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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Mar 28. 2020

바구니 속 과일 같은 동네, 호이안

예쁜 색으로 가득 찬 그곳

베트남 호이안


바구니 속 과일 같은 호이안

  국수 종류만 먹다 보니 밥이 먹고 싶었다. 다른 나라에 오기 전엔 그 나라 음식 풍속에 빠져들자고 다짐하나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인처럼 밥을 좋아하는 곳이 또 있을까. 대부분 국수, 빵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운다. 상다리가 부서지게 밑반찬을 깔아 두고 먹는 건 한국이 최고다. 호화스러운 식단은 아니지만 골고루 먹는 걸 즐기다 보니 외국만 가면 항상 빈약하게 먹는구나 착각한다. 


  식사를 하러 가며 과일장수를 만났다. 뾰족한 밀짚모자를 쓴 과일장수의 바구니엔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가득 있었다. 바나나, 사과, 감, 리치, 망고. 달콤한 열대과일. 호이안은 그 바구니 속 과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호이안의 벽은 바나나 혹은 망고 색이다. 집집마다 달린 예쁜 등은 사과나 리치처럼 빨갛다. 과일에 달린 녹색 잎은 집집마다 풍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이다. 지붕을 제외하고(심지어 지붕이 녹색 풀로 가득한 경우도 많음) 모두 유채색이다. 호이안에 도착하자마자 기운이 나고 행복감을 느낀 건, 동네에 생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도시는 무채색에 가깝다. (밤에 사람들을 홀리기 위한 네온은 강렬한 사이버펑크 기운이 나는 색깔.) 빨강, 파랑, 초록, 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한국. (심지어 래퍼의 영향인지 모두 검은색 계열의 옷을 즐긴다.) 자연의 색깔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는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한국은 복고가 대세가 되는 것 같다. 유채색을 잘 활용했던 시절이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도 우리의 사막한 감성에 봄바람을 넣는다. 한옥을 감성적으로 다시 꾸민 공간에 사람들이 미어터진다. 


  호이안 집 베란다에는 마치 유럽처럼 풍성하게 자라는 식물들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으며 자란다. 잠시 서서 보고 있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이는 걸까. 집 앞에 계단이나 의자 뭐든 앉을 게 있으면 앉아서 옆에 있는 사람과 담소를 나눈다. 함께 살아가는 나무 그늘 아래서 시원함 즐긴다. 밤이면 아름다운 등불에서 낭만을 즐기고 해가 뜨면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색이 드러나는 동네. 호이안은 여유를 즐기기 참 좋은 곳이다. 식사 또한 일품이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품위 있는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다. 


  작은 식당에 들어가서 chicken rice랑 White rose를 시켰다. 닭고기 밥은 닭육수에 찐 밥과 삶은 닭고기 살이 얹어진 밥이다. White rose는 얇은 만두피 안에 새우 경단이 들어간 물만두다. 쫄깃하고 담백하다. 두 음식 모두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담겨 나왔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맛과 분위기 모두 좋았다. 호이안 사람들은 미적 감각이 좋은 걸까. 색을 보는 눈이 있다. 예쁜 색의 조합이 무엇인지 아는 그들. 


  특히 여긴 바나나색 아니면 민트색이다. 실내 민트색 벽에 예쁜 꽃의 그림이 액자로 걸려 있다. 과하게 꾸미지 않았으면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호이안엔 이런 가게가 참 많다. 


   

식사 마저도 색깔 배합이 좋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호이안에는 좋은 카페가 많다. 물론 밤엔 술 마시기 좋은 맥주집과 레스토랑이 많다. 특히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이곳엔 맹인들이 운영하는 찻집이 있다.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집 특유의 기분 좋은 향이 나는 찻집. 열린 창문 밖으로는 여유로운 호이안의 거리가 보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차 한 잔. 평화로운 시간만 필요할 뿐이다. 호이안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참 좋아한다. 식당을 가든, 게스트하우스에 가든, 카페에 가든, 맥주집에 가든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런 공간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축복과 다름없다. 과일바구니 속 과일을 닮은 호이안은 사람을 달콤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재주가 있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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