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 Aug 12. 2022

#36 최고의 휴양지에서 최악의 여행

# 해밀턴 아일랜드(2)


해밀턴 아일랜드 2일 차_ 비바람을 속에서 골프

 

 밤새 내리는 거센 빗소리를 들으며 불안하게 자고 별로 상쾌하지 않은 아침을 맞이하였다. 여전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골프를 치러 가는 무모한 일정을 시작하였다.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좀 더 작은 섬이 있는데 섬 전체가 골프장이다.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물론 날씨가 좋다는 전제하에 말이지만.     

 골프장으로 가는 배는 1시간에 한 번씩 있는데 우리는 11시에 예약을 했지만 비도 오고 할 일도 없고 선착장으로 갔더니 그냥 배에 태워주신다. 배에는 물론 우리 가족만 타고 있었다. 이 비를 맞으며 골프를 치다가 감기 걸리는 건 아닐지 잔뜩 불안한 마음으로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골프클럽까지 픽업해주고 골프를 칠 수 있게 준비를 해주었다. 이 정도면 골프 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다 취소해서 시작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시작하라고 하라고 한다. 사람도 별로 없으니 마음껏 인조이하란다. 뭔가 더욱 불안하다.     


 골프 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었다. 이 아름다운 골프장을 우리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 럭셔리한 일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푹 젖은 잔디로 인해 운동화가 다 젖어 발이 춥고 찝찝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바람은 계속 불어왔지만 다행히 비는 곧 멈추었다. 골프코스는 드라이버샷을 치는 족족이 공을 잃어버리기 쉬운 구조였다. 이러다가는 18홀 다 가기도 전에 공이 없을 것 같아서 내 공 찾아 수풀을 뒤적이다가 공을 거의 10개를 줍는 노다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비바람 맞으며 이게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덕분에 공 걱정 없이 마음에 드는 샷이 나올 때까지 칠 수 있었다.     


 13홀부터인가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이들과 여유롭게 사진도 많이 찍었다. 안내직원 말대로 우리 가족은 정말 골프장에서 마음껏 인조이할 수 있었다. 18홀이 내게는 벅찬 일이었는데 이날은 아이들과 정말 즐겁게 18홀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해밀턴 아일랜드 3일 차_화이트헤븐 비치     


 오늘도 역시 밤새 새찬 빗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였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보며 아침식사를 하고 화이트헤븐 비치로 가는 배에 올랐다. 화이트헤븐 비치 투어 상품은 하루 코스와 반나절 코스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후에는 더 많은 비가 예상되어 아침에 출발하는 반나절 코스를 이용하였다. 잔뜩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눈부시게 하얀 비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에는 따로 선착장이 없어서 배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해변에 내렸다. 선박 직원들은 해변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패들보트, 구명조끼 등의 장비를 제공해주었다. 역시 날씨 때문인지 투어에 참석한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고 아주 아름답고 한적한 비치를 즐길 수 있었다.        

흐린 날씨에도 하얗게 빛나는 화이트헤븐 비치


 비가 오는데 물놀이를 반나절 하면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우리 가족은 우선 짧은 트레킹 코스를 타라 섬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왔다. 보슬비도 오는데 바닷물에 젖고 싶지 않았던 나와 딸은 맨발로 비치를 거닐고, 아빠와 아들은 물에 빠지지 않을 거라며 패들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물론 바다에 나가자마자 패들보트에서 떨어져 풍덩 빠졌지만 말이다. 잠시 후 직원이 물고기 먹이를 가져와 뿌리며 물고기들을 모으고 관광객들도 모여들었다. 우리는 작고 알록달록한 열대어가 몰려들 줄 알았는데 팔뚝만 한 얼룩무늬 물고기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깔깔대곤 했다. 우리 작은 아이가 긴장하여 얼어 어쩔 줄 몰라하니 짓궂은 가이드가 우리 아이 근처로 먹이를 잔뜩 뿌려주기도 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그렇게 꿈속같이 아름다운 비치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는 무엇했는지 기억이 없다. 오후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도 했고, 그래서 특별히 한 일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음날 닥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최고의 휴양지에서의 기억은 퇴색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35 최고의 휴양지에서 최악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