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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돌고래 Sep 23. 2022

겁이 많지만 호기심은 더 많아

일간 날돌이, 두 번째 이야기

내일은 바다반 친구 수지가 사는 2단지 놀이터에 놀러 가는 날이다. 제일 친한 친구 영호도 같이 가기로 했다. 날돌이는 심장이 뛰어 잠을 잘 수 없었다.


노래도 부르는 둥 마는 둥, 율동도 하는 둥 마는 둥, 간식도 먹는 둥 마는 둥. 운이 좋아 꾸지람은 면했지만 산만한 하루를 보내고 셋은 놀이터로 향했다. 드디어 대마왕을 만났다. 갈색 우레탄 위에 우뚝 선 정, 글, 짐.


2020년 당산동에 만들어진 이 놀이터는 개장 당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은 단연히 '친환경 정글짐'이었다. 키즈카페 마니아인 날돌이도 야외에 이렇게 큰 정글짐을 본 적은 없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무 정글짐이라니! 300년 된 참나무를 베어 만들었다고 했다.


늠름한 대마왕 앞에서 날돌이와 영호는 기가 죽었다. 반면 수지는 한 번 올라봤다고 여유를 부렸다.


"어때, 장난 아니지? 꼭대기에 올라가면 동네가 다 보인다니까. 너네 집도 다 보일걸?"


수지가 보란 듯이 앞서 올랐다. 영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날돌이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날돌아, 너 먼저 올라가. 나는 오늘 안되겠어. 다음에..."

"왜, 너 이것도 못 올라가면서 초등학교는 어떻게 가려고?"


영호는 알까? 찍찍이 운동화 속 날돌이의 발이 웅크러져 있다는걸. 아마 몰랐으니 혼자 뒷걸음질 쳤을 것이다. 동지를 잃은 날돌이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 뭐야, 되게 높네. 올라가면 진짜 우리집이 보이려나.'


"야, 이영호! 별것도 아니네. 잘 봐라!"


착! 날돌이가 집 앞 정글짐을 떠올리며 작은 손으로 대마왕을 잡았다. 수지는 이미 저만치 올라가 있었다.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주문을 외는 날돌이의 등 뒤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발을 헛디뎌도 그물망이 있어 괜찮은데, 행여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다. 안전벨트를 해도 롤러코스터는 긴장되는 법니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수지가 날돌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날돌아! 밑에 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계속 오른 끝에 날돌이와 수지가 정상에서 만났다.


"저기, 저기 너네 집이잖아! 보이지?"


날돌이는 어디가 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놀이터가 내려다보일 뿐이었다.


"어! 진짜네! 우리집 보인다!"


둘은 까르르대며 대마왕 정상에서 이어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얼굴이 한결 편안해진 영호가 수지와 날돌이를 맞았다.


"와, 너네 진짜 대단하다!"


날돌이는 기진맥진하여 지금 당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영호에게 괜히 씩씩하게 답했다.


"그러게 너도 오지! 진짜 동네가 다 보여. 너네 집도 보일걸?"



[일간 날돌이]

인스타그램 @dolphinintheair 에 매일 500자 내외의 글을 연재 중입니다. / 수요일 OFF

완성된 이야기를 브런치에 아카이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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