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드실래요? 두 번째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평균 1번 이상은 이것을 먹습니다.
제2의 고향처럼 이것은 제2의 쌀이라고도 하며 인스턴트식품의 대부라고 불립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생애 첫 요리는 이것으로 시작합니다.
증기로 익힌 뒤 기름에 튀겨 말린 면발과 분말수프를 별도로 첨부한 식품인 이것은 통째로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한 끼 식사가 됩니다.
북한에서는 특유의 꼬불꼬불한 형태 때문에 꼬부랑 국수라고 불렀다가 2000년도 들어서는 즉석 국수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팔린 면발을 줄줄이 이으면 지구에서 태양까지 여섯 번 이상 왕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눈치채셨나요? 정답은 라면입니다.
우리나라에서의 라면은 대부분 인스턴트 라면, 그중에서도 봉지 라면을 지칭합니다. 컵라면은 이름 그대로 컵라면이라 부르니까요. 저렴한 가격과 간편한 조리법으로 누구나 요리할 수 있는 라면, 그래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주식이자 간식으로 자리 잡아 소비하는 양은 엄청납니다.
가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라면은 제일 먼저 떠올리는 비상식량입니다. 자연재해나 전쟁 고조, 경제 위기 같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어나면 라면을 박스 단위로 사재기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라면 이야기가 나오면 하고 싶은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겁니다.
'수프가 먼저냐? 면이 먼저냐?'라는 논쟁이 있습니다. 수프를 먼저 넣고 끓이면 끓는점이 조금 더 높아 맛이 더 있다고 하는데 얼마큼 맛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까요? 결론은 유의미한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합니다.
'계란은 휘저어 풀까? 아니면 모양 그대로 익힐까?' 온전한 계란을 한 사람에게만 몰아주려고 하니 내키지 않습니다.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라면 휘휘 젓는 게 평화를 위해 현명한 선택입니다.
'면은 꼬들꼬들해야 맛이지, 아니야 면은 푹 익혀야지' 특히 가족끼리 선호도가 다르면 꽤나 피곤합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 끓여 먹는 게 마음 편합니다만 가족들의 따가운 눈치를 견뎌낼 수 있을까요?
이렇듯 몇 사람이 모여 라면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라면을 그렇게 끓여서 맛이 있냐 없냐'부터 시작해서 라면 하나로 전쟁을 벌일지도 모릅니다.
라면을 끓일 때 라면과 잘 어울리는 식품이 많습니다. 라면에 넣을 수 있는 재료도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라면에 꼭 있어야 할 반찬으로 우선 김치를 꼽습니다. 김치 없이 라면만 먹고 있으면 꽤 심심하고 밋밋합니다. 김치를 곁들여 먹는 건 당연, 조리 과정 중에 김치를 넣어 국물을 시원하게 내기도 합니다. 라면은 그냥 김치와 먹어도 잘 어울리지만, 끓일 때 김치를 넣어도 색다른 맛을 냅니다.
라면 하면 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면의 마무리는 밥 말아먹는 거라고도 하니까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쌀을 아끼기 위한 정책으로 라면을 처음 들여왔습니다. 본래 의도와 달리 라면 국물에 사람들이 밥 말아먹는 걸 너무 좋아한 나머지 쌀의 소비가 늘어나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라면에 밥, 이 조합을 딴 '라면밥'이 출시될 정도니 라면과 밥은 찰떡궁합입니다.
라면이 부글부글 끓을 때 계란을 넣는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라면 조리법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계란은 라면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기에 밥이나 김치와 마찬가지로 라면의 부재료 중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느 음식점이든 라면을 주문하면 계란은 반드시 들어 있는 걸 보면 라면과 계란도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라면을 받았는데 계란이 없으면 엄청 아쉽습니다.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 계란이나 파를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라고요.
라면에 들어있는 건더기 수프에는 당근, 버섯 같은 야채와 고기가 손톱보다 적게 들어가 있습니다. 애초에 부실해서 간에 기별도 안 갑니다. 그래서 직접 파를 썰어 넣어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하고, 때에 따라선 콩나물로 해장라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우, 낙지 같은 해산물을 넣은 해물라면을 별미로 즐기기도 합니다.
취향이 다 다르지만 젊은 층에서는 라면에 치즈를 넣습니다. 끓일 때 넣으면 다 풀어지거나 너무 녹아버리기에 치즈는 라면이 거의 다 끓일 때쯤 혹은 다 끓이고 나서 올립니다. 이렇게 해도 열에 의해 충분히 먹을 만하게 녹습니다. 치즈는 볶음류 라면에 잘 어울리고 매운맛을 중화시켜 매운 라면에는 환상의 케미를 자랑합니다.
이 말고도 가래떡, 만두, 햄, 고기, 우유까지 넣어먹는 라면도 있습니다. 하긴 라면에 뭔들 못 넣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무슨 라면일까요?'라는 퀴즈가 있습니다.
남이 끓여주는 라면, 여러 개 끓여 다 같이 먹는 라면, 산에서 끓인 설익은 라면, 남몰래 먹는 라면, 밤에 먹는 라면, 군대에서 먹던 뽀글이까지 여러 맛이 있습니다.
다 맛있는 라면이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맛은 '한 젓가락 뺏어 먹는 남의 라면'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남은 라면 한 젓가락을 놓고 부모, 형제지간에도 피 터지는 전쟁을 경험해 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딱 한 입만 먹겠다던 녀석이 한 젓가락으로 한번에 반 이상을 먹어 치워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남의 라면을 한 젓가락 뺏어 먹는 그 맛, 생각만 해도 스릴이 넘치고 웃음이 납니다.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전 세계 1위인 우리나라, "라면이 없었더라면 100만 자취생은 다 굶어 죽었을 거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라면은 우리 입맛과 생존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라면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면 하나에도 울고 웃던 수많은 삶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옥신각신하며 라면을 끓이던 사이는 후후 불어가며 같이 먹고 밥 한 숟가락 더 말아주는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바뀝니다. 라면 한 젓가락으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애정이 돈독해집니다.
라면 끓이는 데는 다들 자기들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겠지만 라면의 그 독특한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라면 봉지에 적힌 레시피대로 한치의 에드립 없이 끓이는 거라고 합니다. 라면에 무슨 재료를 넣고 어떻게 요리해서 특별한 맛을 내더라도 기본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삶도 기본이 중요합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특별함을 더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라면, 어떻게 끓이든 특유의 맛을 잃지 않는 라면, 티격태격 다투다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포만감을 부르는 라면. 게다가 미운 정 고운 정까지 주는 라면. 삶도 라면을 닮았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각자의 레시피로 라면 한번 드실래요? 기본에 충실한 특별한 맛,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정을 나누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