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디누 1부 39화 디누의 베일 4
지네트가 마지막 와인 한 방울을 삼키며 미소를 던졌다. 그러다 능숙하게 손을 이리 저리 묘한 모양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웨이터가 알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
“이런 식의 제스쳐 생소하시죠? 화이트 와인으로 하나 골라달라고 했고, 마침 좋은 게 있다고 하네요.”
“그것 참 신기하네요?”
그러자 지네트가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와인 더 하실 거죠?”
“네. 물론입니다.”
와인 한 잔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주제에 만용을 부렸다. 지네트가 조금 느슨해진 틈을 놓치지 않으려면 나도 어느 정도는 풀어져야 했다.
“자, 이제 죄송하지만 만난 목적을 달성해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 아녜스한테 들을 건 다 들었으니, 이제 지네트 차례 온 거 아시죠?”
“순서가 그렇게 되나요? 뭐가 궁금하시죠?”
“1985년 로마, 그리고 1989년 드레스덴.”
“아, 제가 로마 이야기는 로마에서 하자고 했죠? 자, 그럼 로마 이야기할까요?”
“사실 로마 보다는 드레스덴이 더 궁금합니다.”
“아, 동구권 투어. 그 이야기는 충분히 해 드리지 않았나요?”
“사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동구권 투어가 아니라 그 다음의 2년간입니다.”
“그 다음이라면?”
나는 지네트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노려보는 것을 보고 핵심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내 특기인 끈질긴 추궁을 시작했다.
“1989년 12월 23일, 정우는 당시 동독이던 드레스덴 공연 도중에 쓰러졌습니다. 이틀간 현지 병원 가료를 받고 크리스마스 직후에 한국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그때부터 2년간 완벽한 잠수를 탔어요. 저조차 만나지 못했으니.”
“무슨 말씀이세요? 박사님 얼마나 찾았는데요? 그런데 그 때 수배 당해서 도망다니고 있었잖아요? 잠수 탄 건 아무래도 그 쪽 같은데요?”
그 말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정우가 그런 일 당한 것을 나는 숨어 살던 농장에서 신문 보고 알았으니까. 나는 얼른 플랜 비를 가동했다.
“그건 지네트 말씀이 옳아요. 그럼, 이건요? 2년 뒤,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피아노로 연주해 달라는 의뢰마저 거절했죠. 이런 걸 거절하다니, 말이나 돼요? 더 심한 건 스승인 몬테카리니 선생님 장례식에도 불참하고 추모공연까지 거절했다는 거죠. 정우가 아무리 괴팍한 놈이라고 해도 그렇게 막 되어 먹은 녀석 아니거든요. 나중에 지히발 선생님 모시는 모습만 봐도, 자기가 인정하는 거장 앞에선 정말 예절바른 녀석이거든요. 그러니 뭔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지네트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침묵을 무시하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지네트는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정우와 예정에 없던 2중주를 하셨죠? 그런데 다음날부터 본인의 공연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정우의 동독 투어에 동행했어요. 무대에 같이 올라가지도 않았고 계속 객석에 머무르면서요. 왜 그렇게 따라다니신 거죠? 분명 뭔가 느낌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게다가 정우가 쓰러진 뒤, 한국까지 따라 들어왔습니다. 기록을 보니 입국해서 3개월간 체류하다 출국했다 다시 돌아오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네요. 이건 비자 갱신 때문일 것이고. 그러니까 한국에서10개월을 체류한 셈입니다. 어떤 공연도 레슨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우 일생에서 암흑물질처럼 감춰진 그 2년을 지네트보다 잘 아는 분은 없을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전히 침묵. 지네트는 거의 15분을 아무 말없이 빈 와인 잔만 빙글빙글 돌렸다. 웨이터가 토스카나 화이트 와인을 가져와 따라주자 그 잔을 단숨에 비우고 다시 한 잔을 따른 뒤 빙글빙글 돌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공기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던 지네트가 무거운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디누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어요.”
순간 나는 마치 찌가 흔들릴 때 반응하는 낚시꾼처럼 바로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2년간 정우가 비정상적인 상태였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네트는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네. 하지만 한국에 머무른 까닭이 꼭 디누를 보살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어요. 내가 보살펴야 할 분이 또 있었으니까요.”
“또 있었다고요? 그게 누구죠?”
“디누의 친구이고, 박사님 친구이기도 하죠. 저에게도 아주 중요한 분이었고요. 그동안 디누가 계속 보살펴 주었지만, 디누마저 엉망이 된 상황에서 내가 그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어요.”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친구 성진. 바로 그 성주영 교수의 사촌 동생. 비범한 두뇌, 남다른 의협심,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철학도. 학생운동의 중요한 이론가였던 성진.
진은 1987년 12월 19일, 당시 집권당이 자행한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구로구청 농성 도중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당해 큰 부상을 입어 거의 뇌사 상태까지 갔다. 기적적으로 깨어나기는 했지만 끝내 불가역적인 하반신 불수라는 장애를 얻고 말았다.
정우는 진을 정말 극진하게 보살폈는데, 휠체어에 태워 데리고 다니기 위해 승합차까지 구입할 정도였다. 덩달아 나까지 차출되어 교대로 승합차를 운전했다.
그토록 큰 부상을 입혀 놓고 공안당국은 도리어 진을 감시했다.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집회·시위 현장에 나타나는 일은 드물었지만, 진이 각종 반정부 투쟁이나 노동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명인사인 정우가 늘 함께 다니는 바람에 검거 기회를 잡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공안당국은 정우가 바로 그 동독 투어를 간 사이에 ‘민중민주 노동자 학생 동맹’이란 조직 사건을 조작하고 전격적으로 체포했다. 진은 체포 48시간만에 구속되었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나는 용케 체포를 면해 두 달 동안 숨어 다니다가 부끄럽지만 아버지 빽을 써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진은 지금 인문사회 교양서적을 쓰고, 강연을 하며 대학 밖에서 활약하는 재야 철학자가 되었다. 스테디셀러도 여럿 내는 등 철학 교수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돈도 잘 버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문학의 스티븐 호킹 소리 들어가며.
내가 생각해도 1989년 12월의 진의 상황은 암담했다. 장애를 안고 있으면서 구속까지 되었으니 그 고통은 일반인의 몇 곱절이나 되었을 것이다. 그런 진을 챙겨 주어야 할 정우는 거의 폐인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 돌아왔고, 나는 수배자 신세가 되어 숨어 지내야 했고. 지네트가 정우를 보살피면서 진의 옥바라지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어색했다.
나는 즉시 지네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 진이 처지가 참 딱하긴 했지만, 지네트의 행동도 상식적으로 좀 이해가 안가요. 정우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친구까지 헌신적으로 보살피신 건가요? 정우도 부모님과 누나가 있고, 진이도 부모님과 형제가 있는데 굳이 지네트까지 공연일정 다 취소시켜가면서까지 그럴 이유가 있었나요?”
“디누를 보살핀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고, 진씨. 지금은 성박사라고 불러야 하나요? 그분을 보살핀 건 약속 때문이었어요.”
죄책감? 약속? 아니 이게 웬 생뚱맞은 단어들일까? 지네트가 정우에게 죄책감 느낄 일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성진과 약속이라고? 무슨 약속?
“아, 모르셨군요. 진은 저의 약혼자였어요.”
“네에?”
나는 와인 잔을 넘어뜨릴 뻔했다. 기습적으로 폭탄 하나를 맞은느낌이었다. 이게 뭐야? 눈꼽만큼도 예상치 못했던 폭탄 반전이 일어났다.
“아니, 그게 어떻게?”
“진은 87년 6월 항쟁 직후에 만났어요. 처음에는 미워했죠. 르몽드지에 디누 기사가 아주 크게 나왔는데, 한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음악 천재 디누 어쩌구 이런 기사였어요. 그리고 시위대의 앞장을 선 디누, 시위대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디누 이런 사진들이 실려 있었죠. 또 디누가 광주민주항쟁을 기리는 음악을 작곡해서 널리 퍼뜨리고, 노동자들을 위한 연주회도 개최했다는 등의 소식도 들리고 건반위의 체게바라니 어쩌니 이런 말도 들렸죠. 큰일났다 싶었어요.”
“아니, 그게 어째서 큰일 난 거죠?”
나는 깜짝 놀랐다. 설마, 지네트가 수구보수?
“오해 마세요. 정치적으로 한 말 아니예요. 다만 디누가 너무 혹사당한다는 느낌. 그런 거였죠. 그래서 진을 만났죠. 막 따지려고요. 디누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며 막 쏘아 대었죠. 하지만 그분은 차분하게 저를 설득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의 학식, 덕망, 올곧은 마음, 예의 바름, 배려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열정과 꿈에 감동받았죠.”
“진이는 그런 놈이죠. 지네트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고.”
“아,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덕분에 우린 점점 가까워졌고, 프랑스 돌아간 다음에도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죠. 진은 저에게 시를 써서 보내 주거나, 철학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적어서 보내 주었고, 저는 당시 한국에서 검열 때문에 번역되지 못하던 각종 좌파 서적들을 프랑스나 독일에서 사서 보내주었죠. 뭔가 문제가 있거나 고민이 있으면 항상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마다 상황에 딱 들어맞는 조언을 해주었어요. 이런 건 디누한테 절대 기대할 수 없던 것들이죠.”
“맞아요. 진이는 정말 훌륭한 녀석이죠. 모두 사랑하면서도 존경했죠.”
“저도 마음 속 깊이 존경했어요. 그해 가을, 아시아 투어 차 한국에 다시 방문했을 때 말하더군요. 한국이 민주화가 되었으니, 혁명가 노릇 그만두고 유럽으로 와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며 자기 길 찾겠다며, 그때 그 길을 함께 가지 않겠냐고요. 그거 혹시 프로포즈냐고 되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죠. 그래서 저는 주저하지 않고 ‘oui’ 라고 대답했죠. 그렇게 피앙세가 되었답니다.”
“와 뜻밖이네요. 아, 물론 진이는 정말 훌륭한 녀석이지만, 지네트에게서 정우를 그렇게 쉽게 밀어낼 줄 몰랐네요.”
“조금도 밀어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둘의 자리가 달랐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모두 디누에게 경탄하고 거의 숭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디누에게 의지할 수 있나요? 삶의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상의할 수 있나요? 삶을 맡겨도 좋을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있나요? 만약 누이가 디누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박수 치며 축하해 줄 수 있나요?”
나는 그 순간 대학교 1학년 때 정우와 몹시 다투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정우는 민주화운동에 한창 앞장섰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당시 만연해 있던 폭력시위, 폭력투쟁, 그리고 반지성주의적 경향이 결에 맞지 않아 미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우는 그런 나에게 비겁한 놈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때 나의 주저함, 회의, 갈등을 이해해주고 고민을 들어주었던 친구는 정우가 아니라 진이었다.
“그건, 아니죠.”
나는 힘들게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우는 위태롭고 불안정했다. 곁에서 자신을 챙겨줄 친구나 헌신적인 반려자가 있어야 하는 인물이지 그 자신이 다른 친구들이나 반려자를 챙겨줄 든든한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은 그 반대였다. 정우는 천재지만 진은 현명했다. 내가 여자라도 일생의 반려자를 선택해야 한다면 천재가 아니라 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네트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당시 전 몹시 힘들고 우울했어요. 하긴 평생 우울하고 외로웠지만. 여튼 기댈 나무, 쉴 그늘이 필요했어요. 네. 인정할게요. 한때 디누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디누는 나의 번민을 덜어주기는커녕 더 큰 번민을 만들어 같이 빠져버릴 사람이죠. 하지만 진은 넓은 그늘을 가진 나무죠.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인생을 같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과연?”
“아, 그래서 그 구로구청 사건 직후 한국 국적을 버리셨군요. 한국에서 공연도 안하고.”
“네. 구로구청에서 한국 경찰이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하여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프랑스에 뇌사라고 잘못 알려졌어요.”
“처음엔 그렇게 불러도 할 말없는 상태였어요. 깨어난 게 기적이죠.”
“아, 그랬군요. 저한테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죠. 그분이 돌아가시다니. 그 고결한 영혼을 죽이다니. 검은 옷을 입고, 평소 잘 가지 않던 성당에 가서 명복을 빌었어요. 노여움을 견딜 수 없었어요. 그 분을 그렇게 만든 한국이 미웠어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나중에 기적적으로 그 분이 깨어났고, 비록 하체를 쓸 수 없지만, 머리는 멀쩡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덕분에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죠.”
“그런데 아직까지도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으셨네요.”
“그 분이 파혼을 원했어요. 남성으로서 기능을 상실했으니 파혼을 희망한다고. 저는 성관계 따위에 연연하지 않으며 결혼하여 부부가 되지 않더라도 여전히 존경하고 의지하는 마음은 그대로니 긴 시간 비행 견딜 만큼 회복되면 파리로 건너오시라고 했죠.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의 머리가 여전히 두려웠는지 끝내 감옥에 가둬 버리고 말았죠. 정말 최악이었죠. 한쪽에서는 제정신 못 차리는 디누를 보살펴야 했고, 또 한쪽에서는 반신불수의 몸으로 옥에 갇혀 고생하는 그 분을 보살펴야 했죠.”
나는 지네트가 정우를 부를 때는 친근하게 ‘디누’라고 하면서 그의 친구인 진을 일컬을 때는 깍듯이 ‘그 분’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진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정우는 대체 어떤 상태였습니까, 그때?”
“아팠어요. 많이.”
“그건 당연하고, 문제는 어떻게 아팠냐는 거죠. 얼마나 아팠길래, 어디가 아팠길래 거의 2년이나 잠적했냐는 거죠.”
“그걸 알려면 다시 한참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1984년 맞죠? 내가 한국에 들어가서 디누를 처음 만난 해가.”
“1984년 겨울이었습니다.”
“네. 맞아요.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죠. 그때 내가 디누와 만난 걸 알고 아녜스가 막 뭐라고 했어요. 저도 곱지 않은 말로 응수했고요.
‘너 스스로 디누를 떠났잖아? 내가 디누와 팀을 짜던 말던 이젠 아녜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이렇게 말이죠. 그러자 아녜스가 금방 누그러지더니 이렇게말하더군요
‘기왕 디누와 함께하기로 했으면, 부디 잘 보살펴 줘.’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죠. 난 단지 함께 연주할 피아니스트로서 디누를 찾은 건데, 보살피다뇨?
‘보살피다니? 난 같이 연주할 거야. 보살피는 게 아니라. 내가 무슨 보모야?’
그러자 아녜스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더군요.
‘디누 손 잘 챙겨. 무리하게 연주하다 다치기 쉬운 타입이니까. 나중에 디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하필 그 날 디누가 불량배들하고 싸우다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소름이 끼쳤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손가락부터 살펴봤어요. 디누한테는 ‘멀쩡하네’ 라고 말했지만, 사실 좋지 않았어요.”
“아녜스 말로는 의사가 한 일 년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던데.”
“그땐 그랬죠. 아녜스가 미국 돌아갈 무렵에는 거의 다 나았고요. 그런데 아녜스 가고, 나는 아직 만나기 전, 그 열 달이 문제였어요. 그 공연 망치고 디누는 취리히에서 얻은 명성을 깡그리 날렸죠.
그 기분, 일반인들은 몰라요. 시즌은 다가오고 예년 같으면 투어 일정으로 달력이 차곡차곡 채워져야 하는데, 전화 한 통 오지 않을 때 기분. 텅빈 플래너를 보는 기분.
디누는 무대 없이 살수 없어요.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는데, 공연이 들어오지 않으니 콩쿠르에 다시 나가는 수밖에. 마침 85년은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가 열리는 해였죠.
쮜리히 콩쿠르가 피아노의 올림픽이라면 쇼팽 콩쿠르는 월드컵이죠. 아, 그 반댄가요? 아무튼. 디누는 그걸 노리고 아직 무리해서는 안되는 손으로 맹연습을 했어요. 디누 연습 스케줄 보고 까무라칠 뻔했어요. 그런 식으로 연습하면 다친 적 없는 손가락도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대로 쇼팽 콩쿠르까지 달리면 피아노와 아디외 하겠구나 싶었죠.
쇼팽 콩쿠르 참가를 말려야 했고, 그러려면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했어요. 그래서 제 에이전트 아고스티니한테 저의 투어 일정 중 유럽에서의 10회 정도의 공연을 디누와 함께 하는 연주회로 기획해 달라고 부탁했죠. 다행히 디누는 쇼팽 콩쿠르 참가 대신 내가 주선한 공연 10회를 선택했어요. 공연 프로그램도 내가 나가서 바이올린 독주를 한 20 분, 둘이서 2중주를 30분, 디누가 피아노 독주를 30분 하도록 짰어요.”
나는 지네트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우의 상태를 저렇게 세밀하게 파악하고 꼼꼼하게 안배해준 세심함이라니. 친구, 연인, 동료, 엄마, 누이 그 어떤 말로도 지네트가 정우에게 가졌던 위상을 제대로 포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용없었어요.”
지네트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그렇게까지 챙겨 주었는데도요?”
“디누는 모처럼 다시 오른 무대에서 좀처럼 내려오려 하지 않았어요. 매 공연 때 마다 디누는 한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피아노를 쳤어요.”
“어째서?”
“프로그램을 무시했어요. 프로그램에 없는 곡도 마구 연주했고, 무엇보다 일단 앵콜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내지 않았어요. 앵콜 한 번 했다 하면 한 30분간 스트레이트로 연주했는데, 그쯤되면 3부 공연이지 앵콜이 아니죠. 어쨌든 그 열정을 막을 방법이 없었어요. 쇼팽 콩쿠르 못 나가게 하려고 투어를 기획한 거였는데, 결국 쇼팽 콩쿠르를 10번 치룬 꼴이 되고 말았죠. 디누를 보호하면서 재기를 성공시키려 했던 기획이었는데 오히려, 오히려.”
마침내 지네트의 눈에서 눈물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다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옆 테이블의 멋쟁이 신사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손수건을 내밀었다.
“논 피안제레 지네타. 인디펜덴테멘데 달 모티보, 논 에 콜파 투아(울지 마요 지네트. 뭔지 모르겠지만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지네트는 반사적으로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메르시 무슈. 부제트레장티.”
좋다. 여기까지다. 아무리 일이 중요해도 내 우상인 지네트를 더 이상 괴롭힐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 들을 말은 이미 다 들었다. 나머지는 추론으로 채울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질문을 접고, 대신 추론 회로를 가동했다.
정우는 지네트와 함께 유럽을 돌았던 1985년 여름에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확고하게 세우는데 성공했지만 손가락 부상 재발이라는 치명적인 비용을 치렀을 것이다. 모처럼 기회를 잡았는데 다시 멈출 수 없기에 그 사실을 숨기고 이후 몇 년 간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고 다니다 1989년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른 것이다. 뭔가 스토리가 딱 들어 맞았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일단 지네트를 위로했다.
“지네트가 아니었으면 정우는 무대를 되찾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 4년간의 놀라운 활약도 없었겠죠. 그 4년간 정우가 우리한테 얼마나 귀중한 것들을 남겼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네트가 프로그램을 무리하게 짠 것도 아니고, 녀석이 스스로 흥에 겨워 수십 분씩 앵콜을 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립니까?”
“내가 슬퍼하는 까닭은 다른 거랍니다.”
지네트가 신사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디누는 쉬어야 했어요. 정열을 식혀야 했죠. 그러려면 그 정열의 근원을 찾아야 했어요. 그리고 불행히도 그 근원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랑. 어떤 사랑을 말씀하시는 거죠? 정우 그 녀석은 워낙 사랑이라는 말을 이상한 뜻으로 사용해서.”
“나.”
“그 말씀은? 역시.”
“짐작하시는 대로요.”
“그랬군요.”
“네.” 지네트가 늘어뜨려진 앞머리의 무게가 부담스럽기라도 한 양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 우린 뭐랄까. 이렇게 말씀드리죠. 로마 이야기 말이죠. 그 여름은 콘서트 투어라기보다는 차라리 허니문이었어요. 우리는 투어 기간 내내 같은 방에서 묵었고, 더 말씀드릴 필요 없죠? 알아서 판단하세요.”
내 예상을 완전히 넘어선 이야기가 나왔다. 지네트가 정우와의 관계를 축소해서 말한다던 유선의 진단은 정확했다. 두 사람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깊은 사이였다.
나는 당시 정우가 최나경과 사귀고 있었던 것을, 그리고 유럽 투어 갔다 와서도 여전히 사귀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그러니까 이놈은 아녜스와 관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최나경과 사귀고, 그 상태에서 지네트와. 정우가 제멋대로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아예 막되어먹은 것 아닌가? 최나경의 죽음이 정우와 지네트의 관계 때문이라는 김교수의 주장이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정우가 최나경의 동생을 아내로 맞이한 것 역시 너무 뻔뻔한 짓거리처럼 느껴졌다. 이 불쾌한 마음을 지네트의 슬픈 목소리가 흩어버렸다.
“동독 투어. 제가 왜 계속 따라다녔는지 궁금하시죠?”
아, 드디어 금단의 상자가 열리는가?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지네트의 쓸쓸한 눈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 때 디누의 손은 정상적으로는 연주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무엇이 그 아픔을 꾹 참고 그토록 많은 연주를 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요?”
“정신력 이런 거 말하는 거 아니죠?”
“물론, 아니죠.”
“그, 그럼. 설마, 약물?”
지네트는 내 말에 어떠한 부정의 뜻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던졌다.
“유선이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그건 무슨 뜻이죠?”
“유선이가 어떤 집안의 딸이죠?”
“음대 교수, 병원 원장. 아, 병원 원장?”
나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 심봉사 같은 심정이 되었다. 지네트와 최유선이 공범이 되어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있었다. 고결한 예술가 디누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지네트와 작별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었다. 무엇보다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 때문에 화를 삭일 수 없었다.
그 동안 정우, 성진, 유선, 지네트, 이 네 사람이 완벽하게 나를 따돌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네트와 유선은 그렇다 쳐도 성진과 정우에 대해서는 쉽사리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정우는 이 세상에 없으니 엄청난 국제통화료를 써먹어 가며 진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흥분해서 다짜고짜 네가 어떻게 나를 운운하며 몰아붙였을 것이다. 결국 기억에 남는 말은 진이 끊기 전에 한 말 몇 마디뿐이었다.
“있는 그대로, 들은 그대로 써.”
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정우의 찬미자였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야. 그리고 난 정우를 영원히 건반 위의 체 게바라로 기억할 거야. 정우가 살아 생전에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때론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용서해 주고도 남을 만큼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 주었잖아? 녀석의 인간적인 과오가 남긴 업적을 상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나 네가 정할 일이 아니야.”
그 말이 망치처럼 나를 두드렸다. 결과적으로 나 역시 유선, 지네트와 공범이었다. 나 역시 정우의 그 무결점의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베토벤, 슈베르트가 매독으로 죽었다 해서 그들의 가치가 떨어지는가? 차이코프스키가 동문들의 압력에 못 이겨 자살했다 해서 그의 작품이 달리 평가되어야 하나? 정우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음반과 작품이지 정우 자신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우에게 덧씌워진 후광을 벗겨도 좋다. 아니 벗겨야 한다. 디누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 권정우의 실수투성이 삶을 가감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예술이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인 실수와 과오에 가슴 아파하며 고통으로 일궈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나는 당당하게 이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 나의 고용주(?) 최유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은 늘 내가 추궁당하는 입장이지만, 마침내 추궁할 차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