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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Oct 27. 2020

치킨이냐, 떡볶이냐

문제는 그것이 아닌데 말이죠.

 


성수대교에서 찍은 야경. 이런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는 게 한 순간뿐이라 참 아쉽다. 



출퇴근하다 보면 정말 별에 별사람을 다 만난다. 사람이 많이 내리는 역임에도 문 앞을 막는 사람, 뭐가 그리 급한지 사람을 다 밀치고 뛰어가는 사람, 그리고 오늘 본 어르신 같은 사람이 있다.      


 서교동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홍대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지금 치킨을 시키면, 배달 시간이 1시간 정도 걸리니까 집에 가면 딱 맞지 않을까? 아니야 치킨보다는 떡볶이인가?’와 같은 생각을 하며 1번 출구 안으로 들어갔고, 공항철도까지 쭉 걸어갔다. 공항철도 개찰구 앞에 도착해서도 결론이 나지 않아 배달 어플을 골똘히 보던 중, 어르신께서 덩치 큰 남성 뒤로 따라가는 장면을 봤다. 

 서울에 와서 이런 순간을 여러 겪을 때마다 이런 고민에 빠진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더라. “작은 것에 분개하지 말고 큰일에 분개하라”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한다. 작은 일은 개인의 일이고, 큰일은 사회와 공동체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어떤 영역에 속하는가? 먼저 어르신이 한 행위는 범법 행위인가? 무임승차는 범법 행위가 맞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인 자는 공공시설 비용을 할인받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의 경우 어르신 교통카드가 따로 있으니, 이 경우, 어르신의 나이가 아마도 만 65세는 아니라고 추리할 수 있다. 이 경우 나는 어르신을 지하철 경찰에 신고하여 범칙금을 내게 해야 할까? 혹은 이것은 작은 문제이니 넘어가고, 사회에 더 큰 문제를 향하여 목소리를 내야 할까? 어르신의 행위를 용인하면, 다른 이들도 무임승차를 해도 괜찮을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더라.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작은 범죄를 계속 저지른 사람은 나중에 큰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다. 어르신은 과연 몇 번의 무임승차를 했을까? 정말 급해서 이번만 어쩔 수 없이 한 거라면? 돈은 없는데, 지하철 역무원에게 돈이 없어서 그런데 지하철은 타도 되겠느냐는 말을 하기 부끄러워서, 혹은 거절당할 것을 알아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면? 이와 반대로 무임승차가 이미 몸에 밴 사람이라, 제 버릇 개 못 주는 사람이라면 신고해야 할까? 그렇게 신고하면, 이 어르신이 훗날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걸 막은 걸까? 


 결국, 나는 어르신을 신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녁 메뉴에 관한 고민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나와 같이 인천공항행 공항철도를 탔다. 어르신은 자연스레 노인공경 자리에 앉았고, 이내 옆에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눴다. “양 씨는 오늘 몇 번째 지하철 타는 거야?” “그런 거 셀 이유가 있나. 그냥 아침부터 저녁까지 타다 집에 가는 거지 뭐.” 이후 이어진 어르신들의 정치 얘기는,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귀에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어르신 보고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지하철에서 내리고, 휴대전화 소리를 올려 음악 소리로 귀를 채우면, 저런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조용히 하라는 말을 전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이 오면 좋지만, 흔히 말하는 꼰대 같은 말이 돌아온다면, 가뜩이나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더욱 피곤할 것이니까. 

 여전히 만담을 나누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내고 집 근처 지하철역에 내렸다. 지하철에 내리기까지 저녁 메뉴를 정하지 못한 나는, 셀러디에 방문하여 볼 샐러드를 포장해 집에 들어갔다. 가을과 겨울 사이라, 이제는 집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따뜻한 신발 안에 있던 발바닥이 방바닥에 닿으니, 시원한 느낌이 든다. 샤워하고 책상 앞에 앉아 샐러드를 우적우적 먹으며 뉴스를 봤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재산을 상속받는 이재용 부회장은 상속세로 10조를 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상속세는 당연히 납부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에 삼성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다며 일정 부분 면제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10조. 상상도 안 가는 금액이다. 10억 원만 있으면,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겠거니 싶다. 나는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다음 뉴스입니다”가 들릴 때, 설거지를 위해 물을 켰고, 물소리 때문에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좋은 일이 생겼거나, 누군가 법을 어겼거나, 누군가 국위선양을 했을 것이다. 접시를 닦으며 내일 저녁엔 치킨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떡볶이는 이틀 뒤에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다짐의 연속인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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