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문화재단 May 27. 2016

서울의 별별 수집가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서울을 모아줘’,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

7080 추억의 거리로 꾸민 시민청 바스락홀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 행사장


올해 초 이사하면서 창고를 정리하다가 가족 추억 상자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수십 년 묵은 놀이공원 입장권, 극장 공연표, 아이들이 만들어 준 종이 카네이션, 기차 티켓 등 각종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다. 한참 망설이다가 이삿짐 속에 다시 넣었다. 결국, 새집 어느 구석에서 잠잘 테지만 말이다. 버려야 했을까? 살다 보면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가 있는 법이다.      


지난 4월 27일 수요일 저녁 시민청 바스락 홀에서 일상의 물건을 모아온 별별 수집가의 토크쇼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서울문화재단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이 서로의 기억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날 시민청은 떡집, 미미분식, 서울상회, 만화방 등 1970~80년대 추억의 거리로 변신해 이들을 맞이했고, 그 시절 복장으로 분장한 배우(아리랑 극단)들이 복고풍 파티의 흥을 띄웠다. 한쪽 벽에는 다양한 수집품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 및 방문 참가자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70~80년대 교복차림으로 분장한 연극배우들 모습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 ‘서울을 모아줘’란?          


최근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시간을 되돌려 시청자의 향수를 자극하였다. 나팔바지, LP판, 워크맨, 카세트테이프, 삐삐 등 당시 마음을 사로잡던 물건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마도 그 일부는 각 집의 추억 상자 속에서 지나간 세월을 품고 있을 것이다.      


서울문화재단은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시가 추진하는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을 진행한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이 간직한 일상 생활유산을 발굴해 다양한 테마의 작은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다. 이는 무심코 지나쳤던 생활 속 물건의 가치를 재평가해 서울의 미시사를 잇는 작업이기도 하다.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허영만 만화가  |  행사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옛날 과자를 맛보는 모습



그때 그 시절서울 어디까지 기억하니?   

  

이날 추억의 거리에 들어선 참여자들은 모처럼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단팥빵, 꽈배기, 수정과, 튀밥 과자, 야쿠르트 등 옛날 먹거리들이 달곰한 맛으로 70~80년대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한쪽 벽에는 허영만 작가의 만화책으로‘영만이 만화방’을 꾸며서 어린 시절 드나들었던 만화방을 그대로 담았다.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 참여자가 추억의 음식을 맛보는 모습.
서울의 별별 수집가 전시 포스터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 수집가들의 기념 촬영 장면



“서울지하철 5호선 개통 기념 승차권 (조기은)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하철 표 마그네틱선 자석이 구겨져서 지워질까 봐 걱정한 것이 기억난다. 광화문역이 불과 10년 전에 없었다니 새삼 놀랍다.“     


“토큰 내고 버스 타고 싶어요.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나서 아쉬워요. 

전화카드도 모아서 집안에서 여러 용도로 썼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 참여자의 수집품 사진과 글 인용함- 


그때의 서울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일까? 특히 캠페인을 통해 공개된 23명의 별난 수집품들은 옛 서울의 추억을 더욱 생생하게 재현했다. 참여 수집가 중 한선정씨는 아버지  한영수 작가의 1950~60년대 서울 사진 1만1,000 컷과 사진예술 서적 1,000권을 모았다. 아스라한 서울 풍경과 인물들이 담긴 사진은 그 시절 서울을 증거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 참여 수집가 23인 - 홍순태, 현태준, 한선정, 김성문, 김한용, 이종진, 이혜경, 이지혜, 조유정, 김형규, 김정철, 조동일, 정인숙, 석락희, 이원식, 박상두, 옥수필, 임창수, 최민정, 박상진, 이영조, 김수진, 김현진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 참가자의 영상 모습


7명의 별별 수집가가 기억하는 서울은 어디까지였을까? 이날 김형규(방송인, 치과의사, 만화애호가)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물관도시 서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자리에 특별 손님으로 참석한 박원순 시장은 스스로 박물관 시장이라고 칭하면서, 박물관 건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박원순 시장은 고향같이 느껴지는 서울을 되살리기 위해 사소하고 작은 것이지만 우리의 삶이 담긴 테마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는 2018년 노원구 옛 북부지방법원 터에 생활사 박물관, 로봇박물관, 실크박물관 등 13개 박물관을 신설 예정이다.


박상진 수집가가 직접 모은 공중전화카드를 소개하는 모습
김형규 진행자가 석락희씨가 모은 마라톤 기념메달의 부피에 감탄하는 장면


행사장에 걸린 대형 브로마이드 7인의 주인공들이 토크쇼의 손님으로 등장했다. 극단 아리랑의 연출가 김수진 씨는 1986년 창단 당시 공연했던 타자 대본과 김명곤, 방은진 배우의 옛날 사진을 소개했다. 그녀의 참여 소감을 들으면서 별별 수집가의 서울 채집이 단순한 수집 차원을 넘어 근사한 연극으로 태어나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날 소개된 수집품 중에는 이미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도 있다. 이영조 작곡가가 들고 나온 선친 이흥렬 작곡가의 동요 ‘섬 집 아기’ 친필 악보이다. 관객은 세월 따라 이제 할머니, 어머니의 노래가 된 곡을 함께 불렀다. 아련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합창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저마다 섬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서울 토박이 김현진 씨와 전통매듭 공예가 최민정 씨 또한 선대의 수집품을 보존하고 그 의미를 이어가는 당찬 후손이었다. 김현진 씨는 영·정조 시대부터 내려오는 집안의 유물과 1900년대 소장 자료 200여 점 중에서 할아버지의 경기중학교 입학증을 복사해 왔다. 최민정 씨는 아버지가 수집한 공예품들로 작년에 차 문화 박물관(양평 문호리)의 꿈을 이루었다.     


광장시장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는 박상두 씨의 눈금이 닳은 20년 묵은 제도자, 석락희 씨가 모은 200여 개의 마라톤 대회 참가 메달은 한 개인의 기념물일 뿐만 아니라 한 분야의 축적된 시간을 말해주는 값진 자료이다. 박상진 씨(은평 향토사학회)가 수집한 공중전화카드에는 한강 풍경, 향원정, 덕수궁 등 서울의 모습과 당시 결혼 풍습이 새겨져 있다. 별것 아닌 물건에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곧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별별 수집가의 기억으로부터 얻은 발견이었다. 


김형규 진행자와 허영만 작가가 만화수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7인의 수집가 이야기에 이어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무대 화면에 만화 영상이 펼쳐졌다. 허영만 만화가의 특별 초대 순서였다. 작가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자신의 만화 인생 45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가 일상 수집가에게 공간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개인의 취미를 넘어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바버렛츠 그룹의 추억의 음악 공연


복고풍 드레스로 성장한 걸그룹 바버렛츠의 무대가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들의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따라 그 시절 ‘서울의 아가씨’가 수십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온 듯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한 노래 가사처럼 명랑한 아가씨와 손잡고 걷는 서울은 쭉 이어질 것이다.

      

토크쇼를 지켜보는 노(老) 참가자의 모습.



내가 가진 추억이 서울의 역사가 된다.     


너와 나의 묵직한 시간이 우리의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되는 그런 사회는 좀 더 따뜻하지 않을까? 박물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은 이런 꿈에서 출발했다. 수집된 물품들은 2018년 시민생활사박물관, 로봇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민속음악전시관, 사진미술관, 서서울미술관, 봉제박물관, 도시재생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의 기본 자료로 제공될 예정이다. 또한, 해당 수집품은 가치 평가를 거쳐 ‘서울특별시 미래유산’ 인증 대상 후보가 된다. 소소한 서울 역사 만들기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민은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www.sfac.or.kr) 또는 ‘서울을 모아줘‘ 페이스북(www.facebook.com/museumseoul)에서 평소 수집한 물건의 사진과 사연 등록으로 참가할 수 있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이 그대의 추억을 기다린다.  


* 서울문화재단 캠페인 담당 02-3290-7192~4



글·사진 변경랑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서울문화재단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서울문화재단 페이스북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웹진

작가의 이전글 무대의 중심에서 움직임을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