맞은지 맛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행히 이번엔 스타트가 빨라 간발의 차이로 최루탄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등 뒤로는 온통 역한 가스지만 눈 앞에는 맑은 공기가 펼쳐져 있었다.

골바람이 불며 다시 가스가 관악산 공원 쪽으로 빠졌다. 흩어졌던 학생들이 다시 모여 대열을 짓고 교문으로 달려갔다. 명호도 달렸다. 다시 돌을 던지고 싸웠다. 다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전력질주하여 지랄탄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까지 달렸다.

이 짓을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피곤이 밀물 아니 해일이 되어 밀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력 질주로 달린 거리만 쳐도 2 킬로미터가 넘을 것이다. 그냥 걷거나 이동한 거리까지 하면 5킬로미터가 넘을 것이며, 집어던진 돌만 해도 100개 가까이 될 것이다.

달린 거리로 치면 축구선수 한 경기 만큼의 거리며, 던진 돌의 갯수로 치면 선발투수가 한 경기 던진 만큼 분량이다. 그러니까 축구 한 게임과 동시에 야구 한 게임을 뛴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뜻이다.

그냥 뛰고 던질 때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계산을 하고 나니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명호는 흐느적 거리는 몸으로 전장을 빠져나와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턱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야 눈과 그 주변이 뜨겁고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싸우고 있느라 몰랐지만 최루탄을 어지간히도 많이 맞았던 모양이다. 손바닥으로 옷을 털 때마다 매운 가루가 펑펑 쏟아지며 눈이며 코를 자극했다.

이쯤 되면 최루탄을 피한다는게 아무 의미가 없다. 옷과 몸이 온통 최루탄 가루 덩어리, 명호 자체가 걸어다니는 최루탄이 되어버렸다. 이 꼴로 버스나 지하철에 타면 승객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재채기를 할 판이다. 그쯤 되면 거의 테러나 다름없다.

이러고 질질 짜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싸우는 게 덜 매울 것 같다고 생각한 명호는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시 싸움터를 향해 가는데 곳곳에 싸우다 지친 학생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널부러져 있는 학생들 중 난영의 모습도 보였다.

“어, 정난영. 너 지쳤냐?”

“넌? 아직 멀쩡해?”

“나야 촌놈 아니야? 촌놈이 지치는 것 봤냐? 난 또 싸우러 간다. 인우 형이 오늘 싸움 끝나면 생존자는 한마당에서 뒷풀이 하자더라.”

“알았어. 그런데 명호야. 저기 좀 봐봐.”

“어디?”

“저기 대운동장 스탠드하고 후생관 사이 잔디밭.”

“거기 뭘?”

“관중들.”

“뭐? 관중?”

명호는 관중이라니 이게 뭔 생뚱맞은 소린가 싶었지만 난영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정말 관중이 있었다. 스탠드와 인도에 서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관중.

“아니, 저게 뭐 하는 짓거리여?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던가, 아니면 그냥 집구석에 가던가 ”

최루탄에 지랄탄에 엄청 얻어맞은 다음이라 그런지 성질이 울컥 솟구쳤다.

“그치?”

난영도 얼굴에 짜증이 잔뜩 서려 있다.

그런데 또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제 학생도 얼마 안남았으니 최후의 일격으로 진압을 마무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지랄탄 공습이다.

“얼른 인나.”

명호가 널부러져 있던 난영의 손을 잡아 일으킨 뒤 달렸다. 하지만 이미 출발이 늦었다. 더구나 지친 난영까지 붙잡고 달렸으니 얼마 가지 못했고, 결국 지랄탄 연기 속에 갇히고 말았다.

명호는 한참 헛구역질을 쏟아내며 간신히 근처 인도 위로 기어 올라가 널부러지는 수밖에 없었다. 난영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고, 백골단이 와도 싸움도 도망도 못하고 그냥 잡혀가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전경들은 이제 집회가 완전히 해산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후생관 입구까지 밀고 들어왔던 병력을 오히려 뒤로 빼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기가 다 빠졌는지 아무도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라고 노래하지 않았다.

싸움이 끝났다. 이 싸움으로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싸움은 끝났다.

명호는 그저 드러누워 화학적 눈물을 펑펑 쏟아낼 뿐이다.

“명호야!”

이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생신가 잠시 생각하는데 목소리와 함께 휴지를 들고 있는 미현의 하얀 손이 마치 ‘천지창조’그림의 창조주의 손 같은 자세를 취하며 명호 눈 앞에 나타났다.

근처에 널부러져 있던 난영이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어? 미현아? 너 아르바이트 간다고 안 했어?”

“미안해.”

명호도 몸을 벌떡 일으켰다.

“거짓말했냐? 어째서?”

미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모하러 가자고 할까 무서웠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가지도 못하고 계속 싸우는 것 보고만 있었어. 같이 하려니까 겁나고, 또 그냥 가자니까 미안하고. 그냥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고 이러고만 있었어.”

“그랬냐?”

명호가 갑자기 부드럽게 되물었다. 말이 되묻는 것이지 사실상 수긍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명호의 마음에서 아까 싸우는 것을 보고 있던 잔디밭 관중에 대한 울컥거리는 미움이 미현으로 인해 한 순간에 사그라들었다.

미현과 같이 오도 가도 못하는 친구들이 모여 관중이 되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관중도 한 편 아닌가? 안 그러면 야구에서 홈경기 원정경기 구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명호 마음속에서 빙빙돌더니 마침내 말이 되어 튀어나왔다.

“그런 생각 마라. 진짜 싸가지없는 놈들은 구경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리미리 집에 가서 돈이나 펑펑 쓰며 놀거나, 자기 출세를 위해 고시공부 같은 거나 하고 그랬겠지.”

말하고 나니 명호는 아까 잔디밭의 학우들을 욕했던 것이 갑자기 미안하게 느껴졌다. 두려움과 올바름 사이에서 갈등하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친구들을 욕했던 것이다. 그 안에 미현까지 들어 있었는데 말이다.

문득 자신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명호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렀다. 자신은 다만 대열 안에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의 아들과 민주의 투사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대열 안에 있었을 뿐이다. 그 갈등을 잊으려고 아무런 확신도 없이 과격하게 돌을 집어던지며 싸웠을 뿐이다. 갈등하며 바라보는 관중보다 딱히 더 나을 것 없었던 것이다.

순간 명호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흘러 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그런데 눈물 맛이 다르다. 매운 눈물에 맑은 눈물이 뒤섞인 맛이다. 화학에 심리학 아니 윤리학이 섞인 맛이다. 이렇게 복잡한 화합물이 된 눈물이 땅바닥을 향해 도르르 굴러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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