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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01. 2023

가을 화목



낮은 경사의 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날씨는 쾌청하고 오전 공원은  산책하기 좋았다. 바람과 하늘과 나무가 서로의 가을을 보여주고 나와 내 개도 풍경 어우러졌다. 파트 옆 공원해파랑길 시작점이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진 걷기 여행길이다.  나는 오륙도가 내려다 보이는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산으로  연결된 300미터가량 오르막 길로 들어섰다.


풀과 낙엽, 자갈이 많은 길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바람에선 바다향이 나고 나무가 많으니 나무향도 날 것이다. 냄새 맡기를 좋아하는 개는 산책로에 오면 코를 박고 오래 냄새를 맡는다. 개를 따라 걷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위에서 한 무리의 사람내려오는 게 보였다. 일행과의 거리가 5미터쯤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석할 순 없지만 그들이 내는 작은 말소리가 중국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15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공원은 부지만 있고 볼품없었다. 오랜 시간 시청과 구청에서 정성을 쏟아 지금은 봄에 수선화와 유채꽃이 피고 사시사철 해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공원을 가득 메운다. 가까이에 오륙도 스카이워크가 지어져 부산 관광 추천명소가 됐다. 공원에서 이기대로 연결되는 트래킹 코스도 인기가 많아 산책하다 보면 종종 등산객과 관광객을 만난다. 아마 저 사람들도 그런 경로로 이곳에 왔을 것이다 짐작했다.


나는 천천히 왼쪽 길가로 개를 데리고 갔다. 개는 냄새를 따라왔다 갔다 진로를 방해하기도 하고 사람들 발에 관심이 많아 무심코 다가가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과 마주칠 땐 신경을 쓴다. 길은 충분히 넓었지만 멈춰 서 있다가 지나가면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다. 나 몸을 옆으로 돌려 개를 내려보며 일행이 먼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때 누군가  "큐트"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맑은 종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드니 언제 거리가 가까워졌는지 2미터쯤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셋은 적당한 크기의 배낭을 메고 몇몇은 손에 물병을 고 있었다. 그들은 멈춰 내 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나는 내가 쁘다는 말보다 내 개가 쁘다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 그래선지 한 무리의 중국인 앞에 서 있는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조금 덜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들에게 느슨하게 둘러 싸인 모양이 됐을 때 나는 무리 중심이 누군지 금세  알아챘다. 열셋, 열넷로 보이는 긴 머리의 여자 아이였다. 얼굴은 하얗고 갸름했고 눈은 크고 표정이 밝았다. 까만 머리를 하나로 묶고 특별할 것 없는 편한 차림을 했는 어쩐지 눈에 띄었다. 일행 가족으로 보였다. 아빠 엄마 딸 그리고 언니 아니면 이모나 고모 이쪽은 삼촌, 외숙모일까. 내가 일행 일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이는 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가 손짓으로 개를 만져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풀 속에 코를 박고 있던 개를 안아 올렸다. 가끔 개를 만져도 되냐는 질문을 받는데 한 번도 안아 올린 적이 없었다.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아이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안고 있는 개의 털끝을 손가락으로 스치 턱을 살짝 긁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동작을 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아까 들은 종소리 같은 목소리로 "큐트"하고 웃었다. 이제 나와 1미터로 가까워진 가족들은 그때마다 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에서 이 사람들이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꼈다. 눈과 표정에 담긴 따뜻하고 진한 애정이 나에게까지 전달됐다. 그들이 귀여운 건 개아니라 개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와 같이 감탄하고 기쁨에 동조하며 그들은 아이의 즐거움에 차분히 동참했다. 아이가 개에게 집중하는 사이 어른들 중 몇몇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고개 숙이며 미소 지었다. 반갑다는 의민지 개를 만지게 해 줘서 고맙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옅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이가 핸드폰을 꺼내 들어 보였다.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는 뜻이었다. 나는 "예스"라고 답하고 이번엔 안고 있던 개를 내려놨다. 아이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자신의 발과 옷 냄새를 맡는 개의 사진을 찍었다. 종소리가 날 때마다 일곱 명의 사람이 웃고 나도 같이 웃었다. 이제 그들과 나의 거리는 50센티미터도 안 됐다. 나는 여덟 번째 사람이 되어 개와 아이를 바라봤다. 그들 몇몇이 개와 함께 있는 아이 사진을 찍었다. 가족들은 아이의 모습을 나는 내 개가 아이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나는 올라가고 그들은 내려갔다. 몇 걸음 걷다 뒤돌아보니 한 사람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걷있었다. 그들의 뒷모습과 나무와 하늘과 자갈길과 내려다 보이는 바다가 하나의 풍경이 되어 어우러졌다. 오르막 길 끝에 닿아 잠시 쉬고 내려오며 아까 아이와 만났던 곳에서 잠시 멈췄다. 따뜻한 화목과 사랑 속에 잠시 머문 기분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개와 그들이 사랑하는 아이가 함께 한 모습은 평화였다. 돌아가 사진을 볼 그들상상했다. 아이는 종소리 같은 목소리로  '큐트'라고 할까. 내가 모를 어딘가에 남겨진 사진이 문득 궁금해졌다.





글의 질은 장군이로 떼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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