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꼭 결혼할 거야."
말리는 사람이 있지도 아닌데 딸은 결혼할 거라 때때로 선언하고 덧붙여 아이도 셋 낳겠다 말했다. 결혼타령은 열 살부터 시작해 스무 살 즈음까지 이어졌다. 주위에선 어린애가 귀여웠는지 엄마 아빠 사이가 좋으면 자식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말해주었다. 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지만 특별한 금슬도 아니어서 믿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딸이 자기만의 가족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고 여겼다. 지금 가족이 맘에 들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더 나은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결혼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가고 싶은 대학원은 엄두가 안 나고 지원했던 회사에선 떨어졌다. 작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따분하고 답답한 인생을 어떻게 벗어날까 고민했다. 학비를 모아 대학원에 갈 수도 있고 취업 재수를 하거나 자격증 공부를 할 수도 있었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결혼이었다. 스물다섯이니 결혼해도 괜찮은 나이인 데다 마침 결혼하자는 남자도 있었으니 나만 결정하면 바로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엔 이런 마음인 줄 몰랐다. 순간은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고 의미는 뒤에 따라오는 법이다. 한참 지나 따져보니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탈출이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결혼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결혼은 합법적이고 축복받는 독립이었다. 태어나 만난, 선택할 수 없었던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내 부모와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내 부모가 만든 가족보다 더 풍족하고 지적이며 화목한 가족을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 기대와 자신감으로 결혼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겪으며 어른이 됐다.
"결혼 못할 거 같아. 결혼도 그렇지만 애는 진짜 못 낳을 거 같아."
취업한 지 3개월이 지난 딸은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도 어렵고 아이는 낳지 못할 거 같다 말한다. 아침엔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하면 쉬어야 하는데 그 사이 가정을 챙기고 아이까지 돌보는 건 너무 힘들 거 같다고 했다. 힘들게 뻔한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나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이번엔 누가 결혼하라고 등떠밀지도 않는데 딸은 결혼도 출산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엔 믿지 않던 말이 떠올랐다. 부모의 모습이 특히 여자고 엄마인 내가 딸 보기에 힘들었나 괜히 찔렸다.
딸의 말을 듣는 동안 지나온 시간을 더듬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속고 거대한 음모에 빠진 기분이었다. 취소하기 번거로운 결혼생활이 이런 건지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나 분개했다. 낳고 나면 물릴 수 없는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왜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나 배신감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없었던 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숱하게 나오고 멀리 갈 것 없이 엄마와 이모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 '결혼하면 좋은 줄 알고. 하는 날부터 고생인데.' 라고 엄마가 대놓고 알려줬지만 그땐 건방지게 까불 때라 그 말의 무게와 진실을 짐작하지 못했다.
결국 멋모르고 결혼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기엔 늦었다는 듯 두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모성은 바라보기엔 아름다울지 모르나 감내하기엔 잔혹한 면이 있다. 사랑하지만 귀찮고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분노하는 상반된 감정에 시달렸다. 어제와 비슷한 집이 살림 목표였으나 자주 실패했다. 현모양처라는 단어는 족쇄 같고 슈퍼우먼은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돌보는 아이에게 돌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늘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딸애 말을 듣기만 했다. 속내에 있는 것 중 어떤 걸 꺼내야 할지 몰랐다. 딸이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과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같이 있었다. 키우면서는 그 애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바란 적이 더 많았다. 딸과 내 결혼생활은 다르겠지만 여성의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다 비관했다. 키워놓으니 키울 적 고생은 잊은 건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믿는 건지 지금은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사는 모습을 가끔 상상한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느낀 행복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생명이 한 존재로 자라는 모습은 놀랍고 큰 기쁨이었다. 아이에게 받은 사랑과 행복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태어나 일주일쯤 되었을 때 짓던 배넷웃음과 한 손 가득 내 손가락 하나를 움켜쥐던 앙증맞던 악력이 기억난다. 공책 한쪽 찢어 적은 쪽지를 읽고 벅찼던 순간도 아이를 안고 자며 포근했던 느낌도 남아있다. 아이가 없다면 더 멋지게 살 수 있을 텐데 불평한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같이 자라고 아이에게 얻은 충만은 사회적 성취로 얻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딸이 스물이 넘어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에 비혼친구가 말했다.
"낳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어. 그게 싫었으면서 네가 딸이랑 친구처럼 지내는 걸 보니 양심 없게 그건 또 부럽네."
딸애에겐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적응부터 해야 하고 지금은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할 시기라 결혼도 출산도 힘들게만 느껴질 거라 말했다. 시간과 여건이 바뀌면 생각은 달라질 수 있고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결혼도 아이도 가치 있는 일이란 말도 덧붙였다. 세대를 거쳐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이 질문받고 해체된다. 결혼도 출산도 예외가 아니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사회 간 격차가 심화되면서 결혼이 중산층 문화가 되어간다고 한다. 결혼으로 생기는 의무가 버겁고 아이를 키우는 부담이 과도하다면 당연히 결혼과 출산을 기피할 것이다.
올해 3월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대체로 보조비 지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일은 중요하지만 사회환경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면 보조금을 더 준다고 출산하지 않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어젠다가 될 수 있지만 개인 입장에서 국가를 위해 출산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바닥을 기는 출생률 수치는 그동안 아이와 여성에게 보여준 공동체의 신뢰 수준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환경을 만들고 어떻게 신뢰를 회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