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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Dec 01. 2023

사랑할 수 있을까



11월 첫 주말 가을길을 달려 황령산엘 갔다. 산을 올라가는 긴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봄에는 벚꽃 만개한 도로였는데 나무들이 어느새 잎 색을 바꾸고 떨구는 중이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곳엔 운치가 다. 중턱에 있는 소년 수련관을 지나  올라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망대 쪽으로 장과 나, 개(장군이) 셋이 같이 걸었다.


그날은 바람 거의 불지 않고 기온은 춥지도 덥지도 아 걷기에 적당했다. 낙엽 냄새를 맡는 장군이 걸음에 맞춰 천천히 30분쯤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아래로 부산 시내가 펼쳐 보였다. 맑은 하늘과 도시ㅇ정경과 멀리 보이는 바다 광경이 어우러졌다. 산 공기는 쾌청했다. 장군이는 처음 온 곳이 맘에 드는지 우리와 같이 나온 게 좋은지 신나 보였다. 그곳에서 말티즈 두 마리를 만났다. 한 마리는 열 살, 다른 한 마리는 여덟 살이라고 한다. 장군이는 이제 한 살 반쯤 되었다니 말티즈 보호자가 애기네요 했다. 개와 같이 있으면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얘기를 나누기도 쉬워진다.


전망대에서 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개가 함께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평안했다. 장은 줄 잡은 손을 뒷짐 지고 속도를 맞춰 걸었다. 장군이는 가끔씩 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려는 듯 멈춰 뒤돌아봤다. 그럴 때 우리에게 말 필요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을 뿐이다. 그렇게 고요하게 걷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때 생각나? 사실 난 그 맘 완전히 이해 못 했거든."


작년 12월 동문회 모임이 있었다. 5년만에 참석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친구와 선배, 교수님나 반가웠다. 그중 임선배는 특히 더 다. 30대 중반 넘어 결혼한 선배는 1년 뒤 아들이 태어났다. 건너 건너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으로 큰 수술을 했다고 전해들었다. 어머, 하고 놀랐는데 이후 선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선배는 86학번 동기 모임에도 동문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5, 6년 더 지나고서야 아이가 심장병이 아니라 중증정신지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문회에 가면 '그대로다'라는 거짓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하게 되는데 선배는 정말 그다. 눈가와 이마에 얕은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보여그렇게 느껴졌다. 한 사람을 기억할 때 외모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어서일까. 말수 적고 웃음 많던 3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선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신의 아이는 평생 다섯 살이라고 했다. 키우면서 한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며 웃었다. 평생 돌봐야 하니 아이 때문에 장수할 거 같다며 다시 웃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이는 말엔 웃음이 잦아들었다. 이해 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그 애 덕분에 행복한 순간이 너무 많다고 그 애 때문에 산다고 말하며 다시 웃었다.


교수님 반가웠다. 학교 다닐 적 존경하며 따랐는데 10여년 전 은퇴하시고 서울에 올라가신 후론 소원했다. 다음 달 부산에 내려오실 일이 있다셔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사모님도 함께 하셔서 자리가 더 살갑고 다정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는 중 아이 얘길 물으셨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이제 다 컸다 말씀드 셋째 생각은 없냐 사모님이 물으셨다.


농담으로만  손사래를 며 웃었는데 두 분께서는  자녀 다 키우시고 셋째를 입양하셨다 한다. "키우는 사람과 내게 온 아이의 우주가 완전히 바뀌는 기적"이라 권하고 싶다 하셨다. 입양 가족을 직접 본 처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씀에 놀대단하다 생각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고 나면 키워서 대단하다는 표현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예의가 아니라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양에   편의 영화, 책, 방송을 적이 다. 우리나라 유명 배우가 입양했단 말을 들기억도 났다. 낳은 두 아이 키우기에도 버거웠던 나는 양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엇보다 범접 가능한 영역이 아니. 이십 년 또는 그보다 긴 시간 누군가를 돌보고 키우고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까지 내게 있어 오랜 시간 이어온 사랑은 혈육이거나 혈육과 관계 이들었다. 조차 사랑만 하지 않았다. 미워하고 짜증내고 귀찮아하고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입양은 특별한 사람의 거룩한 능력이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장군이를 키우면서 말이야. 이런 마음이겠구나. 루 늦게 죽고 싶다는 선배 맘 이해돼. 입양도 그래. 사랑할 수 있겠구나. 내가 낳지 않아도 끔찍하게 사랑할 수 있 거구."


작년 8월 나는 태어난지 두달 조금 지난 비숑 한 마리를 데려왔다. 를 싫어하고 만지지도 못했는데 아이들 성화에 부끄럽지만 돈을 주고 데려왔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라는는 캠페인을 본 적도 있는데  인생에 개가 있을 줄 몰랐던만큼 무심하고 무지했다. 장군이를 사 온 일은 부끄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금은  장군이어야 하고 이제는 장군이가 아니면 안 되니 부끄러움조차 평생 가져갈 몫이라 여기기로 했다.


짐작만 하고 이해하 척 하지만 진심으론 닿지 못던 마음을 장군이를 통해 깨닫는다. 평생 돌봐야 하는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 덕분에 살아간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겠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살길 바라는 소원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도 해진다. 혈육이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 품던 스스로를 향한 의구심이 장군이를 만나며 걷어졌다. 개를 키우며 내가 더 많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걸 달았다. 겁부터 내고 자신없어 하지만 우리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이다.


사랑이 피로 묶인 관계에만 흐른다면 얼마나 편협한가. 주기만 하는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부모에게 받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랑이 뭔지 안다 까불었는데 장군이를 만나고서야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랑에 조금 더 다가간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잚게 늙어가고 싶다."(피천득, <나의 사랑하는 생활>)


사랑할 수 있을까 물었던 내게 장군이가 답해준다. 사랑할 수 있다고. 우리는 끔찍이 사랑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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