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여행 02
용궐산의 위엄과 요강바위의 전설을 듣고 강천산으로 향했다. 강천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다. 1977년부터 5년 동안 순창농고 학생들이 처음으로 식재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가을색 터널을 이룬다. 순창의 따뜻한 기후로 인해 다른 지역의 나무와 확연히 차이 날 만큼 커다랗다. 3.6km에 이르는 이 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순창은 어느 고장보다 곡선의 도로가 많다. 함께 같은 크기로 자라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메타세쿼이아길은 지나가기만 하는데도 무딘 가슴에 가을을 물들인다. 길은 곡선과 직선을 번갈라 가며 서 있다. 나는 나무들이 서 있는 길데로 강천산으로 흘러간다.
길이 끝나면 화려한 산빛을 품은 강천산이 기다리고 있다. 558m 산의 높이를 버거워할 필요는 없다. 매표소에서 구장군 폭포까지 나지막한 경사길만 걸어도 온전한 가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 산책길"이라 이름이 붙은 5.5km의 산책길은 계곡물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낼 만큼 완만하다.
즐거운 소란이 맴도는 식당가를 지나 산에 들었다. 산에 든 지 몇 걸음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병풍폭포다. 이렇게 빨리 폭포를 맞이할 줄은 몰랐다.
15m 폭의 물줄기는 40m 높이에서 떨어진다. 뒤를 받치고 있는 바위가 병풍바위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바위가 자기에게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죄를 빌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나도 집에 돌아와 어제와 비교해 보니 착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내어주기만 하는 폭포를 보고, 곧은 소리로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마음을 씻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계곡은 시냇물처럼 평평하게 흐른다. 물속에 잠긴 나뭇잎들은 별처럼 무리 지어 은하수를 만들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마저도 물소리와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와 어울리고 만다.
몇 년간 단풍빛이 곱지 않았을뿐더러 올해도 단풍빛이 예전만 못한데, 강천산의 단풍은 그런 유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위가 붉어 이미 물빛은 붉었던 것인지, 가을이 되어서 잠시 붉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그것에 더해 길을 뒤덮은 천정이 된 붉은 숲길은 완벽한 가을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강천산은 두 곳의 용소가 있다. 윗용소는 신선이 내려와서 목욕하는 곳 선담이라고 부르고 아랫용소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던 곳이라고 해서 옥녀담이라고 부른다. 물이 맑아 깊이가 낮아 보이지만 바위틈으로 파고드는 웅덩이의 깊이가 명주실 한 타래의 길이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 한없이 깊은 모양이다.
강천사 오는 길 메타세쿼이아길이 도로에 있어 머물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그 아쉬움을 달래주듯 산길에도 메타세쿼이아 길이 존재했다. 도로가에 있던 나무보다 높은 기는 아니지만 가을 숲길의 품격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나무도 자라야 하니 숲에서는 홀로 울창하지 않아야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강천산의 계곡 이름을 물통골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수량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 폭포 천우폭포를 만났다. 오늘은 폭포수가 내리지 않고 있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폭포가 형성된다고 한다. 물살에 못 이긴 바위가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 햇살에 몸을 말리는 듯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강천사가 있는데 이길에 걸인(Homeless)이 머물렀던 모양이다. 거대한 바위 두 개가 겹쳐 동굴처럼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 바위를 거라시바위라고 부른다. 그 걸인들이 이곳에서 주둔하다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받아 강천사 스님께 시주를 하며 부처님께 복을 빌었다고 한다. 다른 불교 국가에서는 승려들이 탁발하여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데, 말하자면 그 반대의 문화가 있었던 곳이다. 틈 안에 의자가 놓여 있다. 잠시 걸인 체험을 하고 간다. 무엇을 주거나 놓고가는 사람은 없었다.
강천산에 이름을 가져다 준 강천사에 들었다. 건물의 외형상 최근에서야 조성된 사찰로 보이지만 그 기원은 오래되었다. 통일신라 말인 887년 도선대사가 창건했다 전한다. 이 절은 한때 열두 개의 암자와 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도선대사가 창건하거나 절의 터를 정한 곳은 풍수지리상 주변 최상의 장소로 여겨도 된다. 그가 우리 역사상 최고의 풍수지리 대가였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 왕융을 찾아가 집터를 잡아주고 2년 안에 귀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예언했고, 건(建)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라고 조언 고승이다. 또한 그는 왕건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찰을 나와 계곡 쪽으로 다가갔다. 커다란 열매가 계곡가에 떨어져 있다. 은은한 사과 향이 피어오르는 모과다. 주워가고 싶었지만 본래 내 것이 아닌 것을. 주워 들었지만 다시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버려질 것을 알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향이 조금이라도 숲으로 풍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열매 위로 옆에 범상치 않은 모습의 나무가 있다. 300년 넘은 강천사 모과나무다. 어렸을 적 살던 집 뒷마당에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었는데 그때의 굵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높이가 20m이고 둘레는3m가 넘는다. 또한 커다란 몸통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의 모습은 용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하다.
구름다리 위를 건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올라갈까 생각했지만 해가 저물기 전 그보다 더 높고 험한 길을 올라야 해서 구름다리 오르지 않기로 했다. 구름다리를 올려다 보았더니 건너는 사람들도 근사한 가을의 풍경이다.
지절골 입구에 있는 수좌암이라고 불리는 절벽의 암자를 향했다. 이 암자는 동굴 자체이기 때문에 수좌굴이라고도 부른다. 오르는 길은 인공 데크로 되어 있지만 만만치 않은 높이다. 또한 수직 절벽에 난 길이어서 계단 옆은 보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계단이 없었던 시절에는 이 길을 어떻게 올랐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설담과 뇌암이라는 고승이 이곳에서 도를 닦아 도통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 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더이상 찾을 수 없다.
수좌암 내부는 다섯 명 정도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수도승의 목각인형이 있고 그 위로 수도승을 바라보는 신선의 보습을 한 바위가 솟아있다. 동굴 속 바위의 틈은 산이 숨 쉬는 틈 같이 산의 내부 공간으로 이어진다. 더욱 기묘한 것은 동굴 우측 부분에 벽화처럼 그려진 뿌리다. 어떤 나무의 것인지 모르는 뿌리가 마치 나무처럼 바위를 타고 오른다. 소원 하나쯤이야 들어준다는 신비로운 동굴 암자다.
수좌암 그 효험이 깃들기를 바라며 이번 여정의 마지막 구장군 폭포로 향했다.
거대한 물줄기가 흐른다. 마치 양 눈에서 흐르는 눈물같다. 이곳에 구장군 폭포의 이름을 가져다 준 설화가 있다. 삼한시대 마한의 아홉 명의 장수는 전쟁에서 패한다. 그들은 이곳까지 쫓겨와 자결을 결심한다. 그 순간 그들은 이곳에서 죽을 바에 적과 싸우다 죽자는 결의를 다지면 이곳에서 적을 베고 승리를 거둔다. 아마도 그들의 결심을 서게 한 것은 하늘의 비가 모여 120m의 높이로 곧은 폭포의 모습과 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보기 힘든 폭포를 한꺼번에 두 개나 만났다. 한밤에 저 폭포 위로 달이라도 뜬다면, 하얀 물줄기가 달빛에 언뜻 비치고 그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순간만은 강천산의 신선이 되어 있지 않을까.
강천산에 가을이 들던 날, 앞날을 기대하던 하루가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