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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돌고래 Jun 06. 2017

내 친구의 작은 세계, 푸드트럭 Lecker

"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너는 뭐 하고 싶어?


우리가 아직 잘 모를 적에 조금은 무례하게 물었다. 친구는 푸드트럭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독일 한식당에서 파는 돼지 튀김 요리를 팔 예정이라고. 조리법은 아느냐고 조금 더 무례하게 물었다. 조리법은 아직 모르고 일단은 닭강정 가게에서 튀김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다. 연락 한 번 따로 할 일 없던 아이와 어쩌다 보니 종종 연락하는 친구가 됐다. 잘 되어 가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천천히 하고 있다고 했다. ‘얘가 어쩌려고 이러나.’ 조급증이 오지랖이 되어 괜히 내 마음이 급해졌다.



푸드트럭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우리가 따로 밥을 먹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되었을 때, 친구의 최종 목표가 푸드트럭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푸드트럭은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푸드트럭 수익으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 든 생각은 ‘그게 정말 될 일인가’ 였다. 식당 음식을 왜 점포가 아닌 푸드트럭에서 팔려고 하는지가 의문이었고, 공간운영을 할 만큼의 돈이 푸드트럭에서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운영비가 모자라 늘 전전긍긍하던 청소년 문화공간 대표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났다. 대략의 기간도 쓰지 않는 이유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를 헤아려보기도 힘들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며, 닭강정 가게를 그만두고 독일에 조리법을 배우러 간다고 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로도 수개월이 흘렀다. 독일 식재료와 비슷한 맛을 내는 식재료를 한국에서 찾아야 한다고, 식재료를 정한 후에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 말, 푸드트럭 이야기를 들은 지 몇 년 만에 조촐한 시식회를 할 수 있었다. 솔직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소수의 사람을 초대했다. 모두의 첫 마디는 ‘오, 생각보다 맛있네!’ 였다. 하지만 이내 ’고기가 튀겨진 정도가 다 다르다’, ‘재료값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이걸 혼자 정말 다 할 수 있겠느냐’,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남이 따라 하기 쉬운 것 같다’ 등 혹평이 난무했다. 그가 브랜드 디자인을 공개하자 우리는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돼지고기를 파는 트럭인데 솜사탕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묵묵히 탄생한 친구의 작은 세계


수많은 말을 뒤로 하고 친구는 정진했다. 트럭을 계약했다고, 운전 연습을 한다고, 승인을 기다린다고 하더니 오늘 드디어 푸드트럭을 개시했다. 궁금해서 가봤다. 일단 옆에 있는 푸드트럭보다 좋아 보였다. 트럭 꾸미는 데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았다. 랩핑도 네온간판도 예쁘게 잘 나왔다. 처음이라 조금 벅차 보이기도 했지만, 한 컵을 다 먹은 아이가 또 사달라고 조를 만큼 맛있었다. 그 아이는 더 먹지 못했다. 주문이 밀렸다며 친구가 잠시 창구를 닫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립과학관 앞에서 1년 동안 장사한다.


북적북적


이런 사인도 준비했다.


몇 주 전,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집에 갔다. 그곳에서 고기가 맛있어 놀라고 친구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 한 번 더 놀랐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이템이었고,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친구의 행간을 완전히 이해했다. 머지않아 그의 아이디어가 가시화되면 다시 글을 쓰고 싶을 정도다.


작은 트럭 안에서 더 작은 튀김기 앞에 붙어 서있는 친구를 보며 이 순간을 위해 그가 지냈을 시간을 가늠해봤다. 부모님 돈 쓰면서 세상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 시대에 더디지만 혼자 힘으로 하나씩 일궈왔을 걸 생각하니 친구가 갑자기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분명 그 근간에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본인만의 지향점이 있었을 것이다. 


열일하는 사장님


앗 뜨거!


리스펙!


철없이 알록달록한 트럭은 친구가 인고의 시간 끝에 완성한 작은 ‘세계’였다. 학교 바자회에서 돗자리 펴고 친구들에게 딱지라도 몇 개 팔아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세상에 쉬운 장사는 없으며,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친구의 작은 세계는 쉽게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다져온 철학이 있으므로 그는 우주가 흔들려도 더 멋진 세계를 만들어 갈테다.


Lecker. 음식을 찍었어야했는데! 컵과 트럭 뿐이다. 그리고 내 손.


삶의 지향점은 중요하다. 몹시 중요하다. 몹시를 백 번 정도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처음 친구를 만났을 때, 혹은 지금까지 중 언제라도 이렇게 물어볼 걸 그랬다. 오늘 나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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