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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희 Sep 21. 2023

아직도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어?

10년 넘게 독일문화원에서 수업을 해 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받았다. 

"근데, 아직도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나도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것도 적지 않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곤 하니까. 

90년대만 해도 꽤 많은 고등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일본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인문학이 크게 위축되면서 독어독문학과도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의 수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에서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줄어드니 독일문화원을 찾은 학생 수는 더 늘었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학비가 무료인 독일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유학생활을 할 수 있기에 독일어를 배웠다. 그들은 대체로 음악, 미술, 신학, 철학 등 한국보다 독일이 더 발전한 학문 분야를 전공으로 하려는 학생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독일어는 "유학용 언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수업을 하는 최근 몇 년 사이 내 수업의 주요 대상층이 크게 바뀌었다. 현재는 대부분 직업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


처음 직업고등학교에서 수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는 의아했다. 일반고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제2 외국어로 찾아보기 힘들게 된 독일어를 왜 직업고에서 필요로 할까 하고. 그런데 그들을 통해 독일어의 또 다른 용도를 알게 되었다. 독일어반에는 대체로 성실하고 성적도 어느 정도 높은 아이들이 선별되어서 들어온고 한다. 1학년부터 착실하게 독일어 기초 과정을 밟고 3학년이 되어 중급반까지 마친 뒤 중급시험까지 통과하는 것이 아이들의 목표이다. 시험합격증을 받으면 그 아이들은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독일로 가게 된다. 독일에서 직업교육(Ausbildung)을 위한 인터뷰에 참여하고, 그 인터뷰에서 합격하고 나면 지멘스(Siemens), 벤츠(Benz), BMW 등 소위 독일의 잘 나가는 기업에서 직업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워낙 성실한 편이라 서류심사에서는 모두 별문제 없이 다 통과하는 데 언어시험 합격증과 인터뷰가 제일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독일에서의 직업교육이 자신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사실을 벌써부터 깨달은 아이들은 독일어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내가 수업을 하고 있는 직업학교들은 모두 지방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리는 줌으로 수업을 한다. 수업시간이 시작되면 칼같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밝은 목소리로 "할로(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문제 풀어볼 사람?" 하고 물으면 어김없이 바로바로 손을 든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고 있는 상황이 불만인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독일 직업교육에 대한 절실함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중도에 하차한다.    


현재 진행 중인 수업에는 1학년 학생 6명이 참여하고 있다.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남학생 1과 남학생 2는 주로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문제를 풀고 나면 서로 답도 맞춰 보고, 서로 대화하는 연습도 가장 적극적으로 한다. 가장 태도가 불성실한 여학생 1과 여학생 2도 가까이 앉는다. 그 둘은 틈틈이 잡담을 한다. 남학생 3은 두 남학생과 두 여학생을 앞뒤로 두고 혼자 앉아 있다. 여학생 3은 항상 창가 쪽 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 여학생 3은 집중력도 좋고, 설명도 열심히 들으며, 이해도 잘하는데도 대답할 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방금 뭐라고 말했는지 수시로 되물어야 한다. 그 친구는 언제쯤 어색함과 쑥스러움을 극복하고 충분히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날이 올지 나를 몹시 궁금하게 하는 아이다. 


독일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대학생에 비해 직업고 아이들이 더 힘든 건 사실이다. 대부분 영어를 별로 배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품사나 어휘 등을 영어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설명하기가 조금 더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타국에서의 대학생활도 만만치 않은데 독일에서 일을 하리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멋지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야말로 우리의 밝은 미래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인 독일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내가 한몫하고 있음에 뿌듯하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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