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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08. 2021

1년 전 오늘, 지난 오늘

 궁금한 지식은 쉽게 검색을 해서 찾을 수 있고, 듣고 싶은 음악은 원 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웬만한 문서 작업도 컴퓨터 없이 처리 가능합니다. 드라마와 영화도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길도 막힘없이 안내해 주고요, 물론 온갖 재미있는 게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필요 없이 클릭 몇 번으로 집 앞까지 물건을 갖다 놓게 하고요, 경조사에 돈 보낼 일이 있으면 은행에 가서 줄 서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앉아 은행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집안의 온도와 조명도 조절 가능하고 내 건강까지 체크해 줍니다. 신분증이나 다름없고, 들고 다니기도 편합니다. 


 이런 재미와 편리함이 있어 손에서 뗄 수 없는 핸드폰 이야기입니다. 현대인의 필수품을 넘어 분신이 된 핸드폰, 잠시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핸드폰이 없으면 허전하고 심심해서 뭘 해야 할지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이런 핸드폰의 또 다른 기능 중 하나, 시간이 빨리 흘렀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 로그인을 합니다. 대개는 저장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자동으로 로그인이 됩니다. 그러다 90일이 되면 이런 알림이 뜹니다.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메시지입니다.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새 90일, 석 달이 금방 흘렀다는 사실에 느닷없이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또 90일이 흐르는 동안 나는 뭐 했지?"라고 하면서요. 


 핸드폰 덕분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사라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버튼 하나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요, 보정 기능도 엄청 좋아서 근사하게 꾸며줍니다. 찍고 나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저장까지 해주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니 세상 참 편리해졌습니다.

 게다가 작년 이맘때, 혹은 몇 년 전 이 무렵에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려 줍니다.

 '1년 전 오늘, 지난 오늘'이라고 하면서요. 


 그날 비가 왔는지, 해가 쨍쨍했는지 날씨는 물론이고 내가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그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사진 한 장만 봐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몇 년 전이든 간에 오늘만 되면 띄워주는 '지난 오늘'. 별거 아닌 과거 일이지만 오늘이란 단어가 붙으면 괜히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오늘 휴대폰이 보여준 '1년 전 오늘', 사진을 보다 보면 엊그제 일처럼 반갑게 느껴집니다.

 무뚝뚝한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 여러 친구들과 착 달라붙어 손가락 V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나가다 너무나 아름다워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눌렀던 풍경, 먹기 전에 이건 꼭 찍어야 한다며 아내가 내 폰으로 찍었던 먹음직스러운 음식, 회의 때 쓰기 위해 열심히 캡처했던 자료들까지.

 휴대폰에 저장된 그날의 사진은 어느 것 하나 억지로 찍은 건 없습니다. 내가 좋아서, 어딘가에 필요해서, 누군가에게 보여 주려고 남긴 사진이 대부분이니까요. 


 비밀번호 바꾸라는 메시지에 '그동안 뭘 했을까?' 잠시 빠졌던 고민을 훌훌 털어버립니다.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은 것도 아니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허송세월만 보낸 건 더더욱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무언가 특별히 해낸 일도 없다면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말이죠.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습니다. 알고 보면 나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나날들입니다. 


 몇 년 전 오늘은 캄캄한 밤을 헤매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또 몇 년 전 오늘은 슬픔에 눈물로 보낸 날이었고요, 좌절에 하루하루 한숨으로 지새웠던 날도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숱한 방황과 아픔도 몇 년이 지난 오늘 다시 떠올려 보니 어쩌면 삶에서 힘들었던 것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걸, 한 단계 성숙하는 시간이었음을, 그래서 지난 오늘 그날에 이렇게 웃으며 V자를 흔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하루하루가 진정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문득 떠오르는 메시지 하나에 지나간 시간이 또 한 번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뭘 하고 보냈는지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1년 전 오늘 사진첩에서 웃고 있는 표정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오늘도 사진 좀 찍으셨나요? 어떤 사진들을 찍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1년 후에는 어떤 기록들이 남아서 오늘을 기억하게 될까요? 오늘은 먼 훗날 또 어떤 장면으로 남게 될까요? 


 어떤 사진을, 어떤 기록을 오늘 남기게 될지 궁금합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은 내용이면 좋겠습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들로 채우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이 순간의 기록이 내 인생의 발자취이니까요.

 1년 전 오늘 그리고 지난 오늘. '그동안 나는 대체 뭐 했지?'라며 기죽지 말고, 뭐라도 칭찬해 주는 후한 마음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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