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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Mar 28. 2024

가은역

경북 문경

탄광 아래 봄비를 적신 가은역은 고요했다. 끊어진 철로를 등뒤로 숨기고 아무일 없는 듯 사람들을 반긴다. 그리운 사람들은 세모가 되었고 기억 속 풍경은 네모가 되어 쌓아진 역사(驛舍)는 여전히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불러댄다. 

나도 그 앞에 불리어 섰다.


가은에서 진남까지 광부와 광물을 실어 날랐던 작은 간이역에 봄을 부르는 보슬비가 내린다. 가을이면 빨간 물 들이는 단풍나무는 철로 곁에 서서 벌써부터 가을을 기다리고, 벚나무일지 모를 길건너 줄지어 선 나무는 봄꽃을 틔울 빗물을 머금었다.


역 앞에, 역이라 불리어도 좋을 청파다방 찻잔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면 광부들의 굳은 얼굴에도 화들짝 웃음꽃이 피었을 것이다.

딱 한 대 있는 검정 전화기 다이얼을 대여섯 번 돌리면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재껴내고 다가오는 이쁜 아내의 목소리

배랑박에 붙은 낡은 종이에 써진 막차 시간표를 쳐다보고 또 쳐다봤을 것이다.


검은 연기 내뿜는 기차가 뿜뿜 역사에 도착하면

바지춤에 미쳐 넣지 못한 남방자락을 흩날리며 신이 난 채로 가은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검은 광부들의 뒷모습 

황금빛 가로등 불빛이 등 뒤로 얹혔을 것이다.


가은역에 불이 꺼지면 청파다방 천정에 매달려 흔들렸던 불빛이 멀겋게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스스륵 잘도 여닫히던 미닫이문이 삐걱삐걱 신음을 내며 막차로 철길을 달렸을 것이다.


https://youtu.be/mOcqap9mK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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