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987년 3부 가을 1화 성진1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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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프란치스코 고야가 ‘두려움’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바로 지금 성진이 보고 있는 이 장면을 그렸을 것이다. 성진이 쇠파이프, 철제 앵글 같은 것들로 어설프게 무장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함께 서 있는 장면. 들고 있는 폼도 서 있는 자세도 맥이 없었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부들부들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을까?”

잔뜩 겁먹기는 옆에 있는 연철도 마찬가지였다.

“모르지. 괜찮기 바랄 수 밖에.”

성진은 이 말 밖에는 돌려줄 말이 없었다. 진은 자신의 눈동자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

사람은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다. 마주보는 상대의 얼굴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뿐. 진은 연철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으니 자신의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을 것이라 추론할 따름이었다. 연철 역시 흔들리는 자신의 눈동자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성진과 연철은 마주 보며 서로의 얼굴에 새겨진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온갖 상념을 읽었다. 그나마 연철이 손에는 쇠파이프라도 있었지만 진은 맨 손이다. 등 뒤에는 ‘D산업 구로구 가리봉동OO번지’ 라는 문패가 걸린 벽돌 기둥과 철문, 짓다 만 오래된 학교 같은 모양의 커다란 공장이 아직은 뜨거운 9월의 햇빛이 만들어내는 아지랭이에 흔들리며 서 있었다.

공장 안쪽에서 확성기 소리와 구호소리가 요란했다. 50 미터쯤 떨어진 길 건너편에서 그들을 노려보며 서 있는 경찰들 무전기 소리도 요란했다. 삐빅 소리가 나고 뭐라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물 라디오 같은 소리가 들리고. 따시 삐빅 소리와 치지직 소리가 났다.

진은 사춘기 시절 -지금도 사춘기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을 상상하곤 했다. 그때 늘 따라붙던 의성어가 치지직이었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마치 전원을 내린 TV화면처럼 시야가 팍 꺼지는 그런 모습. 한 순간에 시야가 꺼지면서 의식이 뚝 끊어지는 그런 상황.

그런데 사람은 의식이 뚝 끊어진다는 것을 과연 의식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의식이 끊어지고 생명이 다한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그것을 의식하는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의식하는 존재가 또 생명이 다한다면 그것을 의식하는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영혼은 존재하며 불멸이며, 그 최후 심급에는 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꼬리를 무는 생각은 이런 식으로 스콜라 철학의 형태를 띄었다.

“유령노조 해산하고 민주노조 인정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악덕 기업주 김말봉은 즉각 교섭에 참석하라!”

“노동3권 쟁취하여 민중해방 앞당기자!”

공장 안쪽에서 부터 거센 구호와 함성이 확성기와 바람을 타고 요란하게 퍼져 나왔다. 구호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주는 북소리는 둥둥거리며 땅바닥을 통해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공장 문을 지키고 있는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없던 용기를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그들이 서 있는 자세가 조금은 달라졌다. 정체 모를 호전성이 피어오르는 것이 자세에서 드러났다.

둥둥둥둥. 저 북소리 때문이다. 전쟁에는 언제나 빠지지 않았던 북소리.

이윽고 전자오르간 소리가 처절하면서도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성진이 작사하고 정우가 작곡한 노래 ‘노동자의 꿈’이다. 어제 노동조합 지도부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고, 지금은 조합원들이 모두 입에 익혀 놓았을 것이다.

전자 오르간으로 반주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정우였다. 만약공연장이라면 저 노동자들 일주일치 일당을 모아야 직접 들을 수 있는 그 디누의 연주였다. 비록 피아노가 아니라 전자오르간이 피아노를 흉내내는 그런 소리였지만.

정우의 연주는 일반적인 노래패 반주와 아주 달랐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훨씬 복잡하고, 훨씬 강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 위에 고래고래 노래 부르는 소리를 얹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지는, 그저 듣고만 있고 싶게 만드는 그런 반주였다.

그런데 노래가 다 끝난 다음에도 연주가 멈추지 않았다. 진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디누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진은 연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격려한 뒤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300여명의 노동자들의 600여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가설무대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600여개의 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600여개의 눈에 조금씩 물방울이 맺혔다. 진의 눈도 젖어들었다. 공장 문을 지키고 있는 쇠파이프 청년들도, 그들과 마주보고 있는 경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슬퍼서도 벅차서도 아니라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은 30여 분간 계속되었다.

오늘을 위해 미리 작곡을 해 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하는 것인지 진은 알지 못했다. 하긴 정우에게 그 둘의 차이가 의미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 음악이 마음을 바꾸었다. 구호 소리와 북소리가 일구어 놓았던 용기는 그대로 남겨 두면서도 솟구치던 호전성만 골라가며 고요하게 잠재웠다.

진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연철과 학생들에게도, 쇠파이프를 들고 공장 문을 지키고 선 노동자들에게도 심지어 방패를 들고 돌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경찰들에게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들조차 방패에 몸을 느슨하게 걸쳐두고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록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찌그러지고 지직거리는 소리일망정.

음악이 멈추었다. 연주가 끝난 모양이다. 정우가 일어섰다. 300 명의 노동자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그 박수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진이 부리나케 가설 무대 위로 달려가며 연철에게 손짓했다. 연철도 나무젓가락 같은 껑충한 다리를 바삐 놀리며 달려왔다.

빨리 치워야 한다. 언제 경찰이고 구사대고 쳐들어 올지 모르니 악기와 장비를 빨리 정리해서 정우를 무사히 공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다음 스케쥴을 이어갈 수 있다.

8월부터 9월까지, 정우의 스케쥴은 빽빽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연주하고 루체른에서 몬테카리니의 수업을 듣고 돌아오자 마자 오후와 저녁 시간을 수많은 연주 일정으로 꽉 채워 놓았다.

그 중 절반이 오늘같이 파업 농성장을 찾는 일정이었다. 공장에 피아노가 있을 턱이 없으니 전자 오르간을 가져가 확성기에 연결해서 연주했다. 구내 방송 시설이 제대로 없는 열악한 공장에는 아예 앰프까지 들고 갔다.

그러고도 매주 한 번씩 세종문화회관이나 여러 지방 대도시 문화회관에서 연주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 와중에 레슨생까지 받았다. 그러고도 저렇게 멀쩡하다. 심지어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등산까지 했다. 진은 정우의 그 끝없는 체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정우는 전자오르간을 어깨에 짊어지고 진은 앰프를 집어 들고, 공장 문에서부터 달려오는 연철과 합류했다.

“브라보!” 연철이 박수를 친 뒤 정우가 짊어진 전자오르간을 빼앗듯이 자기 어깨에 걸쳤다. “최고의 음악, 최고의 공연이었어!”

“아니, 거기까지 그렇게 들렸어?”

“여기 뿐 아니라.” 연철이 경찰들을 가리킨다. “저들에게까지도 들렸어.”

그러다 문득 진이 옆에 있는 것을 의식하고 한 마디 보탰다.

“아, 물론, 가사도 훌륭했지.”

“이런 이런, 완전 엎드려 절 받기다.

진이 아무 흥미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기 좀 봐!” 연철이 다시 경찰들을 가리킨다. “정우 음악 때문인지 네 가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경들이 철수하고 있어.”

돌아 보니 과연 경찰들이 방패며, 화이바며, 곤봉이며 온갖 장비를 다 챙겨 버스에 타고 있었다. 굉장한 속도였다. 배치될 때 보다 훨씬 빨랐다. 잠깐 사이에 언제 경찰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공장 앞이 텅 비어 버렸다.

물론 진은 그들이 정우의 연주 혹은 자신의 가사에 감동받아 물러났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어느새 노동조합 위원장인지 문화국장인지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던졌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유령노조가 있거든요. 아, 법적으로는 그 놈들이 합법 노조고 우리가 불법 유령노조지만 말입니다.”

“유령노조라뇨?“

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문화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접수시키러 갔더니 벌써 노동조합이 등록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보다 이틀 먼저. 그런데 법에는 한 회사에 노조는 하나밖에 등록 안되니 우리 더러 거기 가입하라고 하더군요. 요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 회사 노동자는 여기 다 있는데 대체 어떤 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그래서 어떤 놈들이 먼저 등록했는지 수소문해 보았는데, 회사 명부에는 있는데 공장에서는 생판 첨 들어보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일주일 전에 채용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누군지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작업 반장들한테 물어봐도, 그런 놈들 금시 초문이라고 합디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깡패들입니다.”

진이 딱 잘라 말한다.

”깡패요?“

“네. 조직폭력배 말입니다.”

“그러니까 용팔이 이런 놈들 말입니까?”

“네, 그런 놈들. 사장이 깡패를 고용했네요. 그리고 그놈들 시켜 여러분들하고 싸움을 붙이려는 겁니다. 형식적으로는 노동자들끼리 싸움, 노노갈등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소위 회사를 구하려는 노동자들과, 회사를 흔들어대는 노동자들끼리의 싸움. 경찰은 모른 척 하려고 쓱 빠지고. 그래서 한 바탕 싸움이 일어나고 나면, 그제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양쪽 모두 체포하겠죠. 그럼 사장과 경찰은 손 안대고 코 푸는 거죠.”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요. 경찰들이 물러난 게 더 수상해요.”

문화국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우가 쇠파이프를 두 개 들고 왔다. 그리고 하나는 자기가 잡고 다른 하나를 진에게 들이밀었다.

”아, 이러지 마시고, 세 분은 어서 빠져 나가세요.“

문화국장이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정우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젓더니 손에 든 쇠파이프를 라이트 세이버 처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올테면 오라지.”

아마도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혹은 어느 놈이 정우가 하는 말을 듣고 무전을 치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봉고차 여러 대가 공장 앞으로 달려왔다. 타이어 마찰음을 요란하게 내며 거칠게 공장 앞에 멈춰선 봉고차 문이 열리더니 공장 작업복을 입고, 손에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튀어나왔다.

D산업 로고가 선명한 빳빳한 새 작업복을 입고 노동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사각으로 깎은 머리 모양으로 보나 보통 사람보다 부피가 1.5배는 나갈 것 같은 몸집으로 보나 도저히 공장노동자로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무슨 격투기 선수들 같은 20대의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왔다.”

노조 문화국장이 짧게 한 마디 지르더니 급히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 버려!”

작업복을 입은 덩치 큰 괴청년 중 하나가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며 쇠파이프를 치켜 올렸다. 그러자 나머지 무리들도 일제히 비슷한 소리를 지르고 난생 처음 들어 보는 지독한 욕지거리를 하며 달려왔다.

공장 입구를 지키던 노동자들은 감히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공장 안으로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아주 달아난 것은 아니고, 곧 스패너, 쇠파이프 등을 들고 튀어나오는 동료 노동자, 학생들과 합류하여 다시 괴청년들과 맞섰다.

공장 마당이 망치와 곤봉으로 치고 박고 싸우는 중세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각목 휘두르는 솜씨로나, 가차없이 사람을 때리는 잔인성에서나 노동자와 학생들은 괴청년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조직 폭력배들임에 분명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나름 결사적으로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겠지만 진의 눈에 보이는 모습은 사실상 일방적인 린치에 불과했다. 아니 일방적인 테러다.

그러다 잠깐 옆을 돌아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정우가 사라졌다. 아까 쇠파이프를 들고 어쩌니 저쩌니 하더니 설마 저 아수라장에 뛰어들었단 말인가?

진은 정우가 음악으로 노동자와 함께 하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했지만 쇠파이프 들고 싸움박질 하는 것은 도저히 찬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우는 6월부터 아니 고등학교때 부터 치고 받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천성이 싸움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음악에서 아름다움은 일종의 부수적 효과이고, 본질은 투쟁일지도 몰랐다. 시간과의 투쟁, 이 세상의 질서와의 투쟁, 신과의 투쟁, 자신과의 투쟁.

하지만 그러다 손가락이라도 다치면 큰일이다. 진은 지네트로부터 정우가 몇 년 전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쉬었던 적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연주자의 손가락은 일반인의 손가락과 다르다. 운동선수의 근육이 일반인의 근육과 다르듯.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다고 완치된 것이 아니다. 한 번 다친 부위가 계속 문제가 되어 결국 은퇴하는 운동선수들의 부상 부위도 대체로 일반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 문제 없는 경우가 많다. 연주자의 손가락도 그렇다.

정우의 손가락은 정우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공공재다. 진이 생각하기에 정우는 자신의 손가락을 지킬 책임과 의무가 있는 녀석이다. 불행히도 손가락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 아수라장에 정우를 끌어들인 진은 인류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이다.

막아야 한다. 그런 일은 절대 막아야 한다. 진은 정우가 지나치게 정치에 몰입해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게 잘 지켜주겠다고 지네트와 약속했다. 이 공단 음악회도 진은 오히려 반대했다. 하지만 정우가 끝끝내 고집을 부려 그나마 횟수를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그런데 정우가 저렇게 깡패들과 치고 받는 싸움터에 뛰어드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진은 도저히 저 아수라장에 몸을 던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중세 격투장 같은 싸움터에 들어가 정우를 찾아 끄집어 내는 고난도 미션을 시작도 못하고 애꿎은 발만 앞으로 뒤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렇게 한 10여분이 지났을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신고를 받고 출동이라도 한 양, 아까 철수했던 그 경찰들이 다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클리셰가 무안할 지경이다.

아까는 방패나 들고 있던 경찰들이 지금은 방독면을 쓰고 유탄 발사기 까지 들고 있다. 경찰들은 오자마자 최루탄부터 펑펑 쏘아댔다.

공장 마당이 순식간에 매운 안개로 뿌옇게 덮였다. 진도 연철도, 노동자들도, 심지어 깡패들까지 모두 콜록거리며 허우적 거렸다. 이 틈에 백골단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공장 마당에 있는 사람들을 이쪽 저쪽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노동자와 학생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아까 까지만 해도 잔인한 폭력을 과시하던 괴청년들은 의외로 순순하게 체포되어 얌전히 제 발로 경찰차로 걸어 들어갔다.

끌려가는 학생들 행렬에 연철이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누군가의 억센 손아귀가 진의 허리춤을 움켜 쥐었다. 어찌나 효과적으로 움켜 쥐었는지 질질 끌려가는 것 외에는 다른 동작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의 뒷덜미 잡혀 번쩍 들어올려진 고양이 꼴이 되었다.

이렇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데 진은 갑자기 허리를 잡아 끌던 압력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지? 백골단에게서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얼른 주위를 둘러 보니 정우의 모습이 마치 페이드 인 되는 것처럼 와락 나타나 쇠파이프를 마치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싱긋 웃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백골단 서너 명이 아픈 정강이를 움켜쥐고 주저앉아 있고, 방금 노동자들을 닭장차에 밀어 넣은 다른 백골단들이 정우를 향해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뭘 봐 자식들아. 튀어!”

정우가 진과 연철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너는?”

“말이라고 해? 나도 튀어야지. 잠깐 시간 좀 벌고”

정우가 진과 연철이 등을 떠밀더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백골단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몇 번 대거리를 하며 시간을 벌었다.

차마 정우를 두고 갈 수 없어 진과 연철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가까이에 있는 백골단들을 다 때려 눕힌 정우가 쇠파이프를 집어 던지고 달려왔다.

“뛰어 뛰어 뛰어!”

정우의 고함소리가 공장 마당을 쩌렁쩌렁하게 채웠다. 진과 연철은 그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뒤로 돌아 공장 담장을 뛰어넘었다. 그들 뒤를 따라 아직 연행되지 않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일제히 공장 담을 넘었다.

어느새 정우도 바로 옆에서 공장 담을 넘었다.

“너 진짜 빠르다.”

“나 100미터 12초 4야.”

“거의 운동선수군.”

“음악을 안 했으면 아마 운동 했을 거야.”

그들은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달리면서도 계속 뭔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너 맨 몸이다?”

“그러는 넌?”

“연철이 너는?”

“망할, 죄다 흘리고 왔구나.”

“증거물로 죄다 압수되겠군.”

“미안하다. 도망가느라 바빠서.”

“괜찮아. 또 사면 돼.”

“전자오르간, 그거 비쌀텐데?”

“무식한 놈. 신디사이저라고 하는 거다. 야마하 디엑스 세븐. 한 200만원 밖에 안 하니까 뭐. 하하하.”

정우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던졌다. 진은 그 웃음을 듣고 도저히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200만원이라니? 대학교수인 아버지 월급이 200만원이 안되는데?

하지만 돈 걱정 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죽기 살기로 달려야 했다.

이렇게 죽기 살기로 달리자 비로소 이 구로공단이라는 곳이 얼마나 괴상한 곳인지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것은 온통 길과 공장과 담장 뿐. 가끔씩 그 담장을 조금 열어 놓은 공장 문이 나왔지만 철문이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공장들은 오직 사이즈로만 구별될 뿐 하나같이 똑 같이 생겼다. 하긴 똑 같이 생긴 아파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공장만 개성있는 모습을 하고 있기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 단조롭고 지루하고 차가운 풍경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보니 단테가 환생하여 한국어로 이렇게 읊어대는 환상이 보일 정도다.

여기 온 자, 공장 아닌 곳을 생각하지 말라. 공장에 들어간 자, 한번 공장 안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리

간혹 공장 문 밖에 나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웃거리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죽어라 달리는 학생들과 그 뒤를 죽여라 쫓아오는 백골단의 질주를 무슨 스포츠 경기 관전하듯 바라보았다. 일부는 담배까지 뻑뻑 피워 물고 있었다. 근처 S기계산업 공장 노동자들이다.

이때 연철이 그들을 향해 소리친다.

“도와주십시오! D산업 형제들이 어용노조와 폭력경찰에게 당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형제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S기계 노동자들은 시퍼렇게 몰려오는 경찰들을 보자 슬금슬금 공장 안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연철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공장 입구를 지날 때 마다 ‘천만 프롤레타리아의 단결 투쟁’을 호소했다. 진은 연철이 도대체 뭘 기대하고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프롤레타리아들 중 누구도 거기에 화답하지 않았다.

이들은 D산업 노동자들이 무엇을 위해 피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고 또 잡혀갔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오히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비명소리와 최루탄 소리가 들리자, 일대의 모든 공장들이 일제히 철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문 닫힌 공장들로 가득 찬 구로공단의 거리는 육상경기 트랙처럼 텅 빈 거리만 죽 이어지는 곳이 되었다. 텅빈 공단 거리에 소리라고는 학생들과 전경들의 급한 발자국 소리, 거친 숨소리뿐이다.

그 소리가 공장 벽과 담장들을 두드리며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땅 밑에서 하늘에서 담벼락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달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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