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987년 2부 여름 17화 오수현2

by 권재원

여행의 시작은 7월 20일, 저녁 여섯 시 서울역.

늘 그랬듯이 수현은 약속시간을 정확하게 맞춰 서울역 앞에 나타났다. 늘 그랬듯이 오석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꽤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현은 기분이 확 상했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도 별로지만 이렇게 약속 시간보다 한참 먼저 나타나서 기다리는 것도 별로다. 자기가 얼마나 약속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과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서 간 사람이 오히려 미안함을 느껴야 하니 그 역시 별로다.

오석은 늘 그랬다. 처음에는 그게 배려심이 아주 많은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자꾸 반복되니 속이 뒤틀렸다. 상대를 미안하게 만들어 뭔가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수현은 오석이 그런 유치하고 치졸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그런 느낌이 든다면 그건 수현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왜 그러는데? 시간 맞춰 나온 사람더러 미안해 하라고?”

수현은 그걸 인정하기 싫어 먼저 쏘아붙였다.

“교통 상황이랑 이런 저런 변수를 선반영 하다 보니 좀 빨리 왔어. 좀 먼저 도착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늦게 도착하는 건 문제 되잖아?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이게 오석의 대답이었다.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쨌든 정시에 만난 그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서울역 그릴에서 저녁을 먹고 밀크 쉐이크를 디저트 삼아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석의 얼굴이 어두웠다. 어쩌면 수현의 마음이 오석이 얼굴을 거울삼아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수현은 자기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오석에게 말을 던졌다.

“무슨 생각해?”

“아니, 별 생각 안해.”

“걱정하는 얼굴인데?”

“아니야.”

오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개를 젓는 목의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오석은 거짓말이 서투른 아이다. 수현은 오석이 뭔가 걱정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이 여행을 가도 될지 말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 특별히 통찰력을 발휘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석은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이럴 때는 좀 흔들어 주어야 한다. 오석이 당황하면 경계심이 흩어지면서 속에 있던 말을 자기도 모르게 쏟아내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가지 말까?”

수현은 거두절미하고 대뜸 이렇게 말을 던졌다.

“아니, 가. 계획한 거잖아?”

오석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고 싶지는 않은데 계획했으니까 할 수 없이 간다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오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현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니, 대체 뭘 어쩌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오석이 속에 있던 생각을 드러냈다. 딱 한 마디.

“셀마.”

“셀마?”

“태풍 셀마 말이야.”

“아, 그거? 그런데?”

“우리가 놀러 가도 될까 싶어서. 남부지방, 아직도 태풍 때문에 여기저기 엉망일텐데, 아무 피해 안 입은 서울 애들이 와서 웃고, 놀고 그러면 좀 그래서.”

“그거 걱정한 거였어?”

“걱정이라기 보다는 좀, 그렇잖아?”

아 이런 선량함이라니. 하지만 수현은 이 선량한 마음에 감동받는 대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 봉사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이 나라를 살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그 모범답안을 19년이나 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아빠다. 수현의 아버지야 말로 평생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의 전형이었다. 물론 수현이 보기에 그랬단 뚯이다.

누가 알겠는가? 남 몰래 촌지라도 받고, 알고보니 몽둥이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그런 교사였는지. 하지만 수현이 아는 한 아빠는 소위 말하는 참교사였다.

수현은 아빠의 눈물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아는 후배가 해직되었다고 했다. 심지어 체포까지 되었다고 했다.

뉴스에서는 교사로 위장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체제 전복을 꾀하다 검거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그 기사를 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수현은 그 기사 제목을 잊을 수 없었다.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를 노린다.’

기사 제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 무시무시한 제목 아래 몇몇 교사들이 체제 전복을 노리는 지하 조직을 만들고 ‘민중교육’이라는 불온 잡지를 유포하며 세력을 확장하다 적발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언뜻언뜻 읽혔다.

무시무시한 제목과 달리 그 아래 실린 사진들 속의 교사들은 너무 선량하게 생긴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선생님들이었다. 아무리 삐딱하게 봐도 체제 전복을 꾀하는 무서운 지하세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올바른 일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그런 착한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착함의 댓가는? 수현은 다시 사진 속 얼굴들을 보았다. 기껏해야 아빠보다 한참 어린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은 그들의 선량함의 댓가로 혹독한 가난과 사회적 낙인이라는 선물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동은 선일까 악일까? 그들은 자신의 선량함을 어째서 눈 앞의 가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민중들에게 베풀었을까?

아빠가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수현은 그 눈물이 슬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아빠도 부끄러움에 못 이겨 선량함의 길을 선택할까 두려웠다.

교사 아빠를 둔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네와 수현네 형편이 너무 달랐다. 친구네 아빠는 몰래 과외도 뛴다고 했다. 주택조합인가 뭔가 해서 강남에서 아파트도 건졌다 했다. 어디서 나온 돈인지 몰라도 자가용차도 굴렸다. 촌지 받았겠지.

하지만 아빠는? 터미널이나 역에서 다섯 식구가 주렁주렁 짐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 부끄러워 수현은 여름방학때 가족 휴가 가는 것조차 싫었다. 그래서 보충수업 핑계로 여름 휴가가 취소되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만약 자가용 차에 짐을 싣고 가는 휴가였다면 보충수업 땡땡이 치고 갔을 것이다.

수현은 오석이 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착함이 가족에게 다정하고 책임감 있는 그런 소박한 착함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진하고 소심한 웃음 속에는 그런 소박한 선함이 있었다.

그런데 오석이 세상에 대한, 다른 사람에 대한 선량함을 보였다. 더구나 부끄러워하기까지 했다. 이미 충분히 착함에도 불구하고 더 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다. 남들보다 더 착함에도 불구하고 남들만큼 착하지 못하다고 부끄러워했다.

수현은 또 다시 그런 선량하고 대자적 사랑에 가득한 남자에게 인생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남자는 아빠 하나로 차고 넘쳤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현은 마음 속의 말을 바꾸어 밖으로 내보냈다.

“이럴수록 우리가 가서 찾아주고 뭐 하나라도 더 팔아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마음 쓰고, 측은하게 여기고, 걱정하고, 이런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

오석은 이 말을 듣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식사를 마치고, 수현의 수다도 다 들어주고, 즐겁게 기차에 올랐다.

목포까지 가는 밤 열차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좌석은 좁고, 딱딱하고, 심지어 젖혀지지도 않았다. 역이라고 생긴 곳은 다 정차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다른 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가는 비둘기호 여행은 너무도 지루했다.

“비둘기호는 가다 서는 차가 아니라 섰다 가는 차다.”

수현의 여행계획을 들은 아빠 -물론 아빠는 남학생이 아니라 민경과 같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가 이렇게 말했는데, 이제야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달픈 여행이라도 수면에 대한 본능은 위대했다. 대전역을 마지막으로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밝아오는 햇빛에 잠을 깨 보니 어느새 기차는 영산포를 지나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 보다는 괜찮아 보여.”

먼저 일어나 있던 오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내 얼굴이?”

“아니, 여기, 동네 풍경이.”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오면서 내내 걱정했거든. 만약 기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이거나 그러면 어쩌지 하고. 그런데 막상 와 보니까 괜찮아서 마음이 놓여.”

이때 수현에게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오석이는 착하다. 너무 착하다. 아빠처럼 아니 민중교육 사건으로 신문에 나온 그 선생님들처럼 착하다.

데모하는데 끼지 않길래 현실적일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남자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자적 사랑에 가득한 남자였다. 아빠의 삶을 그토록 싫어했으면서도 결국 아빠 같은 남자를 찾은 것이다. 이 무슨 지독한 아이러니란 말인가?

하지만 수현을 더욱 아득하게 만든 일은 목포가 아니라 다음날 부산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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