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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규 Jan 25. 2022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알바 후기



1월 초, 집 근처 동탄 쿠팡 물류센터에 단기 알바를 다녀왔다.


하루 종일 컨베이어 옆에 서서 하역 작업을 했다. 


컨베이어에는 수많은 박스(사과박스 사이즈)가 흘러 다닌다. 이 박스에는 각종 생활용품이 담겨 있다. 이걸 내려서 3단으로 쌓는다.


그리고 제품 포장하는 사람들에게 넘겨 주는 작업을 무한 반복한다.


출처 : 쿠팡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실수도 여러번, 젊은 직원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직원분은 업무 지시고, 나는 잔소리로 들었으니 이는 내 자존심 때문이다.)


앞서 중년에 퇴직하신 선배들이 재입사 후에 겪는 첫 경험도 이와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중년이면 그 이전에는(전 직장) 다들 한자리씩 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오랫동안 누구한테 지시만 했지 지시를 받은 적이 까마득한 연배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자의든 타의든 중년에 퇴직하면 새로운 일자리는 다수가 단순 노무다. 제일 먼저 겪게 되는 것이 호칭 변경이다. 이때 '자존심'이 상처받는다. 호칭이 달라지니 개인의 정체성도 하루아침에 하급인 듯 마음이 매몰된다.


사원님, 이거 저기 박스에 붙이세요!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기분이 싸해졌다.


한때는 대학에서 비록 시간강사였지만 학생들 한테서 교수님 소리도 듣지 않았던가. 또한 최근에는 어떠한가.


함께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동문수학한 이들을 만나면 나를 '손박사' 라 부른다. 늘 이렇듯 우쭐하니 예우 받는 느낌으로 살았었다.


순간 '아, 이런 마음이 선배 퇴직자들이 겪는 아픔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 힘듦은 시간이 흘러 회복한다. 하지만 마음의 힘듦은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아니 여기에 복리까지 붙는다.


그래서인가. 한국 중년남자의 사망률 1위가 암이고 2위가 자살이다.  이는 자존심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회복이 싶지 않음을 뜻한다. 그래서 퇴직하면 계급장과 명찰도 두고 와야 한다.  



다음 날, 온 몸에 근육통이 올라왔다. 힘들어서 종일 방바닥 X-RAY 찍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의  저질(?) 체력을 보며 앞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겠냐고 농담을 한다. '아이고~ 만사가 귀찮다.'


참으로 극강의 노동이었다. 일당으로 받은 돈은 81,836원이다. 지금까지 번 돈 중에서 가장 가심비가 높았던 임금이다.

 

깊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쿠팡 물류센터에 모인 수 많은 노동자들을 보며 이 분들께 다시금 감사와 겸손을 배웠다. 참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토록 뜨겁게 사는 가를 곱씹어 보았다.


공자 왈, '말로 가르치지 말고 몸으로 가르쳐라' 했다. 이는 나와 같이 남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새겨야 할 말씀이다. 강사의 덕목은 입과 지식이 아니라 수범(垂範)이 아닐까.


말로 가르치지 말고 몸으로 가르쳐라.
- 공자


그런 생각에 나를 돌아보고 가르치는 입이 부끄러웠다. 혹여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이들 앞에서 나는 뭘 해봤다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냐 말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강단에 서서 알량한 지식을 설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답을 찾고 헤아려야 하겠다.



며칠 후 또 다녀왔다. 그날은 '사원님~' 소리가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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