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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Mar 27. 2020

조급하지 않아, 호이안.

베트남 호이안

베트남 호이안


조급하지 않아, 호이안

  호이안에 도착하기 전엔 베트남이 싫었다. 얼른 떠나고 싶었다.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나를 등쳐먹기 위한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들 같았다. 게다가 불친절하고 사나웠다. 호객행위는 어찌나 끈질긴지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호이안에 도착하자 기운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 이곳은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느낄 수 있는 기운이구나. 스타워즈 제다이만 느낄 수 있는 포스, 대자연과 우주의 아늑한 기운. 농담이다. 분명한 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불친절하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혈안이었던 후에 사람들과 다르게, 호이안 사람들은 친절하고 다정했다. 이들은 내게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태도. 여유로움 자체였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도로를 뒤덮는 복잡함은 없었다.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오래전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작고 아담한 가옥. 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좁은 골목길. 무엇보다 이들의 전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고 느낀 건 집집마다 문 앞에 놓아둔 문전상이다. 제주에는 본 제사를 지내기 전 문 앞에서 제사를 지내려고 상을 차린다. 이와 비슷한 관습이 남아 있었다. 특이한 점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음식을 차려놓고 향을 피운다는 사실. 향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한적한 동네를 더 분위기 있게 만들었다. 





  호이안은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 중심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흐른다. 밤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은은하게 빛을 내는 작은 초를 호수에 띄우면 호수가 은하수처럼 빛난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전통 가옥에는 중국풍의 등이 아름답게 빛을 낸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환상의 공간 같다. (대만  지우펀도 비슷하게 아름답지만,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서는 베트남 호이안이 좋다.) 





  조그마한 마을, 호이안은 딱 내 마음에 들었다. 친절하고 잘 웃는, 낙천적이며 여유로운 호이안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다. 동시에 이들을 여유롭게 만든 마을의 분위기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사람은 각박한 삶의 조건 속에 놓이면 사나워진다. 어려운 생존 조건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유로움도 잃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후에는 황제의 아름다운 궁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마을 자체의 아름다움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호이안은 전통을 보존, 계승하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렸다. 그 까닭에 관광객이 모여들고 저녁 늦게까지 식당과 찻집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관광객이 지출한 비용은 현지인의 생활을 여유롭게 한다. 


  후에에서 만났던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개고생을 해도 적은 수입으로 만족해야 했다. 비관적인 미래로 끊임없이 걱정하는 젊은 그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밤이면 후에는 차갑고 고독함이 느껴졌지만, 호이안은 어두워질수록 따뜻하고 포근해 보였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동네 특유의 낙천과 여유로움이랄까. 유럽의 옛 도시에서 느껴볼 수 있는 평온함. 옛사람의 삶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느낌. 마치, 저기 있는 옛 건물이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된 것이라면 깡그리 밀어버리고 새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에서 우린 조급함을 느낀다. 한국에선 마치 내가 쓸모 없어지면 갈아치워 질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조급하고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을까. 





  나무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집. 그리고 그 세월만큼 집과 담장에 붙어 함께 살아온 덩굴. 부드럽고 담백한 그들의 전통차. 거리의 악사의 아름다운 노래. 우리 인간은 사는 동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신없이 복잡한 곳에서는 여유로움을 잃은 불안한 사람들이 많고, 아늑하고 편안하고 소박한 곳에서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많다. 동식물도 같지 않을까. 먹이가 풍부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혹독한 곳에 사는 개미는 사납고 빠르게 움직인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좋은 곳은 누가 만들까. 바로 살아가는 당사자들이다. 

  

  좋은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어렸을 때를 떠올리고는 한다. 동네에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아는 형, 누나가 하나씩 있다. 그들을 따라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이웃 동네에서 놀기 위해 유학(?)을 오기까지 한다. 그들이 한창 공부를 할 나이가 되어서 동네에 나타나지 않게 되면 누군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재목이 없는 경우 동네는 삭막해진다. 그네나 시소를 타고 각자도생 하지 함께 노는 분위기가 사라진다. 유학을 온 이웃 동네 사람들도 돌아간다. 누군가는 바통을 받아야 한다. 결국 살아가는 당사자가 재밌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함께 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덕분에 그곳의 현지인도, 관광객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다.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잊어 먹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학습 기계가 되어 버린 요즘, 우린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서 살아갈 수 있는 여유도 능력도 퇴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 즐겁게 놀아본 사람이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법.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호이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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