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987년 2부 여름 16화 오수현1

by 권재원

1


오석아. 이런 편지 보내서 미안해. ’


수현은 딱 이 한 줄 쓰고 더 이상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 문장을 뭐라고 써야 할지 눈을 감고 머리를 굴렸지만 문장 대신 기억이 떠올랐다.

7월 24일 새벽 다섯 시, 청량리역. 경주 발 청량리 도착 야간 열차의 객실.

수현은 뒷덜미와 어깨 사이에 호두 알갱이라도 끼여 있는 것처럼 목이 묵직하고 뻣뻣했다.

옆 좌석에서는 오석이 잠들어 있었다. 마치 아기처럼 평화로운 얼굴. 새근새근이라는 부사가 딱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도대체 이런 자세로 어떻게 저리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지 신기했다.

수현은 잠을 잤다고 하기 보다 새벽을 기다리며 밤을 견뎠다.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으로 봐 중간 중간 얼핏 잠이 들긴 들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수면의 회복효과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경주에서 저녁 먹고 경주역 대합실 도착한 시간이 저녁 여덟시였다. 청량리로 가는 기차는 밤 열시 반.

마땅히 시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근처 다방에 들어갔지만 자욱한 담배 연기에 도로 쫓겨나왔다. 결국 역 대합실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다 기차에 올라탔다.

그래도 한 때 우등열차라 불렸던 무궁화호라 그런대로 좌석이 푹신하기는 했다. 푹신한 자리에 앉자 오석은 바로 눈을 감고 골아 떨어졌다. 잠자기 보다는 지쳐 쓰러졌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경주에서 청량리까지 밤을 지새우며 온 것이다.

불평할 처지는 못된다. 애초에 이 여행을 먼저 제안한 쪽은수현이었으니까.

“우리 며칠 여행이나 갈까? 부산, 경주 이런데?”

6.29 선언 이후 시위도 잦아들고 본격적으로 방학이 시작될 무렵 수현이 먼저 이렇게 한 마디 던졌다. 무슨 생각으로 저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석이 심란해한다고 할까, 우울해 한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라 기분전환을 하고 시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며칠? 여행?”

오석의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고서야 수현은 자신이 얼마나 놀라운 제안을 했는지 알아챘다.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당일치기 나들이도 아니고 여러 날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이건 청평 유원지 방갈로에서 밤새 이야기하다 잠든 것 하고는 아주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오석이 놀라는 게 당연했다. 수현도 두 번 생각한 뒤 깜짝 놀랐으니까.

“아니, 생각해 보니 그건 좀 그러네? 미안해. 아무 생각 없이 말했어. 그냥 하루 나갔다 올까? 강화도? 법주사?”

수현이 얼른 상황을 수습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좋아.”

뜻밖에도 오석이 시원하게 대답해 버린 것이다.

“좋다니? 뭐가? 강화도? 법주사?”

“아니 부산, 경주.”

“정말? 여러 날 걸릴텐데?”

오히려 수현이 당황했다. 차마 밤에 잠자리는 어떡하고 이런 말은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될 상황에 대한 각오마저 다졌다.

그런데 오석이 마치 무슨 걱정하는지 아는데 문제없어 이런 표정으로 편안하게 대답했다.

“여관 안 가고도 멀리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어떻게?”

“야간 열차 이용하는 거야. 밤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하는. 그럼 숙박이 해결되잖아?”

“아. 그렇구나.”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그길로 서점에서 열차 시각표 책을 사 이리 저리 일정을 짜 맞추어 보았다. 그 결과 국토를 한 바퀴 도는 어마어마한 여행 일정이 만들어졌다.

계획은 이랬다.

7월 20일 일요일 밤, 서울역에서 목포 행 비둘기호 열차를 탄다.

7월 21일 아침 여섯 시에 목포 역에 도착한다. 목포는 크지 않은 도시니까 그 날 하루면 충분히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7월 21일 밤. 경전선 열차를 타고 부전역까지 간다.

7월 22일 아침에 부전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부산이다. 사실 부산이 목적지가 아니다. 부산은 그냥 와 봤다는데 의의를 두고 태종대나 잠깐 보고 나서 바로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로 갈 것이다. 그러면 점심 전에 경주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라 해가 기니까 꽤 여러 군데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경주국립박물관, 안압지, 첨성대, 천마총 이렇게 둘러보면 저녁 무렵이 될 것이고, 그럼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밤 10시 30분에 경주역에서 청량리 가는 열차를 탄다.

7월 23일 새벽에 청량리에 도착한다.

이렇게 7월 20일부터 23일까지 무려 3박4일에 걸쳐 목포, 부산, 경주를 둘러보는 어마어마한 여행 계획이 세워졌다. 누가 보면 거의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것 같은 코스지만 실제로는 단 하루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아주 건전한 코스였다. 기차 좌석에서 같이 잠드는 것을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치면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어쩌다 이런 계획을 짜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모처럼 여행이니 아주 뽕을 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시험 거부를 거부하고 시험 친 뒤 공지천에 다녀오고 나서 서먹서먹해진 오석과 좀 더 가까워질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수현은 그게 죄책감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오석의 죄책감.

오석은 6월 10일부터 6월 29일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동자 속에 “나는 거기 없었어.”라며 고개를 떨구는 또 다른 오석의 모습이 뻔하게 드러나 보였다.

신문에 나온 디누 기사를 보고 오석은 부쩍 풀이 죽었다. 수현도 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명동성당 농성장에 나타나 명동을 온통 함성으로 물들인 디누의 즉석 연주회. 마침내 1987년 6월의 상징적인 사진이 되어 외신에도 나오고 타임지 표지에까지 나온 그 모습.

그때부터 오석이 말수를 부쩍 줄였다. 안 그래도 말이 별로 없는 오석이 말수를 줄였는데 그렇다고 수현도 수다니 애교니 이런 쪽과는 영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둘이 만나면 그냥 서먹서먹 멀뚱멀뚱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니 무슨 말이 필요해?”

연애 경험이 많은 고등학교 동창에게 요즘 남자친구랑 만나도 별 말없이 멀뚱멀뚱 있다 헤어지곤 한다고 하자 이런 대답을 들었다.

“말이 아니면?”

“연애는 말이 아니고 터치지. 모범생한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키스 한 번 안하고 무슨 남자 친구니? 일단 해 봐. 오히려 말하는 시간이 아까울 걸?”

수현은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내면에 살고 있는 보수주의가 야수처럼 들고 일어나 그 말을 들었던 기억을 씹어먹어 버렸다.

그래도 혹시 오석이 조금 적극적으로 터치를 한다면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다. 아니, 요즘 같은 어색한 분위기에서는 차라리 오석이 욕정이라도 드러냈으면 했다. 적극적인 터치 그 이상을 바라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다. 숙소는 잡지 않아도 여러 날을 같이 보내는 이런 일정을 짠 것도 어쩌면 그걸 기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석이 의기소침해지고 말수가 줄어든 책임이 수현 자신에게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수현은 6월에 있었던 그 혼란의 도가니에 자신을 담그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짐이 없다. 용케 제2의 5. 18 참사가 되지 않고 오히려 6. 29 선언이 나오고 집권당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건 역사의 필연도 민중의 승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우연이고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만약 그래 놓고 기껏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기라도 한다면 -수현은 결국 그럴 거라 생각했다- 소위 광주의 살인마들에게 국민의 선택이라는 면죄부나 보태 주는 그런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이건 일종의 마당극 같은 거다. 수현은 자신이 이런 놀이판에 휩쓸려 아까운 청춘의 시간을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여길 뿐이었다. 중산층 끝자리에서 전락하지 않고 그 자리나마 지키려면 현실에 발을 디디고 버텨야 한다.

수현은 놀이판을 무시하지 않았다. 놀이판 나름의 역할이 있다. 다만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다 탈을 쓰고 마당으로 나오라고 한다면, 그리고 나오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오석에게 미안했다. 굳이 디누와 그렇게 각을 세우며 다툴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다른 핑계 대고 그 정치색 짙은 음악회를 안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굳이 싸웠다. 왜 그랬을까? 먼저 만나자고 해 놓고, 소개시켜달라고 해 놓고 왜 굳이 그런 짓을 했을까? 왜 오석에게 평생 알고 지낸 친구와 그렇게 갈라지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수현을 괴롭혔다.

“어? 다 왔네?”

오석의 목소리가 들리며 수현의 고통스러운 반추를 끊었다.

열차가 멈추자 잠에서 깬 모양이다. 신기하다. 버스건 기차건 달리고 있을 때 잠들고 멈추면 깬다. 달리면 잠들고 멈추면 깬다. 뭔가 묘한 알레고리다.

“응. 방금 도착했어.”

“비둘기호 보단 좀 났네. 자, 그럼.”

오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선반위에 올려놓은 수현의 가방을 내려 주었다.

“고마워.”

“여기서 불광동까지 어떻게 가?”

“몰라. 종로까지 가는 버스 있으면 타고 가서 바꿔 타면 되겠지 뭐.”

“같이 가 줄까?”

오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수현이 예상한 대로의 오석이 다운 행동이다. 언제나 친절하고, 언제나 배려하고, 언제나 정이 깊다.

하지만 수현은 오석의 저 친절함이 더는 달갑지 않았다. 오석에게 끌렸던 것은 다른 친구들 하고는 까다롭게 지내지만 수현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거센 파도 아래 두 섬이 서로 의지하며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석은 민경에게도 친절했고, 하영에게도 친절했다. 하영이 오석네 집안 가정교사처럼 드나드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 덕분에 학비도 마련하고 낡은 가방이며 옷이며 새것으로 바꾼 것을 알았을 때부터 수현은 오석의 저 친절함과 다정함이 자기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저 친절함은 수현이 모를 다른 수많은 여자들도 받았을 친절함이었다.

수현은 자신이 왜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유치하다고 고개를 흔들어도 도무지 떨어져 나가지 않는 생각이다.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날도 훤한데 뭐.”

수현은 오석의 친절을 거절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지하철 첫 차가 다니기 시작할 것이고, 그럼 청량리 역에서 종로 3가까지 가서 수현은 3호선 구파발 방면, 오석은 3호선 양재 방면으로 타고 흩어지면 그만이다. 3호선 종로 3가역은 플랫폼이 가운데 있는 방식이라 같이 있다가 차 먼저 오는 사람이 손 흔들고 가면 끝이다.

그렇게 끝이다. 끝. 바로 그 순간을 끝으로 수현은 이 애매한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파국. 그 씨앗은 이미 여행 중에 뿌려지고 있었다. 어쩌면 기말고사 직후 늦어도 6월 29일에 뿌려졌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수현도 오석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종로3가역 까지는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청량리 역사를 나와 지하철 1호선이 다니는 ‘지하 청량리역’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새벽 다섯시 반이지만 이미 더위가 느껴질 정도로 날이 밝았다.

아, 이 기억을 떠올리고 나니 수현은 다시 다음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펜을 들고 힘을 들여 꾹꾹 눌러가며 글씨를 썼다.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 앞으로 좋은 친구로 지내자 이런 식의 상투적인 말도 차마 못하겠어. 이런 말까지 하고 너랑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친구처럼 지내는 건 어려울테니까. 갑자기 이러는 건 아니야. 여행 내내 생각했어. 그리고 가슴이 막 찢기는 것 같지만 이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어.’

여기서 펜이 멈추었다.

여행 내내 생각했다고? 여행 내내 무엇을?

수현은 잠시 눈을 감고 그 무모한 무박 3일간의 여행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토요일 연재
이전 04화장편소설 1987년 여름 15화 김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