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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형광 Mar 09. 2023

1cm 더 가까이

세상을 향한 평범한 도전

   

몇 년 전 내가 담당하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자랑하던 아이는 어느덧 5학년이 되었고, 오늘도 어머니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푸르메병원으로 방문했다.      

오랜만에 치료실에서 만난 아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작업 목표를 세워주기 위해, 올해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고, 아이는 대답했다.


“저는 지하철이 타고 싶어요! 제 소원이에요!”     

사실 30분 동안 진행되는 치료시간 내에는 이뤄줄 수 없는 목표이기도 하고, 강원의 아들 출신인 ‘나’라는 선생님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지하철이라는 ‘서울사람들’의 교통수단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라떼(?)는 말이지...’로 이 소원을 넘기기에는 아이의 소원이 너무나 구체적이었고, 선생님은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말풍선이 눈에 보일 정도로 아이는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요술램프 속 지니‘가 되기로 마음먹고, [지하철 타고 세상 속으로 가기] 활동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는 지하철이라는 교통편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다음에, 다음에’라고 넘긴 것이 5학년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작업치료사로서 휠체어를 이용해 지하철 타기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을 분석하고, 아이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안전에 대한 고려를 우선시하고, 엘리베이터의 위치, 승강장 사이의 거리와 단차,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포함해서 소요 시간, 이동 동선 등 휠체어라는 특별한 아이의 다리로 갈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확인했다.      


우리는 이 멋진 소원을 위해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두 명의 작업치료사와 의료진을 포함한 지니팀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아이의 소원을 함께 참여했다.     


병원 앞(사실은 내 차로 10분 떨어진...)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순간부터 한 정거장 떨어진 다른 역의 델리만쥬를 먹는 순간까지 아이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모든 상황들을 즐거워했고, 더 넓은 세상에 함께 할 수 있는 초등학교 5 학년 ‘언니’가 되었다.


물론 ‘승강장 사이가 넓습니다. 발 빠짐에 주의하세요,’라는 문구는 우리 아이가 주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고, 1cm 더 안전한 승강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손가락 한마디도 안 되는 이 짧은 거리는 우리가 세상에 참여하기에 너무나 멀고 위험한 거리였다. 교통약자를 위해 구성된 게이트의 문은 아이에게 너무 꽉 막혀 있었고, 지하철 안의 교통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에는 여전히 배려가 필요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휠체어에 앉은 아이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관심이 필요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아이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려주는 1초의 도움이 있었고, 낮은 곳에서 속삭이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1cm 더 가까이 귀 기울여주는 이들이 있었다. 승강장과 지하철의 1cm는 아직은 너무 위험했지만 그래도 함께 해냈다. 우리는  “Doing miracle, Doing Occupation” 함께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거리 그리고, 어른의 눈높이와 앉아 있는 아이의 눈높이 모두 1cm 만 더 가까워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넓은 세상에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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