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만.”
이 괴기스런 달리기를 먼저 멈춘 것은 연철이었다. 멈춰 서기가 무섭게 숨을 헐떡거렸다. 마치 허파를 쥐어짜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나약한 책상 물림으로 보이는 연철이 공장 문 하나 나올 때 마다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렇게 외쳐가며 달렸으니 숨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것이 당연했다. 그나마 헐떡거릴지언정 숨을 쉬고 있는 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조금만 더, 저기 까지만 가자.”
도무지 힘든 기색이 없는 정우가 거의 엎어지려는 연철을 붙들어 세우고 손을 쭉 뻗어 시장통이 펼쳐진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가리봉 시장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시장통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백골단도 복잡한 시장통까지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는지 추격을 멈추었다.
진, 정우, 연철도 슬그머니 시장통으로 스며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티가 안 나는 건 아니었다. 가리봉동 시장통에 갓 스무살 서울대학생 세 명이 들어와서 아무리 일반인 행세를 해 본들 티가 안 날 수 없었다. 그러니 전경들이 시장통까지 기어코 쫓아 들어와 잡겠다고 들면 다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 레이스가 지루했을 것이고, 추격을 중단할 빌미가 필요했을 것이다.
“허억. 허억.”
백골단이 퇴각하는 것을 보며 연철이 주저앉았다.
“여기가, 허억, 대체 어디야?”
“가오리.”
”가오리?“
”가리봉 오거리.“
”아아.“
연철이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웬 한숨?“
“가리봉 오거리. 구로 공단이 끝나고, 일반 주택가, 유흥가가 시작되는 곳.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무익하게 알코올로 탕진해 버리는 곳. 고된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간신히 하룻밤을 버티기 위해 닥지닥지 잠자리에 들어가는 벌집이 있는 곳.”
연철이 마치 백과사전을 읽듯이 말했다. 어쩌면 머리속에 백과사전을 집어넣어 놓고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아.”
정우가 연철을 잡아 일으켰다.
“힘도 들고, 목도 마른데, 우리도 무익하게 알코올로 돈을 탕진하자. 나한테 내라고 하지는 마라. 제기랄, 신디사이저랑 앰프랑 스피커랑 다 팽개치고 와서 완전 파산이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낼게.“
할 수 없이 진이 이렇게 말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별 부담은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셋이서 맥주 마셔봐야 얼마 나오지도 않을 터였다.
진은 이곳 지리가 익숙했다. 노동자 야학에서 철학과 국민윤리를 가르치는 봉사활동 하느라 방학 내내 저녁 시간을 구로공단에서 보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진이 이들을 이끌고 간 곳은 야학 수업 끝나고 가곤 하던 허름한 맥주 집이다.
중년 여성이 조그마한 텔레비전을 보며 지루하게 앉아 있다 그들을 힐끔 봤다. 손님이 와서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직 공장 일 끝날 시간도 안되었는데 웬 손님이냐 이런 표정에 가까웠다.
마지 못해 장사라도 해야겠다는 표정의 여성이 메뉴고 뭐고 물어볼 것도 없다는 듯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주방 비슷한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품 반, 맥주 반인 초라한 잔 셋과 말라비틀어진 노가리로 추정되는 마른 생선 몇 마리를 내려놓고 텔레비젼 앞으로 돌아갔다.
건배 같은 거 할 기분이 아니었다. 셋은 말라 비틀어진 목을 축이기 위해 미지근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맥주로 추정되는 액체를 꿀꺽 꿀꺽 들이켰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더니 갈증이 안주라는 말도 되는 모양이다. 진은 맥주 맛이 너무 좋아 놀랐다. 그것도 독일 출신 입맛에 말이다. 진은 맥주잔을 단숨에 비운 뒤 탁자위에 탁 소리나게 내려 놓았다.
뒤를 이어 정우도 빈잔을 탁 소리 내며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연철은 아직 1/3도 마시지 않았고, 더 마실 생각도 없어 보였다.
“왜? 네 입맛에 너무 고급이야?”
“그럴 리가 있냐?”
“입만 대고 마는 것 같아서.”
“기분이 그래. 진아. 넌 PT를 믿어?”
“무슨 뚯이야?”
“넌 정말 PT가 역사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냐는 말이야.”
진은 살짝 밸이 꼬였다. 이제 대학교 두번째 학기인데, 연철이 녀석 벌써 운동권 사투리를 쓰고 있다. 피티라니. 그냥 노동자 혹은 프롤레타리아라고 해도 될텐데.
두 번 생각해 보니 진 자신도 연철 앞에서 뭐라 할 자격은 없지 싶었다. 아버지 서재에서 훔쳐 읽은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선, 마르쿠제나 아도르노의 책 몇 권 읽고 진보니 사회주의니 반자본주의니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진은 실망하는 연철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연철을 위로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로 했다.
“실망이 컸나 보네.”
“실망 정도가 아니야. 하지만 난 위로가 아니라 답을 원해.”
“답이라. 내가 어떻게 그런 것 까지 알겠냐만 자신이 해방시키고자 했던 농노들이 오히려 자신을 고발했음을 알았을 때 젊은 혁명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딱 이런 상황 아니었을까?”
“뷔히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계속 글을 썼지.”
“실망하고 배신당하면서도 계속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뜻이야?”
“네가 굳이 답을 원한다면 그래. 나는 인 더 롱텀, 민중을 믿어. 하지만 인더 숏 텀, 믿지 않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그럼, 거시적으로는 믿지만 미시적으로는 믿지 않는다고 할까?”
그러자 정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넌 고등학교 때 부터 그런 경향이 있는데, 안 그래도 어려운 말을 더 어렵게 만들어. 혹시 그게 취미야? 아니면 독일 문화야?”
“좋아. 쉽게 말해 볼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하고, 이 모순은 오직 그것의 폐단과 피해가 집중된 계급, 또한 사적 소유에 기반 하지 않은 계급,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모든 생산을 담당하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에 의해서만 지양될 것이다. 이게 연철이 네가 알고 있는 명제지? 선배들도 그렇게 말하고?”
“맞아.”
대답하는 연철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진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나는 이런 명제를 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죽어 있는, 화석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겠어. 그리고 문서 파쇄기에 넣고 갈아버리고 재생용지로 만들어 거기에 새로운 책을 찍겠어. 이게 바로 파괴하며 동시에 계승하는 변증법 아닐까?”
“어째서?“
“어떤 계급이 낡은 시대의 모순이 주는 피해를 받고, 새로운 시대의 생산양식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낡은 시대를 파괴하는 운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뭔데? 그럴 이유가 있어?”
“당연히 있지. 결국 자기들 이익이잖아?”
“계급으로서는 그렇다지만 개인에게는? 나 죽고 우리 계급이 승리하는 거, 혹은 나 죽고 내 새끼 까지 죽은 다음 우리 계급이 승리하는 거, 거기 민족이든 조국이든 다 마찬가지겠다만 하여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럼 넌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는 어떻게 설명할건데?”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존경받는 것이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 했지 조선 민중이 독립운동을 얼마나 했을까? 그냥 생업에 종사하지 않았을까? 때로 밀고도 하고 어린 여성들 사창가에 팔아 치우기도 하면서?”
“아, 그건….”
“넌 저 공단의 노동자들이 정말 프롤레타리아라고 생각해?”
“그럼?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이 세상에 프롤레타리아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 지구 어디에도 말이지. 다만 어느 가족 구성원인 김 아무개, 박 아무개 혹은 파커, 브라운, 다나카가 있을 뿐이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가족들과 오붓하게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야. 나름대로 저축도 하겠지. 그 저축을 가지고 이루어 낼 미래의 꿈도 가지고 있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당연하지? 그런데 미래의 꿈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힐 수 있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바로 중산층이야. 저들은 중산층이야.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적어도 스스로 느끼기에는 중산층이야.”
“말도 안 돼.”
이번에는 정우가 손사래를 쳤다.
“저 사람들 사는 꼴 봤잖아? 한달 내내 주말도 없이 일해야 받는 월급이 니들 일주일에 네 시간 과외 하면 받는 돈 하고 비슷해. 내가 아는 중산층은 바로 니들 과외비 주는 그런 사람들이고. 그런데 저들이 중산층이라고? 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여간 정우 녀석은 늘 직설적으로 말한다. 음악도 직설적이고. 하지만 덕분에 정우와 이야기 하면 말을 펼쳐 나갈 맛이 난다. 진은 이런 직설적 되먹임이 너무 좋다. 슬슬 머리와 입에 발동이 걸렸다. 진이 맛 없는 맥주를 한 잔 더 들이켜 입과 머리에 윤활유를 치고 말했다.
“물론, 제정신이지. 나도 알아.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우리 과외비 정도 되는 돈을 한달 내내 일해서 받는다는 것. 그리고 정우, 아니 디누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 번 공연해서 받는 돈을 연봉이라고 받기도 하지. 하지만 나는 돈 계산을 하자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철학자의 정신으로 말하고 있어. 계급을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벌고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인 요인이 아니야. 오히려 자신을 어떻게 규정 하는가 하는 것이야.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객관적인 삶이 아니라, 스스로 규정한 자신의 이미지라고. 자신을 중산층으로 규정하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중산층처럼 생각하고 행동할거라고.”
“그건 주관적 관념론이야!”
이번에는 연철이 반발했다. 하지만 진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허허, 나를 관념론이라는 말을 이단잡설과 동의어로 쓰는 운동권 선배들 수준으로 보지 말아줘. 유물론은 옳고, 관념론은 틀리다. 변증법은 옳고, 형이상학은 틀리다. 그래서 유물 변증법이다? 이런이런. 그건 스탈린 일당이 찍어낸 엉터리 철학 교과서에서나 통하는 말이야. 우리가 왜 철학, 사회과학 공부를 하는데? 인간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잖아? 난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관념론이든 형이상학이든 뭐든 수용할거야. 방금 네가 목격한 노동자들의 모순적인 행동은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이 중산층의 의식이며,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결정했다는 논리로 밖에 설명할 수 없어.
유물론? 진정한 유물론이라면 무엇이 그들이 그런 모순된 의식을 가지게 하였는지, 그 주변 변수들을 먼저 탐색 해야지 노동자로 살고 있으니 당연히 프롤레타리아다 하는 식의 어설픈 단정을 할 것이 아니라. 유물론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말하는 것이지, 관념론은 안된다 이런 게 아니야. 만약 사람들이 관념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유물론이 옳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유물론에 끼워 맞춰 이해한다면 그거야 말로 관념론이잖아? 당장 정우를 보라고.”
“나? 나는 왜?”
“저 어린 나이에 억 단위 돈을 주무르는 저 녀석이 지금 공단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겠다며 쇠 파이프를 휘둘렀어. 연철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 스탈린식 유물론이 정우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어? 하지만 그 행위의 근거를 정우의 의식에서 찾는다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어. 정우는 지금 틀림없이 프롤레타리아 편에 서 있고 좌파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행동의 기반은 물질이 아니라 관념이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학생운동보다 야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하나하나 배워야 해. 앎이란, 지식이란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마주보게 하고.“
“결국 노동자들도 공부해야 한다?”
“바로 그거야.”
갑자기 연철이 벌떡 일어나더니 박수를 쳤다. 어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연철이 자기 자신에게 감격한듯 잔뜩 도취된 모습으로 말을 쏟아냈다.
“노예가 자신이 노예이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노예 바깥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 봐야지. 노예의 눈으로 아무리 자신을 바라본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자연이며, 생득적인 법칙일 뿐이야. 그런데 난 자신의 존재도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바로 행동을 호소했어. 그 호소는 그들에게 공포만을 불어 넣을 뿐 어떤 행동도 이끌어낼 수 없어.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는 그들을 각성 시키고 직면하게 할 외부적인 충격, 의미 있는 외부자야. 우리는 저들에게 의미 있는 외부자, 즉 스파르타쿠스가 되어야 하는 것이야. 나는 노동자들에게 의미 있는 외부자의 눈이 될 거야. 그러나 일단 그들이 눈을 뜨면, 그 다음에는 오히려 나의 이 먹물냄새 나는 안경을 벗어버리고 그들의 눈으로 미래를 쏘아 볼 거야!”
이때 어디선가 거치른 전라도 억양의 중년 남성 목소리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거기 아그들.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아그들이, 여그서 또 데모질 벌이려고 모으들 하고 있어야? 싸게 꺼져 버리그라 잉! 이제부텀 민주화 되었응게 느그들이 데모질만 안하면 김대중 슨상님 대통령 되시고, 다 잘될것잉게, 여그는 얼씬도 하지 말그라, 잉!”
이번에는 무뚝뚝하게 맥주와 노가리를 던져놓고 갔던 가게 아주머니까지 나섰다.
“그렇당께. 민주화도 다 되았는디 데모 질이나 하는 뺄갱이들은 다 잡아 족쳐야 한당께.”
“자.”
정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윙크했다.
“오늘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은데?”
역시 정우는 매 순간 결단도 행동도 빠르다. 진도 따라 일어섰다.
“그래. 그만 가자.”
연철이가 따라 일어서며 진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너한테 배우지 않았다면, 난 저 사람들 때문에 엄청 화났을 거야. 하지만 이게 현재 우리 노동자, 민중의 참 모습이겠지.”
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야. 하지만, 곧 그들도 자신들의 황홀한 나신을 적시하고 나르시즘적인 황홀경에 빠져들겠지. 지금 우리가 그런 것처럼.”
“나르시즘. 나르시즘.”
정우가 이 말을 주문처럼 따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