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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의 Expat Nov 18. 2021

부의 독점. 대농장의 탄생

실론 초기 커피 농장주들은 1840년대 토지구입 러시 때 농장을 구입한 개인 토지 소유자들이었다.

농장 전문가가 아닌 주로 영국 공무원, 군인 장교, 교회 목사들이었다.

몇몇은 직접 농장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지만, 농장의 모든 것을 관리하기는 어려웠다.

커피 병충해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대부분의 농장주들은 시세의 4분의 1이나 더 낮은 가격으로 농장을 팔았다.

커피산업 붕괴로 농장 합병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곧 차 벤처 산업이 커피를 대체하며 성공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변화에는 개선이 필요했다.

찻잎의 특성상 자연 상태로는 장시간의 이동이 불가능했다.

찻잎을 가공하여 운송해야 했고 이 과정은 돈이 많이 들었다.

차 산업의 희망을 갖고 남아 있던 개인 농장주들도

공장을 짓고 기계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재정 문제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차농장 가격은 다시 하락한다.

많은 농장주들이 파산하거나, 한때 자신의 소유였던 농장 관리자로 전락한다.


기회가 보여도 자본이 없으면 손 털고 나와야 하는 비정한 한 판,

마치 주식시장이나 도박판을 보는 듯한..




실론티 대농장의 탄생


결국 실론의 차밭에도 소수 농장주가 소유한 대농장, 농장 그룹이 탄생한다.

1861년, 실론에는 이미 주식회사의 형성이 의무화되었다.

세기가 바뀌자 대부분의 농장들은 주식회사 소유가 되어 있었다.

주식회사는 영국에 등록된 파운드 회사와 콜롬보에 등록된 루피 회사로 나뉘었다.

물론 양쪽 회사 대부분의 주식 소유자는 영국인들이었다.


이들은 거의 실론을 방문하지 않았다.

주식으로 배당금이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한,

농장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별로 상관하지도 않았다.

자리를 비운 농장주를 대신하여,

경작, 생산, 판매 등 농장 관리를 목적으로  

에이젼시 하우스(Agency houses), 관리 회사(Management companies)가 설립되었다.

경제 규모가 큰 이런 기관들은 차 산업에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된다.


한때, 그들의 베란다에서 차를 연구하던 농장주들은 고용인을 줄여야 했다.

이들은 에이젼시 소속의 농장 전문가 ‘에이젼시 방문자’ 제도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었다.

농장 전문가들은 에이전시에 소속된 농장을 방문하여 임금대장을 확인하고,

관리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했다.

그리고 시즌이 반복될수록 이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다.


차의 아버지 제임스 타일러도 차농장 관리직에서 밀려난다.


대농장이 탄생하는 과정은, 1997년 외환위기로 IMF를 맞았던 한국,

그리고 한국경제의 특징이라는 고유명사 '재벌'을 연상시킨다.

크고 작은 변곡점에서 어떤 이는 재산을 잃고, 어떤 이는 재산을 축적한다.

물론 부는 항상 땀방울의 크기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제임스 타일러의 쓸쓸한 죽음처럼!


더 큰 부, 더 강력한 힘이 더 큰 시스템을 움직이는 부의 독점. 

역사는 정말 지루하게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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