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공동묘지
녹천역에서 월계역까지 이어진 114m 높이의 초안산을 찾았다.
초나라 초(楚) 또는 회초리 초라 불리는 한자어. 이 글자는 '마음이 아프다'는 뜻도 있고 '곱고 산뜻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공동묘지인 분묘군이 있다. 엄격한 신분제의 조선, 죽어서도 신분에 맞게 묘지를 썼던 시대다. 같은 곳에 묘지를 쓰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초안산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이 분묘군을 찾기 위해서다.
1호선 녹역 1번 출구를 나와 산을 끼고 돌아 150m를 걸어 초안산근린공원에 다다랐다. 입구부터 녹음이 짙은 녹음의 터널이다. 비 오는 여름, 나무들은 물을 머금어 온통 검은빛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서울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산책로이다. 70m 높이를 600m를 걸어 가니 이 길의 경사도는 평균 기울기 11.7%, 평균경사도 6.7도이다. 해발 114m 높이지만 트랭클 앱 고도로 보아 실질적으로 오르는 높이는 70m이다.
길에서 만난 이곳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가 내리쬐는 한여름 한낮에도 이 산길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200m쯤 걸으니 나무에 푸른 이끼가 싱싱하게도 피어 있다.
오솔길이 나오고 잠시 계단을 오르는 길도 있다. 낮은 산이지만 길은 여러 갈래길로 나뉜다. 각 길은 저마다 특색이 있다. 바위가 있는 길도 있고 오로지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다. 정상에 가는 동안 셋 중 한 사람은 맨발로 산행하고 있었다.
계곡을 만났다. 아마도 이 산에서 가장 큰 물줄기가 내려오는 계곡으로 보인다.
시원해도 여름은 여름이다. 흐르는 물로 얼굴을 씻었다. 손수건에 물을 적시고 머리를 닦았다. 물만 가두면 물놀이장을 해도 될 만한 수량이다. 이 낮은 산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나온다는 것은 산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산을 모두 둘러보려면 세 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참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서울의 군사적 요충지인 것 같다. 외곽을 따라 참호가 길게 늘어서 있다.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유익한 산이다.
초안산에는 곳곳에 명상할 수 있도록 데크를 조성해 놓았다. 쉬어갈 수 있도록 평상 모종도 여러 곳이다. 맑은 날에 찾아와 나무 아래서 명상을 시도해 보아야겠다.
여러 형태, 여러 갈래 길을 지나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은 다른 산과 다르게 평지이다. 정상부를 가리키는 표지석이 없어 정상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이제부터 분묘군을 찾을 차례다. 조선의 공동묘지, 1,600년대부터 흔적이 있다고 한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빗줄기는 그치지 않고 이것은 홀로 '전설의 고향' 체험이다. 지도 앱을 켜고 분묘군을 향해 오솔길로 내려갔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또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 표시가 잘못 되었다. 지도를 만든 작자가 대충 점을 찍었나 보다. 다시 주 산행로에 올랐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분묘군을 물어보았다. 이곳에 20년도 넘게 오래 거주한 주민이라는데 모르신다.
"비석이 많이 모여있는 비석공원이라는 곳이 저 아래 있는데 그것을 찾고 있는 거 아니여?"
비석공원은 분묘군에서 출토된 석상을 산 아래 공원으로 모아 놓은 곳이다. 그런데 그 명칭이 비석공원이라니, 실제 비석골공원에 가면 모두 석상이지 비문을 적은 비석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노원구에서 그 명칭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심 있는 사람이나 알지, 우리는 매일 보는 것이라 특별하지도 않아!"
수국공원이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조그마한 석물을 발견했다. 묘지가 있어야 할 자리는 평탄했다. 재단도 있는데 분봉은 오랜 시간에 쓸려 내려간 것이다. 곧 잣나무 숲을 만났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덤의 흔적들이 나타났다. 마치 홍수에 씻겨 내려간 듯한 모습이다. 석상을 비롯한 석물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대부 묘에 딸린 것 같은 2m쯤 되어 보이는 석상도 만났다.
이곳이구나! 무서움은 사라지고 놀라움이 감쌌다. 이곳이 조선의 공동묘지였어. 1,000기가 넘는 봉분이 발견되었다는데 대부분은 철조망 안에 보존되어 있다. 보존보다는 방치인 것 같다. 수풀 속에서 봉분이 가까스로 보인다. 사대부부터 상궁, 궁녀, 환관, 서민 등 죽어서는 평등한 세상에 모여 있는 듯하다.
수많은 석상이 골동품상으로 옮겨졌을 것이고 그리고 또 방치되어 있다.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의문의 든다.
잣나무 숲의 서늘함이 짙어진다. 날이 어두워 진다. 내려가야 한다. 뒷머리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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