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산 Aug 15. 2023

2. AI가 시를 번역할 수 있을까

AI시대에 살아남을 번역과 살아남지 못할 번역

미국에서 내가 겪은 가장 큰 좌절감은 시였다. 문예창작과와 사진과가 결합된 대학원을 다니며 전공 필수로 시를 읽고 쓰는 수업을 들었다. 내게 있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자존심과 같았다. 영어 특기자로 학교를 가기로 했고, 바이링구얼이라고 할 만큼 언어적으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를 읽으면서 흰 종이 위 글자가 주르륵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표면적인 말 뜻은 알겠는데 감정적으로 와닿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의 태도로 시를 바라보는 법만을 한국에서 배워서 였는지, 이해의 영역 밖을 탐험하는 시는 내 범주 밖이었고,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교수님께 고백했다. 나는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 위한 언어야." 교수님이 말했다.


내게 있어 대학원의 기간은 언어를 바라보는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데에 있었다. 이해에서 경험의 영역으로, 전달의 선명함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모호함으로. 글을 쓰는 이유 또한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의 경험을 타인에게 잘 이식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함임을. 또한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 언어의 세계도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시가 번역할 수 없다고 믿는다. 번역한 그 시는, 그 세계와 닮아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특히 시는 한 사람의 세계의 총체이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자는 당사자뿐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는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현재 번역가로서 AI에 대체될 위기에 놓인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웃기다. 하지만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글은 크게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객체 지향적인 언어인가, 아니면 주체적인 이야기인가의 차이가 있다. 객체 지향적인 언어란 읽는 사람을 먼저 상정하고 쓰이는 글이다. 이를테면 마케팅 언어, 분류를 위한 문서, 사무적 메일 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AI가 하는 일은 언어적인 음운들을 분석하고 조합하는 일이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어떤 결과값이 나올 수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객관화되고 일관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하던 업무,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정보를 번역하는 카피라이팅의 경우는 매우 분명하게 수행 가능한 범주에 속한다. 게다가 브랜딩의 차원에서 언어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경우, 그 통계값에 맞춰서 설정하고 언어화된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우리가 쓰는 언어에 대한 용어집이 따로 없었는데, 내 동료가 들어오고 난 후에 언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용어집을 만들었다. 그때는 시스템을 전문화하고 매뉴얼화를 시키기 위해서 둘이 함께 구축한 시스템이었는데, 결국 이 시스템이 AI의 학습을 가속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발등을 내가 찍은 꼴이다. 물론 이런 DB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어도 AI는 알아서 학습하고 우리를 대체했을 것이지만, 아주 약간은 늦출수는 있지 않았을까. 고생해서 AI 준 꼴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글에 대한 번역은 조금 다르다. 이는 애초에 상대방을 위한 '목적성'으로 이루어진 글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 주체가 '나'에 있다. 번역의 과정이라는 타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과 비슷하다. 그 사람의 정신에 가 닿기 위해 읽으며, 그 뒤에 있는 사람을 상상하고,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이에 가장 맞는 다른 언어로 변환시키는 작업이다. 물론 문학 또한 어떤 장르냐, 작가의 스타일이 어떤가에 따라서 번역이 가능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라면, 완전한 번역 자체가 불가능한 시라면, AI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참 동안은.


다양한 언어로 분화되어 있는 세계가 다양한 정신으로 분화되고, 언어에 따른 상호 이해 불가능성에서 오는 오류가 있었을 것이다. 그 오류는 불편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움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AI시대가 도래하고, 이제는 바벨탑이 없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하고 선명한 그림이지만, 또한 무언가 또한 잃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뭐, 나는 적어도 내 직장을 잃었다. 잃은 것이 무언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회사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 번역가인 나는 AI에게 대체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