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난 번역이 천직인가봐
독일에서 번역을 공부하고 2002년 번역가로 첫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끝마치기도 전에 이미 번역가로 데뷔했다. 졸업을 앞두고는 있었지만 졸업시험을 치르기 전이었다. 논문이 통과하고 졸업시험도 합격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졸업도 전에 밀려오는 번역의뢰를 거절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계약서에 내 이름과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사인을 하던 순간... 책표지에 번역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내 이름이 올려질 거란 생각에 설레었다. 학생신분으로 했던 수많은 번역과 달리 이제는 금전적 보상을 받는 번역전문가로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들어오는 의뢰를 하나하나 받다 보니 어느새 1년 치 번역일정이 꽉 차버렸고, 그 상황은 한동안 이어졌다. 당시에 이미 꽤 경험이 있는 한 독일어 번역가는 2년 치 일정이 꽉 찼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두 달에 한 권씩 번역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물론 아주 두꺼운 책은 세 달로 일정을 잡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에 왜 그렇게 독일책이 인기였는지 아직도 수수께끼다. 가끔은 내용이 너무 시시해서 별로 출판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 듯하다고 말해도 굳이 번역을 맡기는 출판사가 있었다. 당시 독일책 번역은 한마디로 전성기였다.
나는 번역일을 아주 좋아한다. 2002년을 시작으로 해서 약 10년 정도 번역 작업을 했지만 한결같이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일거리이며 또 뿌듯함도 느끼게 해 준다. 일단 번역을 시작하기 전 검토를 통해 책을 선별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그 선별과정부터 즐겁다. 그래서 한때 출판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받은 적도 있었고 한동안 그 권유를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출판사에 들아가면 번역은 할 수 없기에 결국 그 제안을 거절했다.
출판사들은 한 번에 적게는 한 권 많게는 10권씩 책 검토를 맡긴다. 그럼 번역자는 그 책들 중 번역할 만큼 괜찮은 책이 있는지 선별하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고르는 기준에는 물론 이 책이 얼마나 내용적으로 충실한지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얼마나 "먹힐지"가 중요하다. 번역가가 전자를 주로 검토한다면, 출판사 담당자는 주로 후자를 검토한다. 그래서 번역가와 출판사의 관심사와 취향이 비슷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더 커진다.
10여 년 동안 번역을 하면서 물론 맘에 맞는 출판사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불쾌하거나 불편한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처음 카페에서 만난 출판사 남자직원은 앉아 있는 태도부터가 거만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대화 내내 존대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러다 뜬금없이 질문을 던진다. 결혼은 했냐, 그럼 남자친구는 있냐, 30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했냐 등 불쾌한 질문을 연이어하는데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친절하게 대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인식한 순간 울컥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며 화가 치밀어 올라 혼자서 씩씩 거린 적도 있다.
그보다 더한 경험은 한 출판사 덕분에 법정에 갔던 것이다. 출판사 사정이 힘들다며 번역을 중단해 달라고 하거나 번역료를 한꺼번에 지급하기 힘들다며 몇 개월에 걸쳐 새 모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나눠서 주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경우는 그나마 이해를 한다. 하지만 한 출판사는 내 번역원고를 그들이 교정했다는 이유로 번역료 지급을 거부했다. 번역료 지급을 몇 번 독촉했지만 자기들이 일을 했으니 번역료를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그 출판사에 내용증명을 보냈고 그렇게 법정에 가서 나는 그들이 교정한 내용이 보통 수준의 교정작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했다. 판사는 출판사에 미지급 번역료를 당장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일정 기간 이후에도 지급하지 않으면 이자까지 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출판사 대표는 번역가나 작가들을 상대로 그렇게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고 버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그렇게 버티기 위해 자신의 명의로는 어떤 재산도 남기지 않고 모두 가족 명의로 돌려 강제집행도 할 수 없게 했다. 그런 방법으로 작가와 번역가들의 원고료를 절약하며 한동안 잘 나가는 듯하던 그 출판사는 10년을 좀 넘기고 사라졌다.
번역가로서 가장 아쉬운 점 하나는 교류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번역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혼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같이 모이거나 토론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번역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주변에 있는 번역가들은 대체로 그랬다. 그러나 난 독일어에 대해, 번역에 대해, 책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고 생각을 공유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잠시 한눈을 팔게 되었다. 번역과 병행하여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일주일에 3일은 수업하고 3일은 번역을 하면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점점 수업에 익숙해지자 나에게 주어지는 수업의 양도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수업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주 5회 심지어 주 6회까지 수업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번역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10여 년을 수업에 올인하게 되었다. 물론 힘든 점도 있지만 눈을 반짝이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학생들과 맘이 통하는 동료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간적인 교류는 충분히 만족이 되었다. 그럼에도 번역과 책에 대한 그리움은 결코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래서 다시 번역가로 살기로 했다. 출판시장으로 다시 돌아와 보니 대다수의 출판사들은 독일책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괜찮은 책을 발견해서 소개해도 독일책은 이제 독자들이 찾지 않는다며 관심을 주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어려운 싸움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마도 이 자리는 다시 번역가로 살기로 한 내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차곡차곡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번역가로서 나의 삶이 앞으로 생각대로 발전해 나갈지 아님 결국 주저앉게 될지 나도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