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것도 유혹이지만, 담배를 끊는 일은 더 달콤한 유혹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흡연자 대부분은 사실 끊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유혹, 아니 결심 앞에서 번번이 무너질 뿐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멋이라는 그 얄팍한 환상 때문이었다. '봄꽃이 필 때까지만 피우자'라는 가벼운 다짐으로 시작한 흡연은, 몸을 담배에 길들이는 의식처럼 이어졌다. 핑 도는 머리, 헛구역질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피우는 양은 점점 늘어갔다. 며칠 되지 않아 니코틴은 내 몸을 사로잡았고, 나는 강의실 밖에서 담배를 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낯선 학우들과 담배 연기 사이로 주고받는 말들이, 어느새 캠퍼스의 낭만처럼 느껴졌다.
봄꽃은 피었고, 나는 중독되었다. 담배 냄새는 내 일상이 되었고, 스스로 그 냄새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내 몸에 배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담배와 함께 20년을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기댈 때, 출근 전후, 식사 전후, 회의 전후, 영화 보기 전후, 누군가를 만나기 전후. 담배는 늘 그 순간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돈이 부족할 때도 밥 대신 담배를 샀고, 어떤 친구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밥을 먹는다고 했다.
스무 번도 넘게 금연을 시도했다. 하루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버틴 적도 있다. 담배와의 이별은 때론 사람과의 이별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마지막 금연을 결심했을 땐, 구청 보건소에서 받아온 생체 회복 시간표를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니코틴과 각종 독소가 몸을 빠져나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며 견뎌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잇몸 통증과 가려움이었다. 금단증상과 명현반응은 무려 8개월이나 이어졌다.
나는 15년을 다닌 회사를 떠났고, 무모하게 시작한 사업도 한차례 휘청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금연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낼 힘도, 건강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엔 하루 두 갑, 술자리에선 세 갑을 피웠던 '헤비스모커'였던 내가 그 힘들었던 기간 동안 병 하나쯤 얻었을 것이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을 꼽는다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과 금연이라 말한다.
담배, 끊을 때 더욱 위안을 가져다주는 평생 헤어질 대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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