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부 봄 9화

by 권재원

오수현

1

봄바람이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를 후루룩 휘감고 지나갔다. 봄바람이라고는 하지만 산골짜기에서 불어와서 그런지 제법 차고 맵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캠퍼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최루탄 잔해에서 흘러나오는 매운 가루 때문이기도 하다.

재학생들은 이미 그 냄새에 면역이라도 되었는지 눈물을 약간 찔끔거리거나 재채기나 두어 번 하면서 무심하게 갈 길들을 갔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면 외부인 아니면 신입생이다.

수현 역시 아직은 신입생이기에 갈 길을 바로 가지 못하고 걸음을 한번씩 멈추어 가며 화학적으로 강요되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야 했다. 얼굴이 온통 체액 범벅이라 찝찝하다. 티슈를 꺼내 닦았더니 찝찝함은 해결되었지만 대신 마찰 때문에 최루성분이 더 활성화되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침에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뱃속 깊은 곳에서는 헛구역질까지 거푸 밀려나왔다. 최루탄 잔해에서 흘러나온 가스의 위력이 이 정도인데 자욱한 최루가스 아래서 돌 던지고 구호 외치는 학생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견디는지 신기하다.

수현은 방법을 바꾸어 티슈로 비벼 닦는 대신 눈 근처를 톡톡 두드려 눈물만 훔쳐내어 보았다. 이게 먹힌다. 눈이 겨우 진정되었다. 간신히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후생관에서 11동까지 계속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데, 길바닥이며 계단이며 벽이며 온통 지라시가 마치 도배지처럼 붙어있다. 모양이며 색깔이며 크기는 가지가지지만 결국 이 두 종류로 수렴되었다.

-고문정권 살인정권 군사파쇼 타도하자!

-민주헌법 쟁취하고 군부독재 박살내자!

수현은 이 구호들을 보지 보지 않으려 애써가며 가파른 계단을 서둘러 올랐다. 사범대학이 있는 11동 까지 올라오니 숨쉬기가 한결 편하다.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최루탄 잔해에서 흘러나온 잔여물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저 아래에 있는 인문대나 법대 학생들은 그 매캐함 속에서 과연 공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적응이 되어 괜찮을까? 괜한 궁금증이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작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늦었다. 오늘늦잠 자는 바람에 8열람실에 들렀다 갈 시간이 없다. 오석 혼자 8 열람실에서 수현이 왜 안 오는지 초조하게 기다리다 강의실로 갔을 것이다.

오석을 생각하는 순간 수현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며칠 전 민경과 같은 과 남학생들에 대해 일종의 평가회 비슷한 것을 하며 수다 떨고 놀았던 기억이 났다. 수현이 먼저 시작한 수다다. 민경이 오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민경은 수현의 의도를 전혀 모른채,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떻고 하며 남학생 열 네명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그 중 오석에 대한 평가는 천진하고, 순수하고, 귀엽다 대충 이런 쪽이었다. 이게 오석 본인이 들어서 좋을 말인지 기분나쁜 말일지는 잘 모르겠다.

“수현이 네 생각은?”

이렇게 물어 보길래 수현도 다른 열 세명에 대해 대충 아무 말이나 했다. 그리고 오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범대 학생 특유의 비틀린 자존심 같은 것이 안 보여서 좋아.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비틀린 자존심? 그게 뭐야?”

“있잖아 그런거? 다른 학교 학생들 앞에서는 서울대학생으로서 자존심을 내세우고, 서울대학교 안에서는 사범대학이라는 열등감을 감추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그런 묘한 태도. 가령 학교 밖에서 누가 물어본다고 쳐. ‘어느 학교 다니세요?’ 그럼 자랑스럽게 대답하겠지. ‘서울대학이요.’ 그럼 반드시 이어지는 다음 질문이 따라오겠지. ‘어느 과 다니시는데요?’ 그럼 급격히 위축되서 말투마저 소극적으로 바뀌며 간신히 대답하는 거야. ‘사대 독어과요.’ 좀 그렇지 않아? 독어과? 왜 이렇게 대답할까? 난 당당하게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이렇게 대답하는 동기와 선배를 거의 보지 못했어. 그런데 오석이는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좀 그러네? 나도 네 말대로 사대 독어과요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다른 대학 학생들은 안그러더라고. 경희대 지리교육과 아무개입니다, 홍익대 역사교육과 아무개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 오직 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생들만 학과 소개할 때 말투가 묘하게 비틀리면서 ‘교육’이라는 두 글자를 빼고 대답하는 것 알아? 사대 역사과, 사대 사회과, 사대 국어과 등등.”

“그런데 학과 소개를 들은 사람들 반응도 비틀려 있지 않아?”

“맞아. ‘응? 사대면 선생질하겠네?’ 아니면 ‘선생 하긴 아깝다.’ 이거니까. 둘 다 칭찬은 아니지. 세상의 눈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생은 선생 될 생각이 없는 사범대학생이거나 기껏 선생이나 하겠다는 서울대학생인 셈인데, 이쪽도 저쪽도 참 꼬여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렇게 말 하면서도 수현은 세상이 꼬인 것인지 자신이 꼬여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꼬인 것은 수현 자신의 마음인지도 몰랐다.

안다. 수현은.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기왕 교사가 되려면 서울에서 발령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진학한 그런 순수한 학생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런 학생이 더 많고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학생이 소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현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들어올 때 마음은 분명 비틀려 있었다. 교사가 될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교사의 삶이 얼마나 궁상맞고 째째한 것인지 너무 생생하게 보고 들으며 자랐던 것이다.

심지어 교사인 아버지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축하한다는 말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발령 받을 생각하지 마라. 이것저것 다 모색해 보다 정 안되면 발령 받아라. 발령 받더라도 가능하면 몇 년 안에 다른 길 찾아서 최대한 빨리 학교 떠나라.”

거기에 대한 수현의 대답은 이랬다.

“걱정 마. 고민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리 과 해 마다 한 명 밖에 발령 안나.”

만약 국어 교육과나 영어 교육과처럼 발령이 많이 나는 과였다면 그 역시 고민 거리였을 것이다. 국립대학교 사범대학에 주어지는 특권, 졸업과 동시에 순번에 따라 그 지역 공립학교 발령 받아 근무할 수 있는 특권은 작은 것이 아니다. 입학과 동시에 최소한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라는 취직 자리 하나를 확보하는 셈인데, 이걸 대기업 취업이 쉽지 않은 여학생이 쉽게 포기하긴 어렵다.

다행히도 독어교육과는 죽어라 공부해서 3등 이내에 들지 않으면 발령 받기 어렵다. 어떤 해는 달랑 한 명 발령 나기도 했다. 물론 수현은 죽어라 공부 해서까지 굳이 교사 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오석에 대해 생각하다 그만 생각이 엉뚱하게 흘렀다. 그리고 다시 생각의 경로를 오석에게 되돌리기 전에 이미 강의실에 도착하고 말았다. 단 하나 남은 사실은 강의 시간에 늦었다는 것 뿐.

하지만 아직 교수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기대도 안했다.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10분에서 15분 늦게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서 그걸 der Akademische Viertel이라고 멋지게 정당화할 것이다. 월급 도둑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교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강의실 앞에는 과대표 이동성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앞에 나와 있었다.

수현의 눈에 동성은 꽤 매력적인 아이다. 키도 크고 몸매도 단단하고, 부리부리한 쌍꺼풀 진 눈은 마치 이탈리아나 스페인 남자 같은 분위기가 난다. 수염만 좀 기르면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테세우스, 아킬레우스 등등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흠이 있다면 턱이 조금 나온 건데, 그거야 뭐 나중에 돈 벌어서 치열 교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되도록 거리를 두어야 하는 위험한 아이다. 그 동안 들어본 바로, 동성이 하는 말은 다정하고 합리적이지만 어쨌든 결론은 데모하러 가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현에게는 열혈투사 행세하며 소리 소리 지르며 데모 나가자고 윽박지르는 곽재훈보다 이런 신사적인 애들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수현아 안녕.”

민경이 인사한다.

“안녕.”

수현도 인사하며 민경의 손에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쥐어 주었다.

“어머, 왜?”

“저번에 네가 커피 뽑아 주었잖아?”

민경의 동그란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그런 걸 다 기억해? 어쨌든 고마워.”

수현도 얼굴을 하회탈처럼 만들어 웃어 보였다.

민경은 볼 때 마다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친구다. 민경은 구김없이 착하고 발랄한 좋은 친구, 아니 과에서 거의 유일한 친구다.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수현의 과 동기 20명 중에 여학생은 여섯명 뿐이고, 그 중 서울 아이는 민경과 수현 뿐이기 때문이다. 넓게 수도권으로 잡으면 안성에서 온 진하영 하나 추가될 뿐이지만 도도한 미인 스타일의 진하영은 도무지 곁을 주지 않는 타입이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결국 둘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민경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느껴졌다. 민경은 딱 강남 아이 그 자체였다. 늘 좋은 옷을 입고 다니고, 좋은 신을 신고, 좋은 가방을 가지고 다녔고,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인 워크맨도 두 개를 번갈아 가지고 다녔다. 둘이 수다 떨고 놀 때도 너무 자연스럽게 차값이며 밥값을 계산했다. 돈 쓰는 것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말할 때가 많았다. 수현도 체면치레는 해야 했고 번번히 얻어먹을 수는 없으니 민경과 어울리다 보면 어쩔수 없이 분에 넘치는 지출을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착하고 솔직하고 다정한 친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100원 신세 진 것을 장난삼아 갚는 이런 리튜얼이라도 한번씩 해야 민경과 친구하며 꼬인 마음이 풀린다.

마음을 푼 수현이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강의실을 둘러보니 늦게 온 탓에 오석의 전후좌우 네 자리에 이미 다른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할 수 없이 오석과 좀 떨어진 자리에 가방을 내려 놓았다.

수현은 오석 옆에 다른 아이들이 앉아있는 것이 까닭없이 어색하고 거슬렸다. 만약 그게 민경이나 하영이였으면 더 기분나빴을 것이다.

수현이 오석과 8 열람실에서 매일 아침에 만나 같이 공부하다 수업 듣고, 수업 끝나면 또 들러서 공부하다 같이 집에 간지 2주 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사귀는 사이까지는 아니다. 다만 나름 소신을 가지고 데모하는 학생들과 거리 두고 버티는 오석이라는 존재가 너무 반갑고 의지가 되었을 뿐이다.

이런 경우 오석이 남학생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학생이었어도 같이 공부하고 시간 보내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민경이 그랬다면 제일 좋았을 것인데, 민경은 오히려 꽤 적극적으로 집회며 시위에 나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과 동기들은 수현과 오석을 커플로 여기고 있는 눈치다. 정말 커플일까? 모르겠다. 무엇이 커플과 그냥 친구의 경계일까? 수현은 대답할 수 없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연애는커녕 남학생하고 이야기라도 하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생각하며 중고등학교 6년을 보냈다. 새벽에 학교 가서 밤늦게 야자 끝내고 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남학생은커녕 여학생 끼리도 어울릴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 들어오니 갑자기 남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래야 했는데, 너무 어색하고 긴장되었다. 더구나 이 국립 서울대학은 온통 남학생 투성이다. 그나마 사범대학이 여학생이 많은 단과대학이라고는 하지만 영어교육과, 불어교육과, 생물교육과, 지구과학교육과에 여학생이 집중되어 있어 다른 과는 모두 남학생이 60%가 넘었다.

그런데 오석은 남학생이지만 수현에게 그런 어색함과 긴장감을 주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기분 좋고, 각자 집으로 헤어지면 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 뭐하나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런게 사귀는 것일까? 수현은 도무지 모르겠다. 뭘 해 봤어야 알지?

수현은 연애라는 것을 책이나 영화로만 경험했다. 책이나 영화에서 경험한 연애는 뭔가 불타오르는 감정, 두근거림,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설레임과 꽉 찬 행복감 뭐 이런 것들로 정의되었고 뭔가 짜릿하고 전율이 느껴지는 순간과 함께 찾아오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오석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오석은 너무 귀엽고 소년 같았다.

하지만 오석이 소년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던 순간이 있기는 했다.

수현의 마음이 2주전 교문 앞 대운동장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갔다.

남학생들이 얼룩덜룩한 교련복을 입고 운동장에 집합해 있다. 대학생이 된 기쁨도 잠시, 문무대에 강제 입소하여 1주일 간 군사훈련을 받으러 가야 하는 것이다.

수현은 그 전날 온 집안을 연기투성이로 만들어 가며 쿠키를 만들었다. 평소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해 늘 엄마와 언니의 퉁을 먹던 주제에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안 하던 짓을 했으니 결과물도 신통치 않았다. 울퉁불퉁한 쿠키들은 모양도 제각각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아마 맛도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그 울퉁불퉁한 쿠키를 한 보따리나 싸서 버스에 올라타는 오석의 가방에 밀어넣어 주었다.

“잘 다녀와. 이거 훈련 힘들때 애들하고 나눠 먹어.”

“고마워. 맛있게 먹을게.”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같은 과 남학생들을 위문하기 위해 여학생들이 준비하기로 한 여러 위문품들 중 과자를 할당 받았는데, 기왕 하는 것 수제 쿠키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고, 그걸 남학생 중 제일 편하게 느껴지는 오석에게 대표로 주었을 뿐이다.

동기 남학생들을 군사 훈련소로 보내고 난 뒤 여학생들은 위문 편지도 할당했다. 여고 시절 국군장병 위문편지 쓰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래도 불특정 누군가에게 쓰는 게 아니라 과 친구들에게 쓰는 것이라 특별히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마침 숫자도 딱 맞았다. 87학번은 남학생 열 네명, 여학생 여섯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이미 군 면제 판정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이미 병역을 마치고 입학한 장수생이라 문무대에는 열 두 명만 입소했다. 그러니 여학생 한 사람 당 남학생 두 사람씩 위문 편지를 쓰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사범대학은 여학생 위문편지라도 받지만 공대생들은 어쩔까 싶기도 했다. 혹시 하나 있는 여학생이 수십통 쓰고 그럴까?

수현은 당연히 오석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석이 한테 보낼게.”이렇게 자원하기는 영 모양이 빠지기 때문에 결국 다른 친구들과 같이 공평하게 제비를 뽑았다. 그 결과 오석은 엉뚱한 아이한테 할당되었다.

하지만 수현은 할당된 편지 두 통 외에 오석에게 따로 편지를 한 통 더 써서 보냈다. 보내는 사람 이름에는 이름 대신 ‘vom 8 열람실’이라고만 썼다. 훈련소에서 교관인지 조교인지가 편지를 배달하면서 “권오석, 위문편지. 보낸 사람 8열람실.” 이러는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서 괜히 웃어보기도 했다.

1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물론 훈련받는 남학생들에게는 한 달같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상대적인 1주일이 지나 남학생들이 문무대에서 퇴소하는 날이 왔다.

수현은 동기 여학생들과 운동장에 미리 나가 버스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마침내 버스들이 들어오고 교련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내리고, 그 속에 오석의 모습이 보였다. 일 주일간 못 봤던 탓일까? 너무 반가워 그만 달려가고 말았다.

그런데 오석의 손에 낯 익은 뭉치가 들려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입소할 때 싸 준 쿠키 보따리. 모양을 보아하니 가져갈 때 상태 그대로 고스란히 들고 왔다.

수현은 달리던 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몸 깊은 곳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저 보따리를 들고 오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어졌다.

사람 정성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물론 스스로 생각해도 쿠키라 부르기 민망한 모양에, 맛도 예측 불가였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 주었기를 바랬다. 아니 맛 없어도 꾹 참고 먹어주기 바랬다. 그런데 뜯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오다니?

수현은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화를 내는 대신 살짝 돌려 말했다. 여중, 여고를 다니다 생긴 말버릇이기도 했다.

“어머, 하나도 안 먹었네? 미안해. 솜씨가 엉망이라. 내가 봐도 좀 그랬어.”

그러자 오석이 뒷 머리를 손바닥으로 슬슬 문지르며 대답했다.

“우리 과 애들하고 같은 내무반 쓸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고.”

“웬 동문서답이람?”

“이걸 일단 꺼내면 내부반에 있는 열 일곱 명하고 나눠 먹어야 하거든.”

“그러라고 준 건데?”

“그게 너무 싫었어. 다 모르는 애들이거든. 네가 정말 공들여 만들었을텐데, 입소하면서 처음 만났고, 퇴소 하면 다시 안 볼 의미 없는 녀석들하고 한입거리로 나누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안 풀고 그대로 가지고 왔어. 나 혼자 두고두고 먹던가, 아니면 우리 과 애들하고 먹으려고. 일주일 동안 혹시 부스러질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그럭저럭 잘 버틴 것 같아.”

바로 이 때였다. 수현에게 오석이 달리 보였던 순간이. 오석이 소년이 아니라 남자로 보였던 순간이. 아, 오석이 자신을 배려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그때 수현의 맥박을 측정했다면 틀림없이 평소보다 1.5배쯤 빠르게 뛰었을 것이다. 수현이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꿈꿔왔던 첫사랑의 섬광 같은 전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가 있기는 있었다.

오석도 그랬을 것이다. 얼굴 색이 붉게 물들다 못해 귀까지 빨개 졌으니까.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혹시?”

오석이 아주 힘들게 입을 열었다.

“혹시 뭐?”

“우리 둘이서 먹으면 안 될까?”

수현은 가벼워 보이기 싫어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으로 대답을 하지 않아도 이미 다리가 결론을 내렸다. 둘은 과 친구들이 버스에서 다 내리고 모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운동장을 떠나 버들골 잔디밭으로 갔다.

3월이 거의 다 지나가면서 서서히 푸른 물이 올라오고 개나리도 꽃눈이 올라오고 있어 기분이 따스했다. 그들은 그 비탈진 잔디밭 양지 바른 곳에 앉아 보따리를 열었다.

아 그 못생긴 쿠키들. 수현이 기억하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못생겼고, 크기도 들쭉날쭉했다. 오석이 다른 아이들 안 나누어 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맛이 너무 없었다. 어떤건 너무 달았고, 어떤건 너무 썼다. 뜨거울 때의 맛과 식었을 때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분명 가사 시간에는 그렇게 배우고 시험도 쳤는데 막상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반죽 재료 배합부터 잘못했다. 그래서 깜짝 놀랄 정도로 쉽게 바스라졌다. 도저히 형체를 유지한 상태에서 들고 먹을 수 없었으니 쿠키라 말할 수 없는 정체 불명의 무엇이었다. 오석은 이렇게나 잘 부서지는 쿠키를 험한 군사 훈련소까지 가서 일주일 동안 고스란히 보존해서 가져왔던 것이다.

맛 없는 쿠기를 꾸역꾸역 밀어넣다 보니 속이 느글거렸다. 설탕을 반 푸대는 들이 삼킨 것 같았다. 그래도 수현은 흑역사의 증거가 완전히 인멸되어 속이 시원했다. 오석만 입 다물면 상황종료인 것이다.

수현이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탁탁 털며 제안했다.

“좀 걸을까? 완전 돼지 될 것 같아. 미안해. 내가 완전 칼로리 폭탄을 먹였네?”

“그래. 좀 걸어.”

오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일어났다. 수현도 따라 일어 서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오랫 동안 다리를 옆으로 포갠 자세로 앉아있다 보니 일어서자마자 왼발이 확 저려 온 것이다. 수현은 마치 고압선을 왼발에 들이 댄 것 같은 찌릿한 느낌을 받으며 휘청거렸다.

다시 주저 앉으려는 순간 오석이 수현을 덥석 잡아 일으켰다.

“괜찮아?”

“응. 너무 오래 앉았더니 다리가 저리네.”

“좀 쉬었다 갈까?”

“아니, 지금 가. 걷다 보면 나아지겠지.”

수현은 왼손으로 오석의 오른팔을 붙잡고 자세를 잡았다. 얼굴이 곱고 샌님같아 보여 유약하다는 느낌을 주던 아이였는데 막상 오른팔을 잡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그렇게 오석의 팔을 붙들고 버들골을 걸었다. 노천 강당을 지나 교수 회관과 솔밭 식당이 보이는 곳 까지 올라갔다 다시 11동 뒤 샘터 있는 곳 까지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경영대학 뒷길로 해서 후생관 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희들 뭐해?”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성이었다. 동성 혼자 있는게 아니라 과 아이들 절반 이상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둘이 팔짱 낀 모습으로 딱 걸렸으니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수현보다 오석이 훨씬 난처한 모습이었다.

“권오석이 니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곽재훈이 또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동성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수현은 그 험상궂은 재훈이 동성의 손짓 한 번에 잠잠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좋은 시간 보내.”

동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 던지고 윙크와 함께 아이들을 몰고 길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수현은 오석의 팔을 잡고 버들골 근처를 좀 더 돌다가 학교를 벗어나 고속터미널에 갔다. 다리는 이미 멀쩡해졌지만 이미 잡은 팔을 놓고싶지 않았다.

한번 들어간 문으로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고속터미널 지하 상가를 빙글빙글 돌다 겨우 찾아낸 커다란 레코드 가게에서 오석은 ‘피가로의 결혼’ 전집을 샀고, 수현은 이문세 4집을 샀다.

“저녁 먹을래?”

오석이 물었을 때 수현은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에게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쿠키를 속이 느글거릴 만큼 먹었지만 정말로 배가 고팠다는 것이다.

“종로 가자. 너 집에 가기 편하게.”

그래서 그들은 3호선을 타고 종로로 가서 저녁을 먹고 생맥주를 마시고, 입가심으로 커피와 디저트도 먹었다. 칼로리 폭탄 제거한다며 버들골을 걸어 놓고는 거의 칼로리 핵공격을 한 셈이다.

수현이 놀랜 것은 칼로리 뿐 아니라 오석의 주머니였다. 오석은 그 날 하루 저녁에 레코드 판을 사고, 책을 사고, 저녁을 사고, 맥주를 사고, 커피를 사고, 계속해서 돈을 썼다. 하지만 교사의 딸인 수현의 빈약한 용돈으로 더치 페이는 엄두도 나지 않아 그저 사 주는 대로 얻어먹기만 했다. 살짝 자존심도 상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이건 수현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 탓이다.

그래서 수현은 다시 결심했다. 절대 교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두워진 종로 거리에는 팔짱을 끼거나 서로 손을 잡은 그들 또래 남녀가 넘쳐났다. 하지만, 식사를 하느라 일단 놓아버린 오석의 팔을 다시 잡기 쉽지 않았다. 버들골에서 처럼 핑계를 찾지 못한 수현의 손은 오석의 팔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기만 했다.

종로 3가 역에서 정 반대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오석은 충무로 방향으로 수현은 안국 방향으로.

바로 그 순간 수현은 민경이 부럽다 못해 살짝 미워졌다. 만약 민경이었다면 여기서 헤어지지 않고 선릉역까지 전철을 같이 탔을텐데,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그 마음을 읽었을까? 아니면 오석도 헤어지는 게 싫었을까? 오석이 충무로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왔지만 그냥 보내 버리고 안국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수현이 열차에 타고 자리를 잡는 것까지 확인 하고, 열차가 출발 할 때 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다 충무로 방향 플랫폼을 향해 등을 돌렸다.

그날 수현은 오석이 친절하고 다정한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친절하고 다정해도 결국 마지막에는 등을 돌렸다. 오석은 결국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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