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앞 자취방이 다섯 개쯤 딸린 집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80년대 대학생들에게 술은 미덕이라 할 정도로 방마다 매일 밤 술자리가 이어졌다. 때로는 마당에 모여 모든 자취생이 술을 같이 먹던 날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술은 나에게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봄 누나의 결혼식 전날 밤이었다. 술이 약한 다섯 살 위인 동네 형과 맥주 마시기를 시합했는데 맥주컵으로 여섯 잔을 마신 내가 이겼다. 처음으로 술을 마신 사건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술에 끼가 있었던 것 같다. 28세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서너 병 소주 주량이 1병으로 급격히 줄었지만, 맥주는 피곤해서 그만둔 적은 있어도 취해서 그만 마신 적은 없었다.
술은 나에게 많은 위안을 해주었다. 만남에 서는 관계의 윤활유가 되었고, 캔맥주는 스포츠 중계를 볼 때면 언제나 내 옆에 앉아 같은 팀을 응원해 주는 친구였다.
그렇게 술을 즐긴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날씬했던 몸매는 결혼 전보다 20kg이 늘었고 금연한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얼굴의 빛깔은 거무튀튀했다. 동사무소나 병원에 들를 때마다 측정한 혈압은 지속적으로 솟구쳤다.
한 달을 목표로 금주를 결심했다. 술을 먹지 않은 날로부터 3일 차가 되는 날부터 두통, 불안, 초조, 불면의 차례로 금단증상이 시작되었다. 금단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중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코올중독이다.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신체에 대한 여러 가지 지표가 악화된 상황을 보면 단주가 아니더라도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금주를 결심해야 했다. 다행히 금단증상은 10일 이내에 대부분 사라졌다.
금주를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난 오늘이지만 지금까지 열 차례로 넘는 술자리가 있었다. 술자리마다 다른 사람이 술을 끊는다면 믿겠는데 당신은 못 믿겠다는 사람부터 술로 무슨 큰 사고를 친 거 아니냐는 사람까지 나의 금주에 대해 많은 의문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연하게 잘 대처한 것 같다. 한 번은 회식이 있었는데 내가 금주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알코올 맥주를 사 들고 온 배려심 많은 사람도 있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마웠지만 무알코올 맥주 또한 1% 이하의 도수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또한 마실 수가 없었다.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 사람으로부터 되돌아온 답이었다.
줄어드는 뱃살과 점점 창백해지는 얼굴빛, 그리고 친절해졌다는 초딩 둘째 아들의 칭찬이 나의 금주를 이어가게 한다. 나의 금주가 아쉽다거나 금주가 끝나면 한잔 사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끝낼 생각이 아직은 없다. 축구 중계를 볼 때 같이 응원했던 깡통 친구는 사라졌다. 동네 친구도 가끔 집 앞 술에서 술잔을 기울였지만, 장소를 이제는 그와 만나는 장소는 카페나 공원으로 바뀌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학창 시절에도 그 얼마나 즐거웠던가? 술을 마시고 싶을 때마다 문 닫힌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친구와 어설프게 인생과 연애담을 논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깜깜한 밤을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