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페낭 한달 살기 9
오늘은 어학원에 가보기로 했다. 초등 5학년, 2학년인 아이들에게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한번쯤 어학원을 다니게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하지도 않았고, 이미 1주일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가 애들을 학원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은 2주 뿐이다. 학원에서 받아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더포레스트 어학원. 몽키아라에도 있고 한국에 근간을 둔 어학원이다. 젊은 원장님이 친절하게 응대해주신다. 우선 우리가 2주 정도만 다닐 수 있는지 문의하였고, 이 젊고 잘생긴 원장님은 차근히 우리가 얼마든지 다닐 수 있음을 설명해주셨다.
케이시는 바로 레벨테스트를 하였고, 준이는 파닉스 단계여서 레벨테스트 없이 받아주시기로 하였다. 하루 4시간 수업.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3시간, 1시간 밥 먹고 1시30분부터 2시30분까지 숙제와 단어 외우기 수업이다. 중간에 1시간 밥만 해결해주면 2시30분까지 학원에 있기로 했다. 한국어를 못하시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대부분 외국 아이들이라서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게다가 준이는 개설된 반이 없어서 준이만을 위한 반을 따로 만들어 주기로 하셨다. 원장님께서 많이 배려해주셨다. 아무래도 준이가 잘생겨서 더 배려해주신 것 같다.
시간 당 페이로만 치면 한국 학원보다 더 저렴하다. 한국 학원이 시간 당 18000원 정도인데, 여기는 12000원 정도다. 일주일 5일 기준으로 1인 당 840링깃. 25만원 정도다. 둘이 2주하면 100만원. 꽤 큰 금액이지만 하루 종일 영어학원에 있을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금액이다. 아이들 할머니가 주신 여행 경비 100만원이 딱 여기에 들어간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결과적으로 여기 어학원 2주 코스를 마치고 아이들의 영어공부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케이시는 한국에 와서 영어학원을 옮겼다. 준이가 영어 재밌다고한건 정말 처음이었다. 한달살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2주만이라도 여기 꼭 다니시길.
학원 등록까지 마쳤으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계획대로 되고 있다. 어제 교회에 가서 거의 엄마들이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이런게 기러기 아빠구나. 여기서 이렇게 엄마들이 아가들과 생활하는구나.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어쩌면 아이들 교육을 위해 무언가를 선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영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영어를 잘한다는건 정말 선택지가 무궁하게 늘어난다. 그걸 정말 나만 몰랐고, 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하여 살아갈려고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에서 비참함을 느낀다.
우리 누나는 호주에서 살면서 벌써 이런 생각 많이 했겠구나. 한국 돌아와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달랐겠구나 생각하니, 또 미니도 결혼 전에 이런 해외 삶에서 돌아왔을 걸, 모두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제일 어린 애였다.
어학원은 내일부터 가기로 했다. 계획 없이 급출발했는데, 무언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신났나보다. 꼭 흥분하면 실수한다. 우리는 이 흥분된 마음을 이어서 그동안 기다렸던 조지타운에 가보기로 했다. 무계획 여행에서 시간이 비었을 때는 우선 기억나는 것부터 해야 한다. 바로 그랩을 불렀다. 우리는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조지타운을 간다. 다가올 충격을 모르고 엄청 기대에 부풀었다.
우선 가장 유명하다는 텍센에 가기로 했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일단 텍센 찍고 가서 밥 먹고 나면, 그 근처에 뭐가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15링깃이나 한다. 꽤 먼거리다. 조지타운 들어가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 음산한 분위기. 뭔가 활발하지 않은, 우리와 맞지 않은 으후으후한 분위기다. 흔히 드라마에서 동남아 어딘가에서 누군가 도망가고, 누군가 쫓아가던 그런 동네다. 문도 거의 닫혀있고, 약간 슬럼가 분위기였다. 당황했다.
일단 텍센에 도착했다. 헐. 이건 뭐지. 하필 오늘부터 일주인 간 공사다. 왜 오늘인가. 왜 오늘이냐고. 말이 되나. 그 수 많은 날 중에 왜 오늘이냐고. 우리는 길을 잃었다. 텍센 앞집에서는 아저씨가 웃통을 벗고 돼지를 자르고 있다. 정말 죽은지 얼마 안된 생돼지를 해체하고 있다. 깜짝 놀랐다.
여기는 어디 잠깐 서 있을 곳도 없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월요일이라서 대부분 상가들이 문을 닫은 것이었다. 동대문 갔는데 매장들이 다 문 닫았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음산한 분위기가 나겠는가. 딱 그런 분위기였다. 잠깐 식사 장소를 찾으려고 검색하는 동안 모기 10방은 물렸다. 정말 조지타운 모기는 사람 미치게 한다. 내가 이 날 물린 모기로 10일은 다리가 부어있었다. 기억하시라. 조지타운 갈 때는 모기기피제를 왕창 뿌려라.
어쩌지. 어쩌지. 당황했다. 방법이 없다. 미니가 급하게 후기를 찾아서 베트남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이 5분 정도다. 우리는 용기내서 조지타운 거리를 걸었다. 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험난한 도보 길이었다. 우리가 왜 이런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조지타운은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꼭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가 준비가 안된 것인지, 생각보다 정비가 안된 것인지 너무 불안한 도로였다. 차도 많고, 인도도 없고, 거리의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말 당황했고, 길도 너무 험하고, 약간 무섭기도 했다. 월요일에 조지타운을 걷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는 그랩을 불러 드디어 조지타운의 핵심. 벽화거리를 갔다. 벽화거리 입구에서 그랩 기사가 이 쪽임을 얘기해주었고, 들어가자마자 있는 기념품 가게들은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줄 것만 같았다. 페낭 기념품 살 곳이 없었는데, 이곳은 꽤나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4개에 10링깃 정도하는 물건들이 많아서, 준이가 그렇게 기대하던 그립톡도 샀다. 미니는 작은 가방도 하나 샀다.
바로 그 때!! 오늘의 대형 사건의 서막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저기 두리안이 있어요!! 빨리 사주세요." 준이가 엄청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준이의 이번 여행 목표!! 코코넛과 두리안. 지난 번 코코넛은 전혀 맛이 없다고 포기했고, 이번에는 두리안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두리안 냄새부터 맡겠다고 다가간 준이는 눈이 빨개진채로 콧물과 침을 바닥에 뱉었다. 군대에서 첫 화생방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포기 완전 포기." 준이는 절대로 두리안을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완전 포기를 외쳤다. 준이는 포기도 빠르다.
청룡열차도 겁 없이 혼자 타는 준이가, 두리안 앞에서는 냄새만 맡고 바로 포기했다. 그렇게 지나가려던 차에 나는 그래도 맛은 보고 싶었다. 맛보기만 하기에 두리안 자체는 너무 비싸서, 두리안 쥬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이 쥬스는 두리안을 갈고, 거기에다가 아이스크림도 넣고, 연유도 넣고, 마지막에 생크림도 얹어주었다. 그래서 두리안 냄새를 최대한 억제시킨 것이다. 내가 먼저 한입 먹고, 아이들에게 한 입씩 줬다.
제일 재밌는 영상을 얻었다. 아이들은 죽을거 같이 침을 뱉으며 켁켁 거렸다. 하지만 나는 먹을만했다. 아이들을 골탕 먹일 영상을 찍어놓고, 나는 여유있게 먹었다. 미니도 몇 번은 먹었다. 미니도 못먹겠다고 해서 내가 나머지를 거의 다 먹었다, 하.. 진짜 더 이상은 못먹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버렸다. 두리안의 충격 때문인지, 관리 안된 도로 때문인지, 무언가 종교적 기운이 가득찬 문제 때문인지 우리는 조지타운을 떠나기로 했다. 너무 어지러웠고, 여기 있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길도 복잡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벽화도 마음에 들지 않고, 갑자기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 일단 깨끗한 곳으로 가자. 그랩을 불러 거니파라곤으로 바로 달렸다. 거니파라곤이 보이자 무언가 숨이 쉬어졌다. 조지타운에서 있었던 2~3시간 동안 너무 힘들었다. 기운이 안 맞아서 그런가, 두리안으로 인한 충격도 상당했다. 거니파라곤에 들어가자마자 음료부터 마셨다. 떼오, 떼따릭, 스프라이트, 물을 마셨는데, 스프라이트를 조금 마셨더니 계속 트름이 올라왔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아이들은 길을 걷다가도 가끔씩 어디선가 두리안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내가 몰래 트름하고 난 뒤였다. 아이들은 나를 피했지만, 미니는 나의 곁을 지켰다. 정말 의리가 있다. 나는 이때부터 극강의 고통을 호소했다. 탄산을 먹어서 트름은 계속 나오지, 두리안 냄새가 내 온 몸을 지배했다. 날 계속 따라다녔다. 솔직히 공포였다.
여자팀은 쇼핑, 남자팀은 이곳저곳을 살펴보기로 했다. 준이와 영화관도 가보고, 아래 헬스장도 구경하고, 미스터 디와이아이도 가고, 재팬 다이소도 가보았다. 사려고 간건 아니라서 구경만 하고, 더 이상 데리고 다닐 수 없어 와플과 마일로를 사줬다. 준이는 먹을 때는 조용하다. 마일로를 일부러 먹었다. 두리안 좀 가라앉으라고. 소용이 없다. 온통 두리안 냄새다. 이제 마일로 두리안 냄새다. 쉣!!! 온 몸이 두리안이다. 두리안의 저주다. 환장하겠다.
거니파라곤 바깥으로 나가보니 너무 예쁜 광장이 있었고, 호프집과 식당, 카페가 즐비했다. 사진도 많이 찍고, 조지타운으로 다친 마음의 상처를 거니파라곤에서 위로 받았다. 한식도 먹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세상에. 그 매운 부대찌개를 흡입했는데도, 두리안 냄새가 내 몸을 지배한다. 정말 최고다.
그랩 타고 다시 집으로 왔다. 조지타운의 아픔이 거니파라곤으로 치유되고, 우리는 다시는 조지타운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아,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이후 조지타운을 3~4번 더 갔다. 마지막으로 갔던 조지타운 여행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조지타운 첫 여행의 안 좋았던 기억은 우리가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었고, 하필 월요일이라 다 문을 닫아서였다. 게다가 두리안. 후에 더 얘기하겠지만 조지타운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과 수영을 하러 나갔다. 수영은 10시에 마친다. 오늘 처음 알았다. 밤 10시까지 수영을 하고 있으니, 가드가 나오라고 한다. 10시까지 수영이라니, 이게 바로 동남아다. 즐겁게 수영하고 올라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조지타운과 두리안. 그게 오늘 우리의 하루다.
내일은 드디어 아이들이 어학원에 간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