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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Aug 31. 2020

「테넷」을 봤다. 미쳤다.

기술의 승리

영화「TENET」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덩케르크」 이후 오랜만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을 극장에서 보게 됐다. 코로나 19 상황이어서 영화관 안에 사람은 매우 적었지만, 그 덕에 좀 더 집중해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사전 개봉으로 영화를 본 터라, 영화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관람 이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말로 비행기를 폭파했으며, CG를 300개 미만으로 사용했다는 걸 보고 훨씬 더 충격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대부분 장면에 CG가 들어갔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서도 미쳤지만, 놀란 감독의 영화답게, 내용도 꽤 충격적이다. 이 영화가 나에게 왜 충격적이었는지에 관하여 글을 쓰고자 한다.


 

  영화 얘기에 앞서 주연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하고자 한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블랙클랜스맨(BlacKkKlansman)」이었다. 작품에서 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자신의 임무에 진지한 캐릭터를 잘 살렸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덴젤 워싱턴이라는 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자신의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잘 살렸고, 그런 이유에서 「테넷」에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테넷」의 기술적인 측면을 얘기하려면, 먼저 영화 속 설정인 “인버젼”에 관하여 얘기해야 한다. 영화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나는 물체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물체의 입장에선 떨어진 것이다. 나의 시간은 1,2,3...으로 흐르지만, 인버젼된 물체는 3,2,1...로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맞기 전에 미래의 일로 발생하는 상처가 이미 생기기도 하고, 미래의 그 순간에 상처는 사라진다. 그래서 그냥 배우가 거꾸로 행동하는 거라면 CG 처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으나, 파도가 거꾸로 치는 것, 새가 뒤로 날아가는 것, 총알이 다시 총으로 들어가는 것 등의 장면을 생각하면 꽤나 CG가 많이 쓰였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300개 미만으로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그린 스크린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고전적인 편집 기술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근래에 나온 블록버스터 영화를 생각하면, 그린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는 영화가 없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답게, 그것을 버림으로써 현실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영화 제목, 그리고 등장인물 사토르를 통해서 우리는 영화에 관한 일종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제목과 사토르(사토르 마방진) 모두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가든 같다는 걸 말해주니까. 그리고 이와 더불어 영화 후반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사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다”를 합치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대사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들은 적이 있다. 어린 머피가 쿠퍼에게 왜 자신의 이름을 머피라고 지었냐는 말에 답하는 장면이다. 쿠퍼는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Murphy’s Law doesn’t mean that something bad will happen. What is means is whatever can happen will happen).”라고 말한다. 영화 속 장면마다 쿠퍼의 대사가 겹쳐 들린 이유는 두 영화 모두 다른 시간대의 자신(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작중 사토르가 인류를 모두 죽이려는 이유는, 미래의 세대에 지구 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작중 퍽 나쁜 인물처럼 묘사되지만, 그는 일종의 대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세대의 문제는 그 세대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얘기하기 이전에, 영화에서 언급하는 “할아버지의 역설”에 관하여 말해보자. 할아버지의 역설이란, 만일 내가 시간 여행이 가능하여 과거로 가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얘기는 호킹이 말한 것처럼 죽인다면 존재하지 않으니 역설이다. 그러니까, 그런 추측은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는 일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토르가 이 얘기를 꺼낼 때, 이미 미래에 일어날 일은 정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 있었으니까.




 「테넷」이 복잡한 영화라고 느껴지는 요인은 여럿이다. 그중 하나는 복잡한 시간 대다. 영화의 시작인 러시아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영화의 마지막인 스탈스카-12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을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간다. 동시에 장면과 장면이 가지는 호흡이 빨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정신없이 2시간 40분을 보내게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다음 드는 의문이 여럿 남는다. 먼저, 처음에 분명 주인공은 알고리즘 폭탄을 보고 "이렇게 캡슐로 된 무기는 처음 봐"라고 말했음에도, 자동차에서 왜 이것을 처음 본다고 말하는가? 또한, 첫 장면에서 러시아 인이 "미국인들 깨워"라고 말하는데, 주인공은 그때 총 장전을 하고, 해상 풍력기 안에서도 총 장전을 한다. 잠에서 깨우는 의미는 무엇인가?


 주인공이 캡슐을 보고 처음 본다고 말했다는 것은, 첫 장면의 주인공과, 이후의 주인공이 다른 시간대에서 온 주인공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의자에 앉아 고문을 받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왼쪽과 오른쪽의 기차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고, 주인공은 가운데에 위치해 고문을 받고 있다. 이윽고 동료가 건넨 약을 먹고 죽게 된다. 깨어난 주인공은 배에서 자신의 상관을 마주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얘기하기보다는 동료의 생사만을 묻는다. 임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요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아한 질문이다. 여기서 가능한 추측은 애초에 그의 임무가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추측을 좀 더 이어나가면 이런 생각들이 드는데, 1. 고문을 받는 주인공은 죽었고, 누워 있는 사람은 다른 시간대에서 구한 인물이다. 2. 주인공은 인간을 보호하는 임무를 받은 기계다. 1과 2를 합친 3. 첫 장면에 등장하는 기계가 망가져서, 다른 시간대의 기계를 들고 왔고, 그 기계에는 첫 장면에 등장하는 기계에 있던 마지막 기억을 심었다.  


 잠시, 영화 초반부에 잠에서 깬 주인공이 총을 장전하는 장면을 말하고자 한다. 주인공이 총을 장전하는 행위는 단순히 트리거를 암시하는 것일까? "미국인들 잠에서 깨워"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이유에 관하여 생각해보자. 임무를 하기 전인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잠을 깨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일 기계라면, 잠에서 깨운다는 말은 그들을 가동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총을 장전한다는 것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제스처로 해석된다.   

 주인공은 인버젼 상황에서 비정상적으로  적응한다. 손쉽게 자동차를 운전하는 , 얼어붙는 상황에서 동사가 아니라 저체온증에 걸린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리고 그는 캐서린() 적극적으로 보호하려고 한다. 사실 그녀를 보호해야  의무도 없고, 일종의 정을 느낄 상황 조차 없다. 하지만 그가 미래의 캣에게 고용된 기계라면, 그녀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임무이므로 가능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그는 이름이 없다. 그가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는지, 탄산수를 마시는 지도 아는  조차 그의 이름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것들이 성립하려면, 그가 기계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테넷」은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장면을 긴박감 넘치게 만드는 음악, 인버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연기함에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까지. 영화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하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뱉는 "터지지 않은 폭탄이 세상을 바꿀 진짜 폭탄이다"라는 대사다.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 속 폭탄은, 진짜 폭탄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사토르가 들은 미래의 인류에게 닥치는 끔찍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도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스스로 폭탄을 만들고 있다.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 매연 배출,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등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금 「인터스텔라」의 유명한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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